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자금성의 화재와 화상흉터치료

in #kr7 years ago

거대한 규모의 황궁은 모두 나무로 지어진데다가 북경의 기후가 건조하고 바람이 많아 명과 청 두왕조를 거쳐 여러 차례 화재가 발생했다. 특히 황궁의 중심에 지어진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에서 화재가 많이 발생했다. 이 3대전은 명나라 때만 해도 3차례나 불이 나 잿더미가 되었다.
태화전.jpg
첫 번째 불은 1421년, 3대전에 번개가 치면서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천도한 지 얼마 안 될 때라 민심이 아직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전에 벼락을 맞아 불타니 온 조정은 혼란에 휩싸였다. 천도에 불만을 품은 하늘의 경고라고 생각한 일부 대신들은 수도를 다시 남경으로 옮기자고 주장했다. 천도의 기쁨에 푹 빠져 있던 영락제는 갑자기 금란전의 보좌가 불타버리고 온 나라 백성들과 조정이 소란스러워지자 크게 당황했다. 특히 수도를 다시 남경으로 천도하자는 주장은 그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고 그들을 죽이고 나서야 겨우 조정 안팎의 혼란을 진정시킬수 있었다. 불에 타버린 대전의 중건은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시작되어 20년 후인 1440년 10월에 준공되었다.

두 번째 화재는 1547년 여름에 일어났는데 이 화재는 명나라 때 일어난 가장 큰 화재였다. 이 화재로 자금성의 3대전이 모두 타버렸을 뿐 아니라 봉천문, 좌우순문, 오문 밖 회랑까지 불길이 번졌으며 자금성의 외궁은 거의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황제의 보좌마저 타버려 가정제는 동쪽의 무화전에서 국사를 돌볼 수 밖에 없었다. 이 불을 끄기 위해 동원된 인원만 3천명이 넘었고, 물 운반 수레가 5천여대에 달했다. 불은 새벽 3시부터 저녁 7시까지 꺼지지 않고 궁을 태웠으니 그 손실은 실로 참담했다. 화재로 황후의 거처인 곤녕궁에도 불에 옮겨 붙었는데 가정제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여 방황후가 불에 타 죽었다. 불타버린 궁전에 대한 복원은 바로 그해에 시작되어 1562년에야 모두 끝났다. 그리고 3대전의 본래 명칭은 봉천전, 근신전, 화개전이었는데 화개라는 말이 하늘의 뜻을 거슬렀다고 생각하여 이 3대전의 명칭을 황극전, 중극전, 건극전으로 바꾸었다.

황제들의 숨겨진 중국사, 장위싱 지음, 허유영 옮김, 이가출판사. 페이지 119-120

중국의 황궁조차도 화재에 무방비로 취약한데 민간의 불은 거의 진화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대의 제천 스포츠센터와 밀양 병원 참사등을 봐도 불이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여실히 증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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