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에 기대는 방법(2) - 어색함을 마주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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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올해 들어서 이렇게 속이 안좋았던 적이 없었다.
소화가 잘 안되기 시작한 건 스타트업 하겠다고 밤을 새고 레드X이나 핫식X나 몬스X로 상습적인 도핑을 하면서부터인데... 아직까지도 그 기운이 남아있는 건지, 아니면 내가 그 밤들에 갇혀 있어서인지 어두컴컴해지면 이내 그때 생각에 불편함으로 꽉 차는 순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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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생활하다 집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산책을 나가보기로 했다. 머리 속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기억을 펼쳐봐도 이 동네가 시작점이다. 거의 2년 동안 어떤 모습을 변했을지, 멀리서 들려오던 공사소리와 분주히 오가는 차를 보면서 짐작만 했던 모습을 눈에 담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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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기 전에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소화제랑 두통약을 하나씩 챙겨먹었다. 아플 때 민간요법을 알려주시던 할머니가 생각났는데 그래도 약이 최고더라고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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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에 삼거리가 있는데 블록을 전부 뒤집어 놓았다. 당장 내일 출근길에 고생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내 속도 뒤집어질 것 같아서 내일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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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고맙게도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는 꽤 큰 규모의 공원이 있다.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길을 어릴 때 자주 자전거를 타고 돌곤 했다. 이 좁은 길을 그때 나는 네발 자전거를 끌고 그렇게 먼지 날리면서 달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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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원이 각별한 이유는 우리 가족이 자주 거닐던 기억에 있다. 나름 북적거리는 인원인 다섯명이서 이 공원을 저녁이 되면 종종 산책을 다녔다. 그 생각을 하니 뭔가 그리운 마음에 입구로 다가갔는데 개뿔 뒤집어 놓고 가로등도 뽑아놔서 마물의 숲처럼 만들어놨다. 무서우니 돌아서 들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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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플 때 먹는건 육류라는 말이 생각났다. 고기는 좋은데 소화가 잘 안되는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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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만 한 바퀴를 돌면서 내 기억 속에 있었는데 사라진 건물의 수 다. 2년이 그렇게 긴 시간인가 싶었는데 어릴 때부터 긴급? 화장실로 알려진 건물은 물류회사가 되었고, 300원짜리 떡꼬치를 팔던 분식집은 이제 고개를 전부 들어야 끝이 보이는 오피스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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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면서 잡은 포켓몬의 수. 사실 어제부터 포켓몬고가 생각이 나서 다시 설치해 놨다. 채굴하는 마음으로 잡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나 잡았다. 물론 151?번 이후로 아는 포켓몬은 거의 없어서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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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를 잡았다. 살짝 흥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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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여기서 끝낼 생각이었다. 별로 재미도 없는 일기를 길게 써봤자... 근데 아직 산책도 포켓몬 마스터의 길도 초반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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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지나 동네를 가로지르는 양재천 산책로를 가보기로 했다.
(거기에 잡을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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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가 막 된 시점에 도착했다. 그래도 양재천은 꽤 자주 왔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변했다. 이상한 태양열 가로등이 서있고(파워렛저 매수각...?) 무성했던 갈대밭은 대부분 사라졌다. 무서운 아이들이 굴다리 아래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있었다. 굴다리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무서운건 변하지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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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는데 지난 일요일까지만 해도 뭔가 월요일이 되면 다시 열심히 일도 하고, 글도 쓰고 이벤트도 기획해서 소소하게 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욕에 불탔는데 나태해진 건지... 월요병은 정말 무시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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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로즈데이였단다.(5월 14일 정확히는 어제) 안타깝게도 난 이걸 12시가 지나고 심지어 여자친구에게서 처음으로 들었다. 직업 특성 상 이번 주가 가장 바쁜 시기라 생각도 못했다... 조금 풀렸던 속이 다시 꽉 막히는 심정이었다. 몬스터볼로 날 가둘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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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이라도 퇴근하고 장미 한 송이라도 가져다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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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열중한 나머지 꽤 걸어가버린 걸 깨닫고 돌아가기로 했다. 속도 꽤 풀리고 머리도 맑아지고 포켓몬도 많이 잡았는데 조금 서글펐던 건 이제 본격적으로 모기가 나타나기 시작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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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 젊었어도 이러고 궁상떨고 있지는 않았을텐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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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여기까지 와버렸다. 제이미님이 진행하시는 이벤트? 반려견 유기에 대한 글을 작성하는 기간이 18일이다. 얼마 전에 본 프로그램을 예로 들어서 반려동물을 대하는 자세나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는 의미가 없을 것 같고...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만 되어도 감사할 것 같은데 쓰다가 감정적이 되어서 막 휘갈기면 어쩌지...라고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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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가니 19살에 만난 우리 집 댕댕이가 마중을 나왔다.
미안해. 포켓몬은 충분히 잡았으니까 이제부터는 같이 나가자.
글을 차분하게 잘 쓰네요.
감사합니다. 워낙 잘 쓰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지금 읽어보니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부분이 많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