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리가 해야한다 - 사법부의 민주적 통제에 대한 사견

in #kr6 years ago

결국 우리가 해야한다 - 사법부의 민주적 통제에 대한 사견

5469888D-4108-497D-8D6C-D66D47210590.jpeg

중학교 때, 사회 교과서에서 국가기관 신뢰도라는 걸 본 기억이 있다. 국회, 정부, 법원 중에서 법원이 가장 높았다. 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법원에 가서 억울하다고 호소하면 법복을 입고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판사님들이 잘 판단하여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지 않았겠냐는 생각을 한다. 사법부란 그런 이미지다. 최후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이 저울을 들어 공평하게 사안을 처리하고, 칼로 준엄하게 심판하는 곳. 물론 빈부격차, 전관예우 등등으로 인해 불의의 판결이 나올 수는 있지만, 그래도 조금 덜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믿음은 기어코 산산이 박살 났다. 최근 언론들은 일제히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 아래의 대법원이 청와대와 사법 거래를 했다는 보도를 하고 있다. 엄중히 중립을 지켜야 하는 대법원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삼권분립을 발로 차버리고, 약자들에게 폭탄을 던져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의 권위는 당연히 바닥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또한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이런 법원에 분노하게 된다. 그동안 많은 불신이 있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희망이라고 믿었던 법원은 결국 우리가 불신하던 다른 기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제야 우리는 좀 더 명확하게 현실을 되돌아보게 된다. 법원조차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게 된다. 이제 믿을 곳은 하나도 없다. 그럼 우리는 어찌 해야 할까? 이제 무기력하게 정치 혐오증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할까? 어차피 촛불을 들어도 바뀌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러기에는 법원에서 나오는 판결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꽤 크다.

무엇을 해야 할까? 답변은 간단하다. 우리가 사법부를 통제하거나, 아예 직접 판결을 내리면 된다. 무슨 망발이냐고 소리칠 것이다. 우리가 법을 배운 것도 아니고, 공정성을 해친다고 우려할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자. 지금 많은 지자체 후보들이 미세먼지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들은 미세먼지 전문가인가? 그리고 그걸 보고 어떤 후보들이 좋다고 말하는 우리도 미세먼지 전문가인가? 전문성을 언급하면, 애초에 우리가 민주적으로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전문가에 맡기면 간단하다.

공정성도 생각해보자. 지금 사법부도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 마당에 저들에게 맡기는 게 무슨 소용인가. 우리가 직접 관여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선동에 대한 걱정도 마찬가지다. 엘리트 판사님들도 선동에 충분히 휩쓸린다. 국민 법감정 때문에 기존 체계가 훼손된다고 우려하는 걱정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국민이 법을 만들었으니, 국민의 의견대로 법을 적용해달라는 것도 당연하다. 오히려 그걸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판사가 민주사법과 가장 거리가 멀다. 공정성의 기준은 그 사회의 구성원인 국민이 제정하고 개별 사안에 적용해야 한다. 사법이란 영역은 결코 시험 합격자들에게만 열려서는 안 된다. 사법은 모두의 것이다. 일부에게만 개방된 사법이 더 고귀하고 공정하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법원의 문이 더 크게 열릴 때야 비로소 사법부는 공정성을 찾는 첫 번째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사법부를 더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의 당위는 확실하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현대 민주국가의 가장 기초적인 그리고 핵심적인 권력이다. 이들은 국민을 위해서 일해야 하고, 그렇기에 그 의중은 국민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거로 선출한다. 어떨 때는 아예 국민 전체가 모여 하나의 사안에 대해 투표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법부는 그러지 않는다. 법을 적용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라는 이유 뒤에 숨어있지만, 실상은 민주적 통제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최후로 남겨놓은 보루와도 같은 곳이다. 사법부라서 투표에서 제외되어야 하는 게 아니다. 사법부니까 투표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시민이 쥐고 있는 칼은 그 누구에게도 예외를 허락하지 않아야 한다.

배심원제는 확대되어야 하며, 그들의 의견을 법관은 수용해야 하며, 적어도 대법관들은 간선이든 직선이든 선거로 뽑아야 한다. 평판사들까지 선거로 뽑을 이유는 없다. 그들은 법의 해석자로서 시민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맡으면 된다. 판결은 시민들이 내리면 그만이다. 이건 발칙한 상상이 아니다. 배심원제 자체는 세계적으로 낯선 제도가 아니다. 심지어 판사와 같은 위치에서 사건을 판단할 수 있는 참심원제도도 꽤 많은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다. 우리가 더 많이 참여하고, 사법부를 통제할 수 있는 제도는 이미 그 안이 여러 가지고, 실제로 시행되고 있다. 그런 추세에 맞추어 한국에서도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했지만, 강제력이 없다는 점에서는 아직도 미진하다.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민주주의는 두려움 없이 권력을 모두가 공유하는 순간 시작된다. 사법부라고 해서 별거 아니다. 그냥 삼권 중 하나다. 우리가 정부와 국회를 통제했던 방식 그대로 하면 된다. 이미 우리는 대법관을 대상이 되는 사람들만 선거권을 부여하기는 했지만, 선거를 시행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선거일은 1961.05.17이었다 하루 전 쿠데타가 일어나서 무산되었다) 그건 4월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로 만들어진 제도였다. 우리가 이전의 민주주의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면, 제도도 더 진일보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도 할 수 있다. 저들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 있게 주장하자, 우리의 권리를 되찾자. 그 순간 더 민주적인 사회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Coin Marketplace

STEEM 0.17
TRX 0.16
JST 0.029
BTC 62151.48
ETH 2421.34
USDT 1.00
SBD 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