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定義)의 문제 : 우리는 폰지사기에 속고 있는가?

in #kr7 years ago

정의(定義)는 합리의 수호자요, 정신적 분열의 혼란에 맞서 싸우는 최전선이다. - Ayn Rand, “The Romantic Manifesto”, 1975, p.77

블록체인 토큰 시장이 세간의 화제가 된 지도 어느새 6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정부의 규제 움직임도 있었으며 토큰의 가격이 급등락을 반복하는 움직임도 있었고, 많은 투자자들이 이런 미세한 파동에 울고 웃기를 반복해 왔다. 이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으로 대표되는 블록체인 토큰을 모르는 사람은 상당히 많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광범위하게 블록체인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심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토큰 시장은 ‘폰지’ 라는 많은 비난에 직면해 있다. 과연 그러할까?

단호하게 ‘아니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비트코인 마켓은 폰지사기의 정의와는 아예 다른 Definition 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이 글을 보는 당신께 지금 당장 토큰을 매수하라는 뜻 또한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토큰 시장은 왜 폰지가 아니며 토큰 시장에서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가? 지금부터 하나씩 알아 보도록 하자.

  1. 플랫폼 비즈니스는 그 성격상 선두 그룹의 구성원 중 일부가 대부분의 이익을 향유한다.

토큰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일반적인 비즈니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Double Standard’ 의 성격을 띤 것이 진짜 문제다.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본질적으로 플랫폼 비즈니스다. 플랫폼은 곧 많은 참여자수의 확보가 사활의 여부를 결정짓는 요소다. 블록체인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카카오와 네이버가 모바일 및 인터넷 플랫폼 비즈니스의 파이오니어 그룹 중 하나였고 이들은 수많은 ‘노드’ 를 확보한 끝에 시장지배적 위치를 확립했다. 그 뒤에 뛰어드는 사람이 유사한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거나 극단적으로 파산한다 할지라도 이는 이 산업의 구조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본질적 성격인 것이다.

블록체인 토큰 시장을 비난하는 의견 중 대다수는 “먼저 채굴에 참여한 고래들이 대부분의 이익을 향유하고 나중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폰지사기의 가장 밑바닥으로써 서로가 이전투구만 하는 끝에 손실만 보게 된다.” 는 견해를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카카오 김범수 의장에게 지금 달려가셔서 그간 폰지사기의 꼭대기에서 플랫폼 독점으로 얻은 광고수익 등은 모두 부당하니 사업을 그만 두시고 이익은 모두 소규모 플랫폼 개발자와 나눠 가지자고 이야기 해 봅시다 라고 제안한다면 아무도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블록체인 토큰이 Background Value 를 검증할 합리적 수단을 갖추지 못한 채 성급하게 법정화폐와 교환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폐해를 옹호하고픈 마음은 없다. 그러나 지금은 그 가치를 찾는 탐색의 기간일 뿐이라는 것이다. 신생 비즈니스가 스스로의 가능성을 찾는 탐색의 기간에는 시장 안에서 사기꾼도 나타나며 돈을 잃는 사람도 팔자를 고치는 사람도 나타난다. 이는 자본주의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고래들이 토큰을 손에 쥐고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 이 폰지사기의 투자자는 대체 누가 모집하며 배당은 누가 지급하는가?

블록체인 토큰 시장은 폰지사기의 정의 중 가장 기초적인 양태조차 공유하지 않고 있다.

폰지사기의 특징 중 가장 큰 특징은 후발 투자자의 투자금으로 선행 투자자에게 현금 ‘배당’ 을 지급한다는 점이다. 블록체인 토큰 시장을 폰지사기로 일컫는 분들은 역시나 이 점을 꼬집고 넘어간다. 후행 투자자가 참여한 탓에 가격이 오른 것을 선행 투자자가 고스란히 가져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얼핏 보면 그럴듯해 보이나 실상은 다르다. 폰지사기는 물리적인 형태로 지급되는 ‘배당’ 이 지속적으로 빠져나감으로써 스스로의 모순을 이기지 못하고 붕괴되지만, 블록체인 토큰 시장은 가격이 하락하면 고래들도 함께 평가손실을 입는다.

고래들이 가격을 띄워 놓고 개인투자자들이 몰려들기만을 기다렸다가 ‘작전’ 을 펼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비트코인의 예시만 들어 봐도 아직까지 고래들이 Token-Run 을 벌이고 있다는 징후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서 간단하게 반박된다. 이 시장은 명확하게 평가손실과 평가이익으로 이야기 되고 있고, 고래들이 토큰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네트워크 상에서 물리적인 배당을 받지 않는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폰지사기 논란은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투자자 모집책이 없다는 것은 그저 양념일 뿐이다.

오히려 배당지급의 성격에서 관찰했을 때 폰지사기와 정확히 같은 형태는 각국 정부의 연기금이다. 그러나 연기금은 정부의 강한 권위가 참여자들에게 신뢰를 주기 때문에 개인이 드라이브하는 폰지사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언젠가는 고갈된다는 본질적 특성의 공유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 Fraud 의 성격을 가진 토큰이 많으므로 시장 전체가 사기성을 띠고 있다?

새로운 재화의 등장은 시장 참여자 간 정보격차를 수반하기 때문에 항상 초창기에는 사기성을 지닌 거래의 위험성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정부 규제의 시차 및 정보격차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당연한 사실에 불과하다. 그러나 각국 정부가 블록체인 토큰에 대한 연구를 완료하고 본격적으로 시장을 내사하게 된다면 지금 시장에 판치고 있는 수많은 스캠(Scam)들은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이는 자본주의가 시작한 이후 새로운 재화가 등장할 때마다 단 한 번도 거치지 않은 적이 없는 과정이다. 다만 상기 강조했듯이 블록체인 토큰의 환금성이 너무 성급하게 부여된 것이 문제이다. 개발자와 토큰에게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1. 가격의 변동성이 크고 메이저 물주가 시장을 조작할 수 있으므로 폰지사기다?

제도의 미비를 시장의 잘못으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

당장 주식시장을 보자. 한국의 유가증권시장은 이제 자리를 잡은 지 30년에 가까워 오지만 아직도 주가조작과 개별종목에 대한 작전 시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러나 대부분이 실패하는 이유는 한국거래소에서 그간 축적되어 온 경험 등을 바탕으로 신뢰성 있는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여 매의 눈으로 시장을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탁결제 기능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피해 구제도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의 블록체인 토큰 거래소는 매매/결제/청산/예탁기능을 모두 보유한 기형적인 형태인데다가, 관계당국의 경험도 일천할 뿐더러 시장의 변동성을 축소시킬 수 있는 파생상품의 존재 역시 전무하다. 결국 이 시장의 큰 변동성은 파생상품과 기관투자자의 부재 및 제도의 미비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지 블록체인 토큰이 사기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비난이 아닌 탐색을 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지금 당장 블록체인 토큰 거래소에 계좌를 등록하여 토큰을 매수하면 되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바로 ‘탐색’ 이다. 시장에 미비한 기능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진짜 블록체인 기술과 사기꾼을 구별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토큰의 환금성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변동성을 낮출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죄의식을 벗자. 우리는 폰지사기에 속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어두운 밤에 우리의 감각에만 의지하여 길을 찾고 있을 뿐이다. 지팡이를 찾으면, 손전등을 찾으면 한결 길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발걸음을 멈추는 것은 해답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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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이야기 해 봤자 욕이나 푸지게 먹게 될 것이다.... (Sad Hingo)

사실 진짜 가장 큰 폰지는 fiat이 아닐까 해봅니다 ㅎㅎ

격하게 동의합니다 @noctisk 님!!

일리 있는 말씀이십니다 ㅎㅎ

글 잘 보았습니다. 매번 느끼지만 이쪽 관련 논의는 (감성에 기반해) 답을 먼저 정해놓고 주장하는 경우가 특히 많은 것 같아요. 일단 맘에 안드니 비슷한 케이스를 하나 찾아서 덮어씌우고 비난하는. 플랫폼 비즈니스라는 시각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프레임을 덮어 씌우는 것은 아주 쉽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번 JTBC 토론회 때에도 유시민 작가의 견해에 아쉬움이 많았던 것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뭔가 논문을 읽고 가는듯한..
좋은글 감사합니다.ㅎ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공감합니다. 계속 탐구해나가야할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날카로운 비판 감사합니다.
세간의 시선을 논리적으로 반박하셨네요!

사전적인 정의만을 가지고 이야기 해 본 것입니다 ㅎㅎ 본디 문제가 헷갈릴 때에는 사전을 찾아보는 것이 가장 기초적이고 재미 없지만 오답을 낼 확률이 적은 방법이니까요.

안타까운 현실이죠~...

그러게 말입니다 ㅠ.ㅠ

어떤 문제에 직면하든지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이 더욱 절실한 시대인거 같습니다.

특히 우리가 여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이 등장했을 때에는 더욱 필요한 능력이겠지요.

좋은 글이 많네요
팔로우했습니다~ 앞으로도 잘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가장 추운날이 될꺼같아요!
완전 무장하고 하루를 시작했네요! ㅠㅜ
감기 조심하세요~~

어휴 정말 양심 없이 춥더군요~ ㅠ.ㅠ 감사합니다!!

(디지털)상품 + (디지털)생산자 + (디지털) 수요자 +(디지털)화폐= (디지털) 경제 ...
앞에 디지털만 붙이면 되는데.. 이전까지는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화폐가 없었는데..비트코인이 온라인 상의 이중지불 문제를 해결하면서.. 디지털화폐로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에..이제 진정한 디지털 경제가 만들어 질 듯합니다..큰 그림만 보고 가면 될 듯합니다.. 팔로잉 및 보팅 드립니다.. 짱짱맨은 님과 같은 깊은 사유의 디지털 생산자와 같이 합니다.

동감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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