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트래킹 말고 산책 (1)
2018년 11월의 어느날.
날 폭발하게 만든 건 배낭이었다.
최근 난 인생의 막다른 벽에 부딪힌 상태였다. 어떤 일에도 의욕이 나지 않았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고 싶었다. 지금 시점에서 내게 필요한 건 멈춤, 휴식, 생각이었다. 1주일 정도 푹 쉬면서 아무 것도 안 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행선지는? 장엄한 대자연이나 영적인 에너지가 강한 여행지 중 어디로 갈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심 끝에 최종 발탁된 곳은 인도의 바라나시였다.
그런데 인도 여행을 하려니까 왜 그렇게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은지... 몽둥이를 준비하라는 사람(시골에 개때가 많아서라고. 설득력 있었다.)이 있지 않나. 청테이프를 가져가라는 사람(기차 창문이 안 닫혀서라고. 설득력 있었다. 그러나 이건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국관광객이 청테이프 자국 남겨놓으면 청소하기 어렵다고…)이 있지 않나. 조심해야 할 건 또 왜 그리 많은지.(위생문제, 소매치기, 사기꾼…) 빨리 날라가서 쉬고 싶은데, 이런 저런 신경 쓰고 있자니, 짜증이 났다.
그래도 꾹 참고,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했는데, 길바닥이 하도 더럽다고 해서, 캐리어로는 안 되고, 배낭을 사야 하나 생각을 잠깐 하다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집에 안 쓰는 가방이 쌓여 있는데, 하필 배낭은 없는 거다. 그래서 ‘또 배낭까지 사야 돼?’ 하는 분노가 내 계획을 다 엎어 버렸다.
다행히 비행기, 호텔 예약, 대부분의 예방주사, 보건소 찾기, 비자 신청 등등은 아직 시작도 안 한 상태였다. 이미 저지른 짓은 독감예방주사와 복대, 자물쇠, 두꺼운 가이드북이 전부였다.
가만, 가이드북? 맞다. 내 따끈따끈한 가이드북은 인도와 네팔을 아우르는 책이었다. 그렇다. 네팔로 가자. 이렇게 해서 나의 계획은 급반전했다.
사실 내 잠재의식은 네팔을 가고 싶어했다. 농담이 아니고, 얼마전 TV 다큐에서 스쳐 지나간 ‘신들의 산, 히말라야’라는 말이 내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다가 갑자기 지금 튀어 나온 거다. 그래. 신들의 산에 가서 명상을 하자.
11.30 - 여행 제1일
네팔에 여행 가는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트래킹이 목적일 것이다. 난 하루 2시간 이내의 산책은 좋아 하지만, 그 이상은 부담스럽다. 그래서 트래킹은 원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산티아고 순례길도 일찌감치 내 여행 후보지에서 탈락했던 것이 아닌가! 트래킹을 안 해도, 먼 발치에서 히말라야를 보기만 해도 마음이 정화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목적지는 자연스럽게 포카라로 결정되었다!
카트만두로 직항으로 도착하니 저녁 때다. 오늘은 카트만두에서 하룻밤 잠만 자고, 내일 여유 있게 국내선 비행기로 포카라로 이동할 것이다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인도와 네팔의 한정식이라 할 수 있는 탈리. 잊어 먹을까봐 사진에 메모까지 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