조선 최고 기녀의 문학적 상상력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春風)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 임 오신 날 밤이면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의 시조
일단 이 작품에서 “어론 임”이라는 표현은 ‘사랑하는 임’이라는 말입니다. ‘얼다’는 ‘물이 언다’는 의미 이외에 ‘남녀가 사랑을 나눈다’는 의미도 있지요.
자,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베어” 낸다고 되어 있네요. 밤을 어떻게 베어 낼 수 있을까요? 밤은 추상적인 대상이기 때문에 아무리 베려 해도 베어 낼 수 없는 것인데 말입니다. 황진이는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밤과 같은 추상적인 시간을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대상으로 바꿔 놓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그 많은 밤 중에 동짓달 밤을 잘라 냈을까요? 이는 우리나라 절기와 관련이 깊습니다. 우리나라 절기 중에서 밤이 가장 긴 절기가 동지입니다. 따라서 동짓달 밤을 잘라서 이불 아래 넣어 두었다가 펴면 그 어떤 날보다도 밤이 길게 흐르겠지요. 그러면 시적 화자는 사랑하는 임과 그 어떤 밤보다도 오랫동안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가요? 황진이의 표현이 기발하지 않습니까? 이 밖에도 서리서리, 굽이굽이처럼 의태어를 사용한 것도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황진이가 잘 살렸다는 근거이지요.
[네이버 지식백과] 조선의 기녀들에게 시조는 연애편지?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강영준, 아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