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존되지 아니하여
혜존되지 아니하여
혜존惠存 : `받아 간직하여 주십사'는 뜻으로,
자기의 저서·작품 등을 남에게 드릴 때 쓰는 말
중고책을 구입하여 첫장을 넘길 때 뜻밖의 손글씨가 적혀 있으면
유심히 내용이며 필체를 살펴보게 된다.
대부분은 책 구입자가 지인에게 선물한 것으로
애틋함 내지는 감사함의 헌사 몇 줄에 그 관계를 미루어 짐작해보지만
이내 넘겨지는 책장따라 생각도 펄럭 넘겨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에 구매한 중고 시집 니체의 [명정의 노래]에는
저자, 정확히는 번역자의 친필이 적혀 있어 한참을 눈여겨보기는 물론
검색을 통해 받는이의 신상 털기까지 해 보았다.
역자는 책 출간의 기쁨을 모 대학 철학과 교수와 함께하고자 했나보다
1998년 7월, 역자 정영도님은 신간이 고이 간직되길 바라는 맘을
‘혜존’이라는 단어에 담아 시집을 선물,
허나 혜존되지 아니한....
이 책은 1000원이란 가격에 나에게 왔다.
추측컨대 처음에는 대학 교수방 원목 책장 한쪽에 버젓이 자리했으나
시간에 떠밀려 헌책방을 전전하다 결국은 이곳까지 온 것일 터,
이래 얘기하니 우리집이 마치
인생의 막장 비스무리한 곳으로 전락해버린 것 같아
대략 난감이나 사실 열댓 마리의 강아지들
(이라 쓰고 목청은 수십 마리를 능가한다로 읽는다)의
왈왈 거림이 좀 신경 쓰여서 그렇지
(라고 쓰고 사실은 신경쇠약증에 걸릴 지경이라 읽는다)
그럭저럭 살만하다.
(라 쓰고 지ㄹ 이고 주껐다 아주!!)
실상이 어떻든 지금 내 거주공간의 막장 여부가 중헌거시 아니고...
어쨌든 역자의 바램과는 달리 니체 시집은 혜존되지 아니한 셈.
그러나,
꼭 대학 교수실 책장에 버젓이 꽂혀 있어야만 혜존이당가
비록 교수에 비할 바는 못하지만
나름 ‘멍석한 두뇌’를 자랑하는 ‘유사 지식인’으로서
애매 모호한 시적 은유나 비논리적 시인의 사유로 인한 혼돈이 엄습해와도
그닥 예리하지 못한 둔감둔감 지성은 그저 눈만 멀뚱멀뚱 하리.
책장을 쥐어뜯거나 책을 패대기치거나 할일은 애저녁에 없으리.
니체의 시란 이유로 모든 것은 용서되어질 것이며
절대 시집을 홀대 할일은 없을 것이며
오히려 경배할지어다
결론은,, 시집을 혜존 할그다,, 할끄다~~ 혜존!
(모쪼록 녀석들로 인한 오줌 세례나 책 한쪽 귀퉁이가 뜯겨나가는
불상사만은 안 일어나길ㅜㅜ)
마광수 교수의 자살!
소나무와 번개
니체
인간과 짐승을 넘어 높이 자라나
말을 거는데 나와 함께 말하는 이 아무도 없다
나 홀로 너무 높이 자라나-
기다린다-그런데 무엇을 기다린다 말인가?
내 아주 곁에 구름이 앉아 있다-
내 기다리는 것 첫 번개이로다
“자기 자신이 인간과 짐승을 넘어 너무나 높이 자라났기에
어느 누구와도 자기의 정신의 높이에서 더불어 말할 수 없는”
데서 오는 한없는 고독(p5. 옮긴이의 말 중)
을 견디지 못해 목을 매단 건 아닐까
직접적 사인은 목맴이라도 간접적 사인은 고독사 아닐까
나는, 우리는, 그를 ‘혜존’하지 아니하였다
어쩌면 그는 혜존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는지 모른다
다만 소통하고 싶었을 뿐!
사회가 미리 테두리 쳐놓은 강요된 소통이 아니라,
근엄하신 교수의 품위에 걸맞는 소통이 아니라,
솔직해 적나라한 본인의 컨텐츠를 통한 소통을 하고팠으리라
기다림에 지친 자,
차라리 영원한 불통을 선택해
스스로 구름으로 새끼 꼬아 번개를 지어내었다
비명같은 천둥소리 쟁쟁하여라.
부디 영면하시길 ()
혹여 먼곳에서 당신을 자꾸 부르는 듯한 느낌이 들거들랑
그건
후세의 때늦은 ‘말걸기’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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