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역량이 핵심 역량이 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IT 시스템 구축 프록제트는 대부분 외부 업체를 사용한다. 전문성, 인력 등의 한계로 인해 내부의 인력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IT 시스템 고도화, 즉 더 좋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정보 시스템의 업부 커버리지를 높이는 경우, 내부의 IT 인력을 줄인다. 대규모 IT 프로젝트를 수행한 논리의 하나가 IT 인력 절감이었기 때문이다. 부족한 IT 내부 인력으로 대규모 IT 프로젝트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한 인력도 아웃소싱하는 경우가 흔하다. Shared Service Center의 개념이 도입되자, 비용절감과 대외사업을 목표로 SSC를 위한 기업이 많이 설립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 SDS이다. 대부분의 그룹사가 이 SSC를 만들었다. 과거 우리금융그룹의 우리 FIS도 이에 해당한다.
SSC가 설립되니, 많은 기업이 IT 시스템의 운영인력을 외부에 의존한다. 핵심 역량을 가진 사람을 외부에 의존하고, 시스템의 유지보수를 통해 얻은 노하우는 담배 한가치 만큼의 가치를 가지게 된 것과 같다. 노하우가 담배연기처럼 사라지는 것과 같다.
정보 시스템 개발과 시스템 운영을 대부분 아웃소싱하고, 내부 인력은 기획과 관리만을 한다. 기획의 경우 외부 컨설팅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으니 관리에만 특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반드시는 아니나 많은 기업이 그렇다. 그런데 현장을 모르고 IT 기술에 대한 지식이 없는 관리자가 혁신의 주도자가 되기 어렵다.
디지털 변혁의 시대에 무슨 짓들을 하는 지, 본인들만 모르는 것 처럼 보인다. 답답하기 그지 없다.
IT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는 건설 프로젝트와 꽤 유사하게 진행된다. 오히려 표준화된 건설 프로젝트와 비교하면, 더욱 열악하다고 할 수 있다. 건설 프로젝트의 경우 설계가 변경되면 이에 따라 그 비용도 증가하나, IT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는 웬만한 요구사항의 변경이 있어도 비용이 증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IT 프로젝트와 건설 프로젝트 간의 유일하게 비슷한 항목은 사람이 많이 투입된다는 것과 IT 시스템의 아키텍처가 건축설계 학자인 Alexander의 영향을 받은 것 이외에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IT 프로젝트가 건설 프로젝트의 운영방식과 비슷한 이유는 지식을 높게 평가하지 않고, 사람을 높게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농업사회에서 사람은 머릿수로 계산된다. 논, 옥수수 그리고 밀을 기르고 거둘때 그 만큼의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인두세라는 것의 등장 배경을 생각해 보면 된다. 산업혁명사회에서도 노동자의 숫자가 중요하다. 그러나 지식사회로 전환하면 사람의 가치가 중요해질 수 밖에 없다.
디지털 변혁이란 단순하게 디지털 기술, 즉 IT 기술이 비즈니스와 융합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디지털 변혁이란 디지털 기술로 인해 지식의 생산, 유통 및 활용에 질적 변화가 야기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인류의 수명은 증가하고, 생산능력은 달라지며, 삶의 방식은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4차산업혁명이라고 한다.
생산공정의 자동화와 실시간화를 추구하는 인더스트리 4.0은 4차산업혁명의 한 과정이지 클라우스 슈밥이 이야기한 4차산업혁명이 아니다. 핀테크, 농업 2.0, 서비스 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인해 정치, 경제 및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혁되는 것을 4차산업혁명이라고 할 수 있고, 지식사회의 도래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우리사회와 기업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갑질로 IT 중소기업 대표를 자살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으로서 할 짓도 아니나, 디지털 변혁과 4차산업혁명의 시대에 자멸하겠다는 것과 같다. 물론 그 IT 중소기업의 대표가 자살한 이면에 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필자는 그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수 있음을 짐작한다.
필자는 컨설턴트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산업은행에 내 팀의 컨설턴트가 투입되었다. 전언으로 들은 이야기 이다. 산업은행의 한 직원이 컨설턴트를 화장실로 불러, 화장실에 바닥에 오줌을 싸고, 이를 딱으라고 요구한 일이 있다. 산업은행의 한 직원의 내부 메신지의 별명이 영어로 '티꺼우면 갑하든가'였다. 한글로 티꺼우면 갑하든가를 영어로 쓴 것이다. 하늘을 영어 타자로 쓰면 gksmf이다. 티꺼우면 갑하든가를 영어로 쓰면 xlRjdnaus rkqgkemsrk이다. 당시 컨설팅 사가 간접적으로 이에 대해 항의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든 컨설턴트에게 이러니 IT 개발자에게 하는 언행은 어떻겠는가?
이런 일이 산업은행에만 국한될까? 사실 많은 기업에서 이런 갑질 문화는 만연해 있다. 아웃소싱이 일반화되면서, 기업의 직원은 관리직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아웃소싱 기업을 마른수건처럼 짤 수 있는 사람이 능력있는 직원이 되는 체계가 된다. 마른수건을 짜는 사람도 불행하고, 마른 수건이 된 사람도 불행하나, 지식사회로의 이행을 오히려 저해하는 구조다. 모두 실패하는 이 악순환의 구조를 바꾸려는 구체적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어제 대형 SI 사에 다니는 사회 동생을 만났다. 디지털 변혁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니 각 기업에서 SI 사 직원을 4차산업혁명 관련 부서, CDO(Chief Digital Officer) 및 디지털 전략 부서의 직원으로 뽑는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사회적 움직임이 조금 씩 변하니 말이다.
그러나 그 속도가 너무 늦는 것은 아닐까? 디지털 변혁으로 전환하는 속도에 우리 사회는 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노동 4.0 백서에 한국사회의 IT 인프라는 세계 최고수준이나, 디지털 역량은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사회의 인더스트리 4.0 역량을 낮게 평가했다.
IT 프로젝트가 갑을 문화에 병들고 있는 상황에서 높은 디지털 역량을 기대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지금 우리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지금 우리 기업은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는가? 지금 산업은행 담당자 들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지금 우리은행 담당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런 짓을 하고 있는가? 도대체 우리는 인간으로서 못할 짓을 하면서, 미래도 준비하지 못하고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퓨처리스트 윤기영이었습니다.
(c) 윤기영,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