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큐멘터리 소설] 가슴에 장미 문신을 한 너 - 바 오아시스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7 years ago (edited)
  1.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MSG만 살짝 가미했습니다.
  2. 제목과는 다르게 소소한 이야기입니다.
  3. 19금 아닙니다...
  4. 내용이 길어 2편 정도로 나눠서 적어 볼 계획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태원 바에서 잠시 일하며 겪었던 에피소드를 담은 글입니다.

벌써 2년 전 일이다.
당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와 차마 스타트업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일들을 혼자 기획하며 놀고 있던 때이다. 작업을 하는 것은 노트북만 있으면 됐기에 졸업한 모교 근처 카페에 자주 들르고는 했다. 아직 학교에 후배들이 더러 남아 있었기에 얼굴도 보고 같이 밥도 먹으면서 외롭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중에 특히 자주 보던 후배 녀석이 있었다. 전역한 직후부터 알게 된 후배인데 이제 학교 내에서 화석 같은 존재가 되었다. 졸업할 시기를 한참이나 지났음에도 학교에 붙어 있으며 대학 생활을 만끽하고 있던 녀석이었다. 처음 그 후배를 만났을 때의 인상은 감정이란 것이 있나 싶을 정도로 항상 똑같은 표정에 똑같은 행동만을 반복하는 이상한 녀석이었다. 학생회 활동을 하다 만난 그 녀석은 항상 아디다스 후드티에 비니를 눌러 쓰고 컴퓨터 앞에 앉아 시험 기간에도 웹툰만을 보는 내가 보기에는 꽤나 기이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이후 후배가 군대를 전역하고 미국에서 일 년 정도 유학을 마치고 온 이후에는 전과 다르게 매사에 적극적이고 감정 또한 풍부해진 느낌을 받을 수가 있었다. 앞으로 내가 적는 이야기의 발단은 그 후배로부터 시작한다.

[제1부. 24시간 잠들지 않는 오아시스]

대학생인지라 6월 중순만돼도 방학에 들어간다. 그 후배네 집안은 썩 나쁘지 않았기에 용돈 걱정 없이 살고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녀석이 어느 날 알바 자리를 구한다고 분주하게 알아보고 다닌 것이다. 이유인즉슨 뭔가 일이 생겨 갑작스레 돈이 필요해진 것이다. 집에다 부탁하긴 죄송스런 마음에 생전 안 하던 알바자리를 알아보러 다녔고 생각보다 빠르게 자리를 구했다는 소식을 내게 전했다.

이태원에 가면 십 년 넘게 영업을 하는 '오아시스'라는 바가 있다. 특이하게도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으로 이태원역에서 무척이나 가까운 곳에 있다. 후배가 그 바에서 낮 타임 바텐더 자리를 구했다는 것이었다. 생전 알바 한 번 안해본 녀석이 바텐더를 한다니 내가 보기엔 꽤나 이상했다. 알바 면접을 볼 때 여사장이 한 말은 낮 타임이라 특별히 어려운 것도 없고, 전문 바텐더처럼 다양한 칵테일을 배울 필요도 없으니 손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단다. 사실 후배가 가장 혹했던 부분이 시급이었다. 당시 법정 최저 시급이 5,600원 정도 할 때 였는데 7,000원을 시급으로 제시했으니 혹할 수밖에. 한 푼이 궁했던 후배는 오아시스 바의 낮타임 바텐더로 일하기로 하고 아침마다 이태원으로 향했다.

한 달가량 알바를 하며 내게 중간 중간 다양한 에피소드를 전했다. 당시에는 별 흥미가 없어 건성으로 흘려들었는데 그것이 내 실수인 것을 뒤늦게 알고 후회하게 된다. 한 달이 지났을 무렵 후배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전해 듣게 된다. 그러던 중에 후배가 자신의 대타를 할 사람을 구하고 있었는데 당시 할 일 없이 카페나 드나들고 있던 내게도 부탁을 했다. 월화수목금 딱 5일간만 하면 된다는 얘기와 나 외에는 주변에 바쁜 사람들밖에 없어 보였기에 호기롭게 대타를 하기로 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면 되는 터라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첫날 교육 겸 30분가량 일찍 도착해서 전 타임 여자 바텐데에게 인수인계를 받았다. 나이는 내 또래처럼 보였는데 외국물을 먹었는지 한국말을 외국어처럼 구사했다. 굉장히 바빠 보이는 말투로 간단하게 잭콕이라던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칵테일을 만드는 법부터 손님들이 음악을 요청할 때는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틀어주면 된다는 등의 내용을 말해줬다. 그리고 정산 부분은 사장이 꽤나 중요하게 생각하니 실수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9시가 되자마자 퇴근을 했다.

오아시스 바의 오전 9시 모습은 내 생각과는 너무나 달랐다. 상상 속의 오전 9시의 오아시스 바는 깨끗하게 정리된 테이블 위에 이제 막 잠에서 깬 사람들이 외로움을 달래고자 홀로 맥주나 한잔 하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예상과 너무나 달랐다. 실상은 이태원에서 밤새 술 마시고 만취가 된 사람들이 또 술이 마시고 싶어서 24시간 영업하는 바를 찾아오는 블랙홀 같은 장소였던 것이다. 테이블마다 만취된 취객들이 아침임에도 연거푸 술을 들이켜며 고성을 지르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외국인 여럿이 부둥켜 블루스를 추며 진한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었다.

그렇다, 여기는 24시간 술에 취한 사람들이 모이는 이태원의 오아시스였다.

[제2부. 놈놈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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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무슨 요일인지는 모르겠다. 바에 서서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간간히 음악을 요청하면 틀어주는 등 생각보다 일은 수월했다. 칵테일이라고 하지만 보통은 잭콕이나 진토닉 정도여서 지금 중학생인 조카 녀석을 그 자리에 앉혀 놓아도 별로 어려울 것 같진 않았다. 다만 그 자리에 서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왠지 사회와 분리되어 섬에 떠있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오아시스인가? 그날은 특이하게 내 앞에 세 명의 손님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가장 왼쪽에서부터 '연가시'. 온종일 바에 앉아서 다른 테이블 사람들에게 술을 얻어먹는 연가시 같은 놈이다. 술도 별로 취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나한테 대뜸 반말로 "너 힙합에 대해서 아냐?" 이 지랄을 해댔던 녀석이라 잊을 수가 없다. 당시 내가 33살이었는데 나이를 물어보니 30살이란다. 그래 '내가 워낙 동안이어야지' 하며 속으로 삭이고는 냉소적으로 모른다고 답하자 자기가 아는 최고의 힙합 음악을 소개해주겠다며 신청한 곡이 드렁큰 타이거의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였다. 뭐 이런 병신 새끼가 다 있을까 싶었지만 속으로 한 번 씹어주고 음악을 틀어줬던 기억이 난다.

가운데 흑인 성님은 사실 굉장히 점잖으신 분이셨다. 본국이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내게 신청곡을 적으시고는 이 곡이 사실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유행했던 음악이라며 내 앞에서 그 음악에 맞춰서 한껏 춤을 추시던 분이셨다. (그리고 팁도 조금이나마 주셨기에 더욱 고마웠다.)그런데 하필 그 날 자리 선정을 잘못한 탓에 왼쪽 연가시 녀석에게 되지도 않는 한국어와 외국어를 섞은 아무말 대잔치에 시달림을 당하고 계셨던 것이다. 결국 참지 못하고는 이 새끼 좀 치워달라고 영어로 컴플레인을 걸었으나 세상 귀찮은 나는 방관자가 되어 그냥 웃으며 지켜 보고만 있었다.

가장 오른쪽의 백인 성님은 굉장히 웃음이 많으신 분이셨다. 버드와이저를 한 병 시키시고는 잔에 따라서 버드와이저가 미지근할 때까지 드시면서 시간을 보내시고는 했다. 그런데 굉장히 곤란한 것이 나한테 계속 말을 거는 것이다. 물론 영어로. 내가 듣건 대답을 해주건 상관하지 않고 혼자 계속 말 걸고 혼자 웃고를 반복한다. 그러다 나중에는 저들 셋이서 대화도 아닌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하였다. 연가시는 아무말 대잔치로 계속 흑인 성님을 귀찮게 하고 흑인 성님은 백인 성님한테 영어로 이 새끼 진따 새끼 이러고 있고 백인 성님은 연가시한테 웃으면서 계속 자기 고향 얘기만 하고 앉아 계신다. 내 눈엔 그 모습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서로 상대방 생각은 1도 안 하고 자기 이야기만 할 수가 있구나를 생각하며 역시 이 새끼들은 이상해라는 생각을 했었다.

결국 연가시의 아무말 공격에 화가 끝까지 오른 흑인 성님이 욕설과 함께 밖에 나가면서 이들의 기묘한 대화는 멈출 수가 있었다. 흑인 성님이 자리를 비우자 연가시는 내게 힙합 음악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얘기하기 시작했고 듣기 귀찮아진 난 2000년 중반에 나온 철 지난 어셔의 음악을 큰 소리로 틀었다. 그 와중에 신이 난 백인 성님이 춤을 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제3부. 경찰]

오아시스 바에 오는 손님들의 연령대는 실로 다양했는데 이제 갓 20살 정도 된 애들부터 50대가 훌쩍 넘은 중년층들까지 방문하고는 했다. 40~50대 손님들은 보통 보드카나 윈져를 시켜 놓고 꽤 진중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고는 했다. 대화를 살짝 엿들어 보자면 자기네들이 이태원의 산증인이고 자신들이 지금의 이태원 문화를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또 그들 간에 서열 관계가 확실했는데 서로 성님 동생 거리면서 나름 깍듯하게 챙기는 것이 보기에 좋았다.

그런데 항상 문제는 있다. 어디서 데리고 왔는지 모르지만 이제 갓 20살쯤 된 녀석이 만취 상태로 그 멤버와 함께 바에 온 것이다. 그날도 윈져를 시키고 가장 큰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는데 대뜸 그 만취한 녀석이 내게 오더니 자기가 킵해 놓은 술을 달라는 것이다. 얼굴도 처음 보는 녀석이 다짜고짜 내 뒤에 진열되어 있는 반쯤 마신 보드카를 가리키며 달라는데 공손하게 주시면 안될까요 해도 확인하고 줄까 말까한 상황에서 반말과 함께 욕지거리를 섞으며 저거 내놔 이 지랄을 하니 참을성이 점점 극에 달한다. 면상 한 대 치고 대타로 번 돈을 합의금으로 그냥 줘버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행히 합석해 있던 50대 성님들이 그 녀석을 부른다.

그 녀석은 마지못해 가는 듯하더니 이번엔 대뜸 얼음을 가득 달란다. 그래 차라리 얼음이나 먹고 정신 차려라며 컵에 얼음을 가득 담아주니 이게 아니란다. 양주를 시키면 보통 얼음 트레이에 얼음을 가득 담아 주는데 그걸 하나 더 달라는 것이다. 별거 있겠냐 싶어 얼음 트레이에 얼음을 가득 담아 주니 그걸 자리로 가져가더니 거기에 윈져를 콸콸 붙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그걸 손으로 휘휘 젖더니 자리에 앉은 40~50대 성님들께 따라주고 난리도 아니다. 성님들도 이제는 못 참겠는지 내가 널 이렇게 가르쳤냐? 며 역정을 내기 시작했고 급기야 자기네들끼리 시비가 일어났다. 고함과 욕설이 오가고 아까 내가 준 얼음 트레이가 날아다니며 박살이 났고 그 녀석은 빰 인가를 살짝 맞았던 것 같다. 그러더니 갑자기 전화를 꺼내더니 112에 신고를 한다. 순간 당황한 성님들이 너 그러는 거 아니야! 라며 말렸지만 들은 채 만 채 경찰에 신고를 했고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던 파출소에서 출동한 경찰들이 오기까지 3분 정도 걸린 듯 싶다.

당시 사장은 오아시스 바 한쪽에 마련한 방에서 근무 취침 중이었는데 경찰이 출동하자 혼이 나간 것처럼 다급히 밖으로 나왔다. 알고 보니 이런식의 출동이 잦았기에 파출소 쪽에서도 사장에게 여러 번 주의를 줬었든 싶다. 빰 한 대 때렸다고 연행해 가기도 그렇고 둘이 조용히 합의 보면 끝날 일이기에 경찰도 조용히 처리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불똥이 사장에게로 튀었다. 경찰 쪽에서는 이런 귀찮은 문제가 잦다 보니 영업정지를 시키겠다 뭐 그런 이야기를 사장에게 했던 듯싶다. 사색이 된 사장은(참고로 돈을 정말 중요하게 여긴다.) 경찰에서 빌면서도 동시에 신고한 녀석에서는 고함을 지르며 "왜 신고해! 신고를 왜해! 너가 뭔데 신고를 해!!! 빼액!!!" 하는 진기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경찰의 중재로 만취 녀석과 50대 성님이 서로 사과하며 일은 일단락됐고 사장은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쌍하다고 한탄하며 다시 근무 취침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내게 했던 말이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 경찰은 부르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그것을 지킬 마음은 없었다. 첫날 인수인계 받을 때 이미 들었던 얘기가 사장이 경찰 부르지 말라 해도 일 생기면 손떼고 무조건 경찰 부르고 모른 채 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웃긴 것은 그렇게 싸우던 것들이 또 한 테이블에 앉아 세상 가장 돈독한 듯 성님성님 거리면서 술을 마셔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긴 내 이해가 닿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제4부. 가슴에 장미 문신을 한 너]

이제 제목에도 나왔던 묘령의 여성이 등장한다. 사실 이 여자애 때문에 이 글을 적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이 가슴에 장미 문신을 한 여성(이하 장미라고 부르겠다.)은 내가 대타를 한 첫 날 부터 눈에 띄었다. 첫날 부터 정말 시도때도 없이 바에 드나 들던 그녀는 올 때마다 잭콕을 시켜 마시고는 했다. 보통 다른 바텐더가 만들어주는 잭콕은 콜라 많이, 잭다니엘 조금이라 맛이 없는데 오빠가 타주는 잭콕은 잭다니엘이 진해서 좋다며 좋아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보통은 혼자 바에 와서 혼자 온 다른 손님들과 친해져서 나가고는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바에 블랙리스트에 오른 여자애들이 셋 정도 있었는데 장미가 그중 한 명이었다. 밤에는 사장이 직접 운영을 하니 못 오고 이렇게 낮에만 왔던 것인데 뭐 나야 블랙리스트고 뭐고 그런 게 상관이 있나 그냥 술 달라면 주고 돈 받으면 그만인 것을 하면서 대했다. 오빠오빠 하며 귀여운 척 하는 것도 좋았고 가끔씩 팁도 주는 너그러운 아이였다. 그러던 중 문제의 금요일이 왔다.


졸려서 남은 이야기는 다음에 쓸게요...
다음 이야기는 장미와 저 사이에 있었던 아주 사소한 일에 대해서 적고 마무리 지을까 합니다.
여기까지 혹시라도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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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경찰 마음대로 영업정지 때릴 수 있나요?

저도 근처에서 들은거라 확실한건 아니고 그전부터 여러 문제가 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아마 그런걸 얘기하며 문제 좀 생기지 말라고 했던 듯 싶어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팔로우 하고 자주 찾아 뵐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어서 연재해주세요.

이태원 바에서는 이런일도 일어나는군요 ㅎㅎ

재밌네요

@hwavoon
앗 ㅋㅋㅋㅋㅋ 너무 적절한 곳에서 끊으셨네요. 빨리 다음글을 올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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