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비트코인의 가치

in #kr7 years ago (edited)

가치와 암호화폐

암호화폐에 비관적인 사람들이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이 화폐가 어떤 실질적 '가치'에 근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튤립버블'보다도 심각하다고 주장한다. 최근 신문에서 본 어떤 기사에는 무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분이 '튤립버블은 적어도 튤립만큼의 가치라도 있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관련기사).

암호화폐의 가치는 0인가?

금이나 튤립에 버블이 낄 수는 있어도 그것이 최소한의 물질적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비트코인처럼 아무런 물질적 기반이 없는 것들은 버블이 꺼지면 그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힘겹게 지탱하면서 지켜 온 우리의 경제 체제라는 것이 그렇게 완전히 물질적 기반으로만 환원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웹시장을 하드웨어라는 물질적 가격으로 환원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이 모든 웹 열풍이 지나고 남는 것은 그저 프로세서와 메모리일 뿐일까?

물질과 교환, 그리고 장부

금이든 은이든, 혹은 튤립이든 사람들은 그것들을 교환할 때, 물질 자체를 교환하지는 않는다. 물질교환이 가장 신뢰성있는 수단이겠지만, 가치를 잘게 나눌 필요가 있거나, 혹은 들고 다니는 것이 불가능할 경우도 많기 때문에, 주로 그 물질들을 담보로 증권을 발행하고, 그 증권을 교환하면서 경제를 영위한다. 물질은 보통 교환되지 않거나, 일정기간에 한 번씩 대규모로 교환하는 행사를 할 뿐이다(지급의무가 있는 물질 보관상들(국가나 은행 등)이 모여서 서로의 어음을 퉁치고 잡다하게 남은 액수만큼만 물질을 이동하거나 혹은 그마저도 나중을 위해 유예시킨다). 이런 상황에서는 물질이 있다고 생각하기만 할 뿐, 실제로 이동되는 물질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끔은 '이럴 바에야 물질없이 그저 화폐만 있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하는 실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그런 모든 교환들이 물질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렇게 실질적으로 물질이 즉각 교환되지 않으면서, 지급은 유예되고, 그렇게 유예되는 시간차를 이용해서, 물질의 가치가 뻥튀기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부채'라는 이름으로 자본시장에서 한 개념을 형성하고 있는데, 여하튼 그 때문에, 물질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가치보다 몇 배나 많은 가치들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날 '집중적인 정산'의 시기가 도래하면(이를 버블붕괴라고 부르는데), 이 부채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망하게 되고, 어쨌거나 누군가는 갚아야 할 이 부채를 주로, 성실하게 부채없이 일하는 사람들의 세금으로 해결한 뒤, 다시 '경기 부양'이라는 이름으로 부채 장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자본주의의 사이클일진대(즉, 버블로 운영하는 것이 자본주의인데), 그런 체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버블을 걱정하는 것은 어쩌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여하튼 그것이 실질이든 부채든, 그 모든 거래는 '장부'에 기록된다. 그리고 장부는 분기마다 반기마다 혹은 일년단위로 정리되어 공개적으로 혹은 비공개적으로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물질이 빠진 자리를 화폐와 장부가 채우고, 그것들을 결산하여 실물가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정당한 절차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시장에서 '부채'를 유지하는 비결은 결국 '장부'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금의 실제가치가 100이라고 할 때, 시장에 돌고 있는 화폐가 200이라고 한다면, 금의 가치를 제외한 나머지 100의 가치는 무엇에 근거하는가? 그건 장부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장부가 있는 한(그리고 그 장부가 공인되는 한), 장부를 근거로 가치보전을 요구할 수 있다. 그 상대가 정부라면, 정부는 일반인들에게 거둔 세금으로 그 가치를 보전해 주어야 한다.

장부의 가치

자본주의가 부채를 포기하면 모를까, 부채를 바탕으로 활기차게 돌아가는 것이 확실하다면, 실질가치와 장부가치를 분리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부채가치라는 것은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꺼질 수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런 가치가 없어 보이는 이 장부가치는 두 가지 면에서 사라지기 어렵다:

첫째, 부채없는 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부채란 지급이 유예된 재산이다. 나중에 갚아야 할 돈을 미리 당겨서 쓰는 것이다. 하지만 부채 생성이 가능하다면, 부채를 이용해서 부채를 갚는 것도 가능하다(물론 이자나 신용도라는 장애물이 그것을 다소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런식으로 뺑뺑이를 돌리면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물질도 없이 돈을 끌어다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 가능한 것은 돈을 꿔 준 입장에서는 돈을 빌려간 사람이 그 돈으로 많은 가치를 창출해서 이자를 두둑히 붙여서 돌려 줄 것이란 '기대'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기대야 말로, 자본주의가 물질을 상회하는 가치를 시장에 돌리는 이유다. 자본주의가 실물에만 의존한다면, 그건 그저 물물교환 시장이나 다를 바가 없다.

둘째, 자본주의가 부채의 역사이듯, 부채의 역사는 장부 조작의 역사이고, 이를 방지하거나 최소화할 목적의 회계 공증의 역사이기도 하다. 신문마다 뉴스마다 곳곳에 존재하는 사기꾼들이 어떻게 장부를 조작하고, 회계를 조작하는지에 대한 기사가 판을 친다. 심지어 대통령을 지낸 사람조차도, 비자금을 마련하기 쉽도록 비교적 최근까지도 '수기 장부'를 썼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이런 일을 방지하고자 공인 회계사를 두고, 수시로 감사를 받도록 하지만, 보통은 그런 회계사들이 조작에 가담해서 한탕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장부 조작이 흔하다고 해서, 부채 경제를 없앨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장부 조작은 필요악으로 생각하거나, 혹은 고급 기술로 통용시키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쩌면 부채 경제를 이끌어 주는 모멘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것이나, 장부 조작으로 돈을 버는 것이나, 돈을 잘 벌어, 끌어 쓴 부채를 잘 갚기만 하면, 은행이나 정부는 가급적 문제 삼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부채 경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장부로서의 암호화폐

암호화폐가 투기와 연관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그 이전의 7, 8년의 역사는 이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사람들끼리 치열하게 논쟁하는 시기였다. 그 결론이야 전문가들의 영역이지만, 어쨌거나 보통사람들이 선택한 것은 이 방식이 '장부의 신뢰'를 크게 높여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비판적인 사람들은 '블록체인'에도 단점은 있을 거 아니냐고 항변하지만,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있다하더라도 지금의 은행이나 정부의 장부 방식에 비할 바는 아니다.

때문에 암호화폐가 대체하려고 하는 것은 금이나 은이나 튤립이 가지고 있는 실질가치는 아닐지라도 그것들을 담보로 벌어지는 이 부채경제에서 부채를 유지하는 '장부'로서의 기능은 100% 대체 가능하고(또 그래야 하고), 누군가 암호화폐의 가치를 물어보면 바로 그 장부가치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암호화폐의 가치가 부채이고 장부일 때, 그것이 버블이라든가, 혹은 무가치하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반자본주의적 발상인데다가, 실질적으로 없어지지 않을 '무실물가치'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채가 사라진 자본주의 경제를 상상할 수 있는가? 아니라면 암호화폐는 사라지지 않을 뿐더러, 기존의 모든 장부를 대체할 것이다. 그렇다면 암호화폐의 가치는 얼마인가? 그건 알 수 없다. 사람들이 금을 보관하면서 어음으로 몇 배를 돌리느냐와 관계가 있고, 이것은 시기마다 혹은 문화마다, 아니면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어쨌거나 확실한 건 보관하고 있는 금보다는 몇 배의 가치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비트코인에 열광하는 것은 우선 그런 가치를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고, 그 기술이 그저 재미삼아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는 인식에 기인한다. 물론 다소의 거품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에서 어떤 기술도 이런 거품없이 성장해 오진 않았다.

내가 비록 경제나 암호화폐의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이제 암호화폐가 무가치하므로 망할 것이란 의견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부채가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암호화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암호화폐의 가치는 그 사회가 유지하는(혹은 유지하려는) 부채의 총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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