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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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남짓 근무하고 휴직이라니.

승진은 하고 쉬는게 어떠냐.

주변에서는 이직준비나 자격증이라도 준비한다고 생각 했으리라.

나 역시 그렇다고 대충 얘기하고 실제로 시험도 봤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무기력과 혼란이었다.

오늘 하루는 뭐라도 하자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밖에 나왔다.

유치원생들이 유치원버스를 탈 때, 파자마를 입은 엄마들과 가끔 눈이 마주친다.

아마 내 나이 또래거나 나보다 어릴 그 여자들은

노-메이크업에 가슴과 엉덩이라인이 드러나는 펑퍼짐하고 늘어진 옷이 부끄러운지 가끔 눈을 피했다.

왜 그 나이에 이제 나가냐고 , 백수냐고 묻는 것 같았다.

30대 중반의 남자가, 출근복인지 일상복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옷차림으로 오전 10시쯤

혼자 커피숍에 들어가는 건 어색했다.

그래서 보험설계사라도 되는냥 재빨리 노트북을 켜고 메모지를 꺼내들고 무언가 적는다.

커피를 마시고 밖으로 나가보면, 이 모든 것이 나만의 착각이라는 것을 금세 알게 된다.

평일에도 거리에, 카페에, 도서관에 사람들이 넘쳐났다.

세상에는 나처럼 회사에 다니던 사람만 있는게 아니었다.

대형마트나 중고차매장에라도 가면 장사하는 젋은 남자들도 넘쳐났다.

타인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나에게도 그들은 그저 배경일 뿐이었다.

내가 의식하는 건, 보이지 않는 타인들의 욕망이자 타인의 시선에 대한 나의 시선일뿐이었다.

남들만큼은 살아야지,

서른이 훨씬 넘었는데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워야지, 안정되게 살아야지.

사람들은 볼수록 모두 달랐다.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욕망은 실체가 없었다.

난 자취를 오래했지만 조리하기 좋은 환경에서 살았던 적은 없었다.

혼자 원룸에 살고 여자친구가 주말에 방에 들렀다.

혼자일 땐 자위도 할 수 있고 함께일 때는 섹스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혼자일 땐 내 마음대로 음식을 시켜 먹고, 주말에는 여자친구가 요리를 해주거나 맛집에 갔다.

가끔씩 답답하면 드라이브를 갔다 오곤 했었다.

밖에 나가지 않을 때는 집 앞 편의점만 간신히 오가며 밥을 먹고,

(집주인이 싫어할게 분명하지만)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고,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고 가끔씩 맥주를 마셨다.

빔 프로젝트를 샀지만 귀찮게 작동하는 일은 없었다.

내가 먼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게 연락하지 않는 한, 잠시나마 완전한 타인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큰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가끔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한 인간의 원형(原形), 원시적인 형태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한 개인이 갖는 오리지널리티, 가끔은 희미하게 인식하지만 대개 잊어버리고 사는.

나는 정말 아무도 없는 외국에 나가서 살면 자유로울까 생각했었다.

이십대에 학교를 졸업하고 몇 달간 혼자 여행한 적이 있었다.

남들처럼 관광지를 돌며 기차를 타고 사람들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다시 숙소에 들어와

어둠속에서 느낀 내 감정들은 정작 혼란이었다.

장소가 바뀐다고 내 안의 어떤 것이 바뀌진 않는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고 결정하고 싶거나, 어느것이 옳다는 판단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놀러가는 날, 비가 온다고해서 하늘이 나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비가 오지 말라고 간절히 기도해도 비는 내린다.

다만 궁금하기는 했다.

그 비를 맞는 내가 진짜 나인지.

길었던 기간동안 나는 많은 꿈을 꾸었다.

대개 망상이었지만, 가끔은 정말 강렬하게 그 망상이 내 삶이고 지금 이 현실이 꿈인 것처럼 다가올 때도 있었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을 봤다.

“세상에는 많은 헛간이 있고, 그것들이 모두 나에게 태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해변에 외로이 서있는 헛간이나, 밭 한가운데 있는 헛간들...아무튼, 여러 헛간 말입니다. 15분이면 깨끗하게 타죠. 마치 처음부터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아무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단지 사라질 뿐이죠. 갑자기 말이죠.”

나에게 태워질만한 것이 있는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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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이지만 재미도있고 무엇보다 글 안에 몰입력이 있네요... 저도 현재 휴직중이기에 공감도 많이 되고 잘 읽었습니다ㅎㅎㅎ 글 정말 잘 쓰시는 것 같아요. 부럽습니다.^^

휴직중이시라니 더 반갑네요. 저는 거의 끝나가긴합니다만..ㅠ 의미 있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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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도 나중에는 의미있는 시간으로 돌아올테죠:]

그랬으면 좋겠어요,좋은 주말 보내시길 :)

정말 오랜만에 스팀잇에서 이런(좋은) 글을 읽는 것 같아요.
물론 좋은 글은 많지만, 솔직하고 담담하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글이라고 할까요.
휴직을 할 수 있는 마음과 용기 그리고 실행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간의 스토리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한심하기도 했는데 좋기도 했어요. 오랜만에 혼자가 되는 경험이어서요ㅎㅎ 감사합니다! 저두 자주 찾아뵙고 글 남길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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