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rt][단편 소설3/3] 공포의 예수상
1부 https://steemit.com/kr/@kc0084/kr-art-1-2
2부 https://steemit.com/kr/@kc0084/kr-art-2-3
*6.
나는 예수상 철거가 결정된 후에야 집창촌을 떠났다. 2년 만이었다. 가족처럼 지냈던 사람들은 그런 내 결정을 섭섭해 하면서도 옳은 결정이라며 격려해주었다. 이곳은 떠나는 사람을 붙잡지 않았고 다시 돌아오는 사람을 받아주지 않았다. 아무리 정이 깊게 들었어도 상대의 미래를 존중한다면 세상 밖으로 보내줘야 했다. 또한 세상 밖에서 만나도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대해야 했다. 이곳의 첫 번째 불문율이었다
누나들은 떠나는 내게 ‘절대 돌아오지 마’라고 신신당부하면서도 끝까지 손을 놔주지 않았고 삼촌들은 거칠게 날 내몰면서도 버스가 떠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 모습에 그만 울컥 눈물이 터져 나왔다. 지독한 상실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하지만 나는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예수상 철거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해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평생 과거의 허울 속에서 한 발자국도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다시 돌아온 고향은 무척 생소했다. 피부에 와 닿는 분위기 자체가 너무나도 달랐다.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표정이 어두웠고 지쳐 보였다. 하지만 마을 곳곳에 내려앉은 늦가을의 황량함 탓일 수도 있었다. 이방인이 되어버린 내 죄스러움 때문일 수도 있었다.
어머니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얼굴이 수척했다. 날 보시자마자 힘껏 끌어안아주셨지만 그 팔에는 힘이 들어있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떻게 지냈냐며 많은 것들을 물으셨지만 나는 속 시원히 대답하지 못했다. 거짓말로 두루뭉술하게 넘겼지만 그런 거짓말을 눈치채지 못할 당신이 아니셨다. 하지만 별다른 추궁은 없었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아버지는 지금 신자들과 예수상 철거 반대 단식 투쟁을 진행하고 계신다고 했다. 또한 나더러 왜 하필 지금 집으로 돌아오느냐며 격하게 분노하셨다고 한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당신의 실패를 목격하러 온 것이다. 화를 내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상황이 그러하니 차마 집에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머니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나가서 따로 방을 잡겠다는 내 말에 별 반대는 하지 않으셨다. 부모님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그게 가장 합당한 처사 같았다.
시내에서 값싼 모텔방을 잡은 후에는 옛날 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나는 친구들이 말하는 게임, 음악, 드라마, 입시 이야기를 잘 이해하지 못했고 친구들은 거친 말을 내뱉고, 밥값을 계산하고, 술과 담배를 하는 내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를 계속 대화에 포함시켜주려고 노력해줬다. 그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씁쓸했다
당연히 교회의 사건은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비극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이 그 일 직접, 간접적으로 연관된 탓에 그들 입장에선 객관적인 사건 판단이 힘들어 보였다. 아버지는 물론 수많은 교회 관계자들이 사건 이후 장기간 경찰 조사를 받았는데 끝내 법의 심판을 받은 사람들은 현장에서 칼을 휘두른 사람들이 전부였다. 사건 정황의 인과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허술한 수사였지만 우선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분위기였다. 워낙 규모가 큰 사건이다 보니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정치계 큰손들이 교회를 두둔하는 게 아니냐는 루머가 들끓었지만 현실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어머니를 뵙고 친구들을 만난 후로 딱히 할 일이 없어 그냥 방에서 쉬면서 예수상 철거일을 기다리기로 했다. 무료한 시간이 이어지자 앞날에 대한 걱정이 짙게 드리우기 시작했다. 마냥 막막했다. 아무런 계획도 세울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 석상 하나 쓰러지는 걸 보자고 이 유난을 떠는 게 옳은 일인가 싶기도 했다. 그냥 다 무시하고 훌쩍 떠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를 반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모두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그들 역시 예수상이 범상치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은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 자신의 소신을 표현했다. 누군가는 예수상을 받들었고 누군가는 격렬히 반대했다. 도망친 건 나뿐이었다. 전장을 두고 도망친 패잔병이 무슨 대접을 바랄 수 있겠는가.
나는 앞으로 평생 떠돌이 삶을 살 것이다. 집창촌으로 돌아가진 않겠지만 생활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눈앞에서 예수상이 무너진다고 해서 그 사실이 변할 수는 없다. 고작 그 정도의 해프닝으로 바뀔 삶이 아니었다. 그게 내 삶에 어떠한 기준점이나 출발점이 되어줄 수 있다는 희망은 있었지만 그 역시 나 혼자만의 감상이라는 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떠나지도 머물지도 못한 채 마냥 철거일만 기다렸다.
철거일 아침이 밝았다.
나는 마치 성스러운 의식에 참여하는 신도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용모를 단정히 하고 명상을 통해 마음을 비웠다. 정오가 지나도록 방을 나서지 못했다. 거짓말처럼 방문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문고리를 돌려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문은 잠겨 있지 않다. 날 골탕 먹이려고 장난을 계획할 사람도 없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의 트릭이었다. 내 마음이 이 문은 열리지 않는 문이라고 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었다.
예수상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그 공포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지난 2년 동안 한 구석에 조용히 잠복해 있던 그것이 예수를 마주하겠다는 내 확고한 결심을 양분삼아 온몸 구석구석에 퍼진 것이었다.
나는 그 공포에 잠식당하는 것이 두려워 주먹으로 내 얼굴을 내리쳤다. 머리가 멍하고 코피가 흘렀지만 아직 부족했다. 벽에 돌진해 머리를 박았고 마치 미친 사람처럼 괴성을 질러댔다. 그 소리를 듣고 놀란 모텔 주인이 헐레벌떡 달려와 벌컥 문을 열었고, 나는 고맙다는 인상도 없이 방 밖으로 질주했다. 다행히 모텔 앞에서 바로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나는 기사님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이가 으스러질 듯 어금니를 물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당장에라도 차를 돌리라고 비명을 질러댈 것만 같았다.
그런 내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택시는 미끄러지듯 교회로 달렸다.
*7.
현장에 도착하니 때마침 철거팀이 예수상에 밧줄을 묶고 있었다. 아직 철거 준비 단계였다. 등 뒤에서 시끄러운 욕설이 들려 고개를 돌렸더니 교인 몇 명이 철거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다들 십자가 팻말을 휘두르며 철거팀을 위협하고 있었지만 고작 10명 정도의 소규모 집단인 데다 하나같이 뼈만 앙상한 모습이라 물리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젊은 철거 지원 몇 명이 마치 낙엽 쓸어내듯 손쉽게 현장 밖으로 교인들을 내몰았다.
그 사이로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는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동료 신자의 부축을 받아 겨우 서 계셨는데 그마저도 힘에 겨운 듯 몇 번이나 크게 휘청였다. 고함을 내지르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호흡이 엉켰고 콜록콜록 마른 기침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연민 때문이기도 했지만 예수상에서 눈돌릴 대상이 필요한 탓이기도 했다. 때마침 철거차 운전수가 기중기로 밧줄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교인들은 이제 가축의 울음소리를 냈다. 인간의 발성 한계를 넘어선 절규였다.
하지만 철거 작업은 곧 중단됐다. 몇 톤이나 되는 철거차가 아무리 당겨도 석상이 넘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철거팀은 낡은 기중기를 탓하고는 철거 밧줄을 일반 트럭에 연결했다. 투박한 방법이지만 트럭으로 직접 당겨 석상을 넘어뜨리려는 것이었다. 트럭에 올라탄 운전수가 천천히 엑셀을 밟았다. 하지만 석상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고 타이어의 굉음이 거칠어짐과 동시에 신자들의 기도도 더욱 거세졌다.
그때 갑자기 고막을 찢는 것 같은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두 귀를 막았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기괴한 비명소리였다.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이 전해졌고 사람들은 바닥에 나뒹굴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맙소사, 예수상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얼굴이 녹아내린 예수상이 턱이 찢어질 듯 입을 벌리고 알 수 없는 굉음을 내지르는 것이었다. 예수상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목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더니 내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럴 것이 아직도 두 발로 버티고 서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나는 예수상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거대한 공포가 발 밑에서 머리 끝까지 나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2년 전 나를 근원적으로 파괴했던 공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내가 이곳을 떠났던 이유가, 가족을 버리고 삶을 버렸던 이유가 있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폐가 딱딱하게 굳어 작동하지 않았다. 나는 죽음을 직감했다. 공포가 극한에 이르자 오히려 경외감이 들었다. 그것은 신성한 존재였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내가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주제를 모르고 덤볐으니 지금 이 꼴이 난 거다. 절대 복종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어딘가에서 강렬한 분노가 폭발했다. 그것이 폐를 뜨겁게 데웠고 덕분에 겨우 숨을 들이마실 수 있었다. 머리가 깨질 듯한 소음이었지만 나는 계속 두 발로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런 날 응시하며 예수상이 일그러진 입술 사이로 송곳니를 내밀었다.
나는 바닥에 나뒹구는 사람들을 지나 조심스레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었다. 당장이라도 다리뼈가 으스러질 듯 주변 공기가 무거웠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고 가까스로 트럭에 올라타 사정없이 엑셀을 밟았다. 타이어 마찰음이 울렸고 장력을 받은 밧줄이 팽팽하게 공중에 떠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예수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탓에 트럭이 부채꼴 호 모양을 그리며 좌우로 미끄러졌다.
더 이상 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감각이 멀어지는 통에 이제는 고통조차 잘 느껴지지 않았다. 엑셀을 밟던 발에 힘이 빠졌는지 트럭 엔진음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포기하지 말거라
그 순간 누군가 나에게 속삭였다. 귀를 통해서가 아니었다. 청각이 아닌 영혼으로 직접 전해지는 영적인 메시지였다. 나는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내가 누구인지, 왜 여기 있는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반사적으로 그 메시지에 따라 오른 발에 힘을 줬다. 엑셀을 밟으라는 뇌의 명령에 기계적으로 복종할 뿐이었다.
우지끈, 마침내 예수상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 바람에 트럭이 반대편 담벼락에 곤두박질 쳤고 나는 충격으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8.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거짓말처럼 현장 주변이 말끔히 정리된 후였다.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예수상이 있던 자리에는 두 다리뼈가 곧게 뻗어 있었고 그 주변으로 검붉은 피가 솟구쳤다고 한다. 바닥에 쓰러진 예수상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다가 끝내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갑자기 군부대와 정부 요원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현장을 통제하더니 예수상과 관련된 증거물을 모두 수거해 갔다고 한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거짓말처럼 현장이 말끔하게 정리된 후였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목격한 바를 주변에 알렸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 어떤 매스컴도 우리의 목격담을 취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패한 종교 집단 추종자로 오도해 세상 사람들의 뭇매를 맞도록 유도했다.
기력이 약했던 아버지는 곧장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한동안 고열에 시달리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셨지만 지금은 조금씩 건강을 되찾고 있다. 여전히 차도를 지켜봐야하지만 담당의 말로는 며칠 후면 퇴원도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아버지가 퇴원하시면 집에 함께 머물며 간호를 담당할 생각이다. 당신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다.
마을 역시 생기를 되찾고 있다. 그 변화는 너무나도 굼떠 감지하지 힘들지만, 꾸준히, 그리고 분명히 진행되고 있다.
나는 현재 신학 대학 입학을 목표로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학위를 딴 후에는 목사가 될 생각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