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토리: 라이온 킹(Lion King)
어린 시절 디즈니와 함께 자란 나로써는 '라이온 킹'을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닌데, 몸이 자라고 머리가 자라고 나서 보니 '굳이 내 돈을 주고 이 뮤지컬을 봐야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의 영웅이 이제 작아보이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취재하면서 어쩔 수 없이 공연을 보게됐다. (물론 이것만을 보려고 몇달 전부터 표를 예매해서 오는 관광객들 많은 것, 안다...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하겠지만 취향존중...?) 생각했던 것보다는 좋은 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바람에 실망하진 않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이 뮤지컬로 제일 큰 덕을 본 사람은 아마도 줄리 테이무어/Julie Taymor일거다. 이게 누구냐하면, 손재주가 아주 뛰어나기로 유명한 연출가다. 라이온 킹 본 사람이라면 그 화려한 가면과 각종 장치들로 표현해낸 동물들을 기억할 테다. 그게 다 이 사람이 만든 거다. 이 작품으로 여성 연출가 최초로 토니상도 받았고, 라이온 킹 이후로도 영화 프리다/Frida, 각종 오페라, 뮤지컬 스파이더맨 (나중에 따로 포스팅 할 예정) 등으로 재능을 뽐내고 있는 멋진 여성이다.
아직도 이 뮤지컬은 흥행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전세계와 미국 내에서 뉴욕으로 몰려오는 관광객이 1년에 5000만 명이 넘는다니까... 한국 전체 인구 엇비슷하다. 이 중에 어린이들과 향수에 젖은 어른들이 함께 공연 한 편을 본다고 하면 '가장 안전하고 아이 위주'의 선택을 할 테니, 디즈니가 흥행할 수 밖에.
1994년 탄생한 영화는 '디즈니 르네상스'로 불리는 90년대에 만들어진 수작 만화영화다. 디즈니의 32번째 애니메이션 작품. 우피 골드버그와 제레미 아이언스 등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로 참여해 더욱 화제를 모았다. 음악에는 엘튼 존, 팀 라이스, 한스 짐머 등 거물들이 작업했다. 결과는 대성공. 당시 디즈니 내에서는 가장 높은 수익을 낸 작품으로 등극했다. 세계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둬 만화영화 중에서는 '쥬라기 공원'에 이어 당시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전 세계 총 수익 약 9억5200만 달러). 라이온 킹 대흥행을 몰고 온 이 작품에 이어 '라이온 킹 2(1998)' '라이온 킹 1 1/2(2004)' 등 연작도 등장했다.
이후 1997년에는 라이온 킹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탄생했다. 줄리 테이무어의 천재성이 가득 담긴 작품. '사자들이 주인공인 만화 영화가 어떻게 무대에 올라갈 수 있을까'라는 관객들의 의문을 감탄으로 바꿔놓았다. 당시 베스트뮤지컬상 등 토니상 6개 부문을 휩쓸며 브로드웨이를 들끓어 놓았다. 그리고 흥행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공연에서는 무엇보다 줄리 테이무어의 장인 정신이 빛나는 의상과 소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악함은 더욱 악하게, 선함은 더욱 선하게 표현한 그의 재능이 돋보인다. 인간이 기린이 되어 해가 뜨는 초원을 거닐고, 인간이 가젤이 되어 초원을 뛰논다. 하이에나들은 징그러울 정도로 너덜너덜하다.
의상과 소품도 물론이지만, 이 뮤지컬은 특히 조연들의 강한 뒷받침이 있어 살아나는 작품이다. 살아 숨 쉬는 아프리카 초원을 무대에 그대로 옮겨놓듯, 연기·목소리·노래가 살아있다. 특히 악한 삼촌 '스카'의 의상과 그에 못지 않은 교활한 연기, 또 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연기로 인기를 끈 앵무새 '자주(Zazu)'와 멧돼지 '품바', 미어캣 '티몬' 등. 첫 부분에서 오프닝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원숭이 '라피키', 그리고 묵직하게 극을 이끌어 가는 왕 '무파사' 등 캐릭터들이 무대를 꽉 채운다. 아역 배우들의 똑부러지는 연기 또한 웃음짓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