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격씬 거의 없는 <공작>, 스릴 넘치는 이유는?

hanyeahwest (43)in #kr • 6 years ago (edited)

윤종빈 감독의 신작 <공작>을 8월 2일 밤 시사회에서 관람했습니다.

화려한 총격전도 없는데 남북한 요원의 심리 대결을 스릴 넘치게 그린 게 인상적이더군요.

감독은 어떻게 이런 첩보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이 영화에서 황정민, 이성민, 주지훈이 각각 연기한 캐릭터는 아주 매력적인데요.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군도>를 통해 감독이 그려온

'이빨'과 '깡다구'로 싸우는 남자들의 총출동 같은 영화입니다.

<비스티 보이즈>의 윤계상이 스스로가 가진 게 없다는 걸 감추기 위해 과장하고 과시했다면

<공작>에서 황정민도 자신만 통하면 남북간에 못할 사업은 없다는 듯이 북한 고위층에 접근합니다.

아버지 사업이 망한 이후 윤계상에겐 쥐뿔도 남지 않지만 그는 짐승들이 돌아다니는 밤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과장하고 과시합니다

또,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이 기싸움에서 밀리면 자신의 사업도 끝장난다는 절박감으로 조폭에게 덤벼든 것처럼

황정민 역시 북측 인사가 자기 머리에 총구를 겨누더라도 자신의 신념만큼은 꺾지 않는 호연지기를 보여줍니다.

최민식은 허세를 부릴지언정 조폭과의 기싸움에서 절대 밀리지 않으려 애를 씁니다. 조금은 우습기도 하지만 가장의 절박함이 서려 있어 씁쓸해 보이기도 하죠.

여튼 <뮌헨>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떠올리게 하는 아주 우아하고 서늘한 한국형 첩보물을 볼 수 있게 돼 기분이 꽤나 좋았습니다.
'밥상머리의 첩보물'이라는 제목으로 <공작>을 리뷰해봤습니다.

1. 밥상의 첩보물
윤종빈 감독에게 밥상머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장소가 아니다. <비스티 보이즈>에서 윤계상과 윤진서가 식탁을 두고 서로의 마음을 엿봤다면, <범죄와의 전쟁>에서 하정우는 테이블 너머의 조진웅과 서열 정리를 했다. <공작>에서 관객은 그저 남측 황정민과 북측 이성민이 밥과 술, 안주를 나누는 장면을 봤을 뿐인데 마치 현란한 총격전을 본 것 같은 스릴을 느낀다. 데뷔 때부터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포착해온 윤 감독은 드디어 밥상만 가지고도 남북 관계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

2. 상상이 아닌 취재로 그린 북한, 북한 사람
사실 한국만큼 첩보물을 잘 만들기 좋은 환경을 갖춘 국가도 없다. 한반도에서 분단과 대치는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니 말이다. 그런데 어쩌다 한번씩 제작된 첩보 영화들은 어딘가 아쉬움이 있었다. 상상력에 기반해 그려진 북한의 인물들에게 생생함이 결여됐던 게 주 원인으로 보인다.
<공작>은 앞으로 첩보물을 만드는 한국 감독들에게 바이블이 될 가능성이 크다. 치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살아있는’ 북한 사람을 그려냈다. 영화 속 캐릭터는 주요 인물 넷을 비롯해 김정일과 하급 요원들까지 남북을 가리지 않고 모두 각각 다른 방식의 욕망을 지니고 있다. 주지훈의 비열한 연기, 이성민의 절제된 감정, 황정민의 호연지기 전부 극을 향한 몰입도를 키운다. 다만, 조진웅이 <아가씨>때를 연상케 하는 과장된 연기를 하는 건 전체 영화 톤과 다소 안 맞는 인상이지만 이마저도 아주 튀는 수준은 아니다. 공간 배경으로서의 북한도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리얼하다.

3. 한반도의 <뮌헨>
윤종빈 감독은 생애 첫 첩보물을 만들면서 스필버그의 <뮌헨>에 견줄 만한 수작을 내놓는 데 성공했다. 특히, 달릴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인물들의 상황을 슈베르트의 <마왕>처럼 담아낸 점이 긴박감 넘치면서도 우아하다.
p.s. 황정민의 얼굴은 어딘가 <뮌헨> 에릭 바나와 닮아 있다.

자신을 부정하고 숨겨야 성공할 수 있기에 첩보는 쓸쓸하고 고독한 행위다. 위는 <뮌헨>에서 에릭 바나, 아래는 <공작>에서 황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