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두고 오다.

in #kr6 years ago (edited)

어려서부터 덤벙거리는 성격에 내 것을 잘 챙기지 못했었다.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걱정에 우산을 가져 갔다가도 비가 오지 않으면 당연히 우산을 두고 집에 오곤 했다. 우산뿐만 아니라 신발가방, 숙제, 준비물 등 많은 것들을 챙기지 못했었다.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기차타러 가는 그 순간까지 폰은 충전기에 꽂고 전화나 업무상 사용 외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만삭의 몸으로 홀로 아이를 돌보며 출근까지 한 색시 앞에서 폰 만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다. 스팀잇을 하지못한건 아쉬웠지만 덕분에 가족의 얼굴을 더 많이 보고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임신 8개월차에 들어서니 색시의 배는 하루가 다르게 나오고 있었다. 첫째 때 보다 많이 나와 나도, 색시도 걱정이다. 혹시 배가 트면 평생을 속상함에 살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음같아서는 하루 온종일 색시와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귀여운 첫째가 심심해서 안달이다. 요즘은 역할극에 빠져 읽었던 책 내용을 역할에 맞춰 놀이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빠의 전매특허인 과격하게 놀아주기도 아주아주 좋아 한다. 첫째와 즐겁게 놀다가도 문득 힘들어 하는 색시의 모습이 눈에 비친다.

2월말 이사를 준비하느라 마음이 바쁘다. 내가 일자리를 구했고, 색시는 출산 후 휴식이 필요하기에 내 직장이 있는 부산 근교로 이사가려 한다. 첫만남부터 소리치던 집주인이지만 돈이 부족한 우리는 계약을 물리겠다는 말도 못하고 들어가는 거라 더 꼼꼼히 준비해야겠다는 부담도 있다. 장거리 이사에 이사 날자도 안맞아 보관이사까지하니 이사비용도 만만치 않다. 나도 걱정이 많은 사람이지만 색시는 걱정이 더 많은 사람이기에 별 말은 안해도 표정에서 근심이 떠나질 않는다. 그저 행복한 사람은 우리집에 아가야 밖에 없다. 너라도 행복하니 참 다행이지만 아빠는 엄마가 걱정된단다. 아빠가 더 능력있으면 좋으련만.

첫째 유치원도 걱정이다. 나라에서는 아이를 낳으라고 한다만 어디 낳기만 하면 되는일인가? 키우며 걱정할 거리가 한 두 개가 아닌 것을. 당장 첫째가 유치원에 가야하는 데 이사가는 곳에 신도시 개발로 아이들은 많아지고 유치원은 적어 대란이 벌어졌었다. 사립유치원 50명 모집에 700명이 지원했으니 말 다했다.(한 곳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지역 대부분의 유치원에서 발생한 일이다.) 대란에 민원이 많이 발생해 다행이 병설유치원이 추가 편성되고, 자리들이 생겼다. 직장과 가까운 곳에 유치원이 있어 그곳에 내일 원서 접수, 금요일에 공개추첨을 하려 한다. 그곳에 붙으면 아이 등하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병설이라 믿고 보낼 수 있어 간절히 바라고 있는 상태다.

체감되는 시간의 흐름은 상대적임은 느끼는 주말이었다. 분명 방금 얼굴보며 보고싶었다며 인사를 나눈 것 같은데 어느새 두고가는 물건은 없냐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애도 아니고, 걱정말라며 웃으며 집을 나섰는데 고시원에 도착하고 나니 알게됐다. 마음을 두고 와버렸다.

덤벙거리는, 꼼꼼하지 못 한 성격에 색시를 챙겨주지 못 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둘째에게 자리를 내어주느라 허리 통증에 시달리는 것도 안타까웠는데 온몸이 아프고, 이도 시리다는 색시의 카톡을 보니 몸은 여기에 있지만 나는 여기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부디 두 달이 어서 지나가 색시도 둘째도 건강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두고 온 마음을 찾으러 갈 수 있도록 빨리 주말이 오면 좋겠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고, 따뜻함으로 대하려 노력하지만 색시가 힘들어하니 그게 참 안되네요. 답답한 마음을 글로나마 풀어봅니다. 큰 일은 아니지만 작은 일도 아니기에 걱정되는 것을 어찌 할 수 없네요. 내일부터는 다시 긍정적으로 힘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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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귀여운 첫째네요. 우수에 찬 눈빛이 인상적입니다.
그와 더불어 수필같이 찬찬히 잘 읽히는 글
읽고 조용히 보팅 팔로우하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 )

못 쓴 글이지만 그래도 잘 써보려 노력하는 데 칭찬받으니 기분 좋네요.
자식 칭찬에 미소지어지는 건 막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

역시 부모의 길은 한번이든 두번이든 쉽지 않은것 같아요.
아이가 있는 세상 모든 부모님들을 존경합니다.^^
좋은 결과가 있으시길 바래요! 당첨 가즈아~~

그러게 말입이다. 처음도 아닌데 더 걱정되고 마음이 쓰이네요. 둘째도 이리 마음이 쓰이는데 셋째 이상 낳으시고 기르시는 분들은 정말 나라에서 상주셔야해요.

후피님 다 잘되시길 바랄께요. 첫째아이유치원 이사문제 와이프님 건강도 뱃속에 있는 아이도 좋은일만 가득하실겁니다.
주말이 정말 기다려지실거 같아요. 힘내세요!!

말씀처럼 정말 좋은 일 가득하면 좋겠어요.
주말 너무너무 기다려집니다. 힘내서 생활하고 주말을 누려야겠죠? 감사합니다 : )

후피후피님! 바라시는 소망 꼭 이루시길 기도할게요! 마음은 꼭 전달되니까 예쁜 마음 아내분에게도 둘째에게도 전달되리라 믿어요. 큰아가는 넘 이뻐서 어떻게 두고 오셨어요 ㅠㅠ 응원합니다! 화이팅!

두고오며 참 마음아팠답니다. 아기도 아기지만 색시가 더 걱정입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힘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앗 저도 아이 유치원추첨때 엄청 긴장했었는데 다행히 원하는 곳이 당첨이 되었어요 저의 유치원 추첨운 보내드릴게요🙏🏻 잘되실거예요^^
첫째와 임산부 아내를 두고 내려오는길에 발걸음이 안떨어졌을거 같아요.. 얼른 주말이 오길요:)

금손이 되어 꼭 당첨공을 뽑아야 할텐데요. 운 받아갑니다!
하루하루 주말만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요 ~~ ^^
유치원에 꼭 당첨되길바랍니다!

사랑스러운 우리 공주님 유치원 꼭 되야할텐데요 걱정입니다.
딸래미 이뻐해주셔서 당첨 바라주셔서 감사합니다 : )

귀엽기만한게 아니라 야무지게 생겼어요^^
hoopy님의 따뜻한 마음으로 꼭 유치원 될거예요!!!

야무지게 자라도록 노력중입니다!
따뜻한 마음이 당첨까지 이뤄준다면 더 없이 따뜻하게 살아야겠네요 : )

블로그에 가서 글을 보려니 최근 글은 안올리시고 댓글만 달아주시네요 ㅠ
간병 많이 힘드시죠? 좋은 소식 항상 기다리고 있어요.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배래요~!
당첨가즈아~!

정말 외치고싶은 말이네요
가즈아~!

유치원 당첨되실거에요!! 너무 걱정마세요~~ ^^
애기가 너무 예쁜거 아닌가요~~ 월요병이 날아갈 거 같아요 ㅎㅎ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월요병을 날릴 미모라니요 그저 미소짓게되네요.
유치원 꼭 당첨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칵테일 글을 볼 수 있게되면 더 좋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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