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없는 영화타래 03. <변호인> (2013) - 아직 해피엔딩은 없다.
별거없는 영화타래 03. <변호인> (2013) - 아직 해피엔딩은 없다.
2013년에 개봉한 영화 변호인은, 최근 유독 많이 나오고 있는 현대사 영화의 스타트를 끊은 영화 중 하나다. 적절한 시류를 탔고, 명확한 권선징악의 구조로 되어 있다. 설사 영화에서는 완전히 그것이 실현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이미 결말을 안다. 송우석 변호사가 성공한 세상을 살고 있지 않은가. 불완전하기는 해도, 적어도 어느 정도 다른 나라에 가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고 말할 정도는 되었다. 그렇다. 우리는 이 영화의 해피엔딩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해피엔딩이면 그게 전부인가? 생각해보자. 공주님과 왕자님은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하는 동화책들을 생각해봐라. 정말 공주님은 행복한가? 이전보다는 행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러 압박은 계속 들어온다. 궁전에서의 처신, 정치 등등 왕비님이 된 공주도 피할 수 없다. 하나의 행복이 찾아왔다고 끝이 아니다. 그 이전의 불행이 끝나서 행복하다는 것으로 책은 마무리되지만, 그 뒤에 어떤 불행이 찾아왔는지 알 수 없지 않은가? 당장 동화만 생각해도 그런데, 현실을 바탕으로 한 변호인은 어떠하겠는가?
1987년 6월 29일 이후 우리는 민주화를 달성했다고 한다. 문민 출신의 대통령이 나오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었으며, 최근에는 부패하고 무능한 대통령을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퇴출했다. 이만하면 이 글의 의문은 형편없어 보인다. 부족한 점이 있지만, 이 정도면 해피엔딩 아닌가? 그런 관점은 하나만 보고 둘은 보지 못한 것이다. 분명 한국이라는 나라는 이전보다 나아졌고, 나아지고 있다.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의견들과 개선책이 마련되고 있다. 누가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금 우리는 해피엔딩을 이루지 못했다. 관심을 가지지 못할 뿐이지, 여전히 힘든 사람들이 많다. 굴뚝 위에 올라간 노동자들, 쫓겨나지 않기 위해 오늘도 힘겹게 버티는 세입자들, 혐오 발언에 오늘도 두려워하는 성소수자들 등등. 예는 무수히 많다. 당장 우리 주변을 돌아봐도 그런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다. 이런 상황에서 송우석 변호사가 외치는 ‘국가는 곧 국민’이라는 말은 공허한 외침처럼 들린다. 국가가 국민이라면서, 어찌 이렇게 내버려 둘 수 있는가. 이를 모시고 가꾸어야 할 국가는 도대체 무얼 하는 건가.
상황이 다르다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당시는 고문하고, 사람을 죽이던 시절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냐고 항변한다. 그렇다면 지금 도대체 노동자나 소수자들은 어째서 신음하는가. 고문당하는 것만큼 삶이 고달파서, 그리고 생활수단을 강탈당하고 죽을 것 같아서 그런 거 아닌가? 사람을 찍어 누르는 방식이 교묘해지고 더 은폐되었을 뿐, 당시보다 더 나아진 건 그다지 없다. 어디 호소해도 ‘좌파의 준동’이라거나, ‘왜 지금 정권에 난리냐’라고 양측에서 조롱하지 않는가.
변호인의 시대에서는 우리 모두 민주화를 달성하면 사람 사는 세상이 온다고,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온다고 희망을 품었다. 그래서 서로 뭉쳐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그리고 제6공화국이 출범했다. 대통령을 직접 뽑고,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늘에 있는 사람들은 햇빛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한때 동지였던 이들이 태도를 돌변해 그늘에 있는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게의 양상이 그러하다. 우린 배신당했다.
영화 변호인의 한계는 바로 그런 지점이다. 현실에서 살림살이가 전혀 나아지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해피엔딩은 없었다는 것. 하지만 동시에 의의이기도 하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불의에 항거하라는 사실. 그리고 그러면 이긴다는 사실. 아직 물러설 때가 아니다. 저 시대에서도 성공했다. 지금은 다소 후퇴할 시기일 뿐, 앞으로 나아갈 기회는 많다. 영화에서는 변호사 송우석이 그것을 모두 해냈지만, 현실에서는 스스로가 자신의 변호인이 되어 이룩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가 국민이고, 사람이 우선이고, 살맛 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원론적인 이야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마저 조롱당하는 시대다. 촛불 이후에 모든 게 해결되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공격들이 그렇다. 그들은 늘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을 모른다. 언제나 괴로워하던 사람들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애국이라고 믿는다. 영화에서 차동영이 했던 짓을 말로 하고 있다. 태평천하의 윤 영감처럼, 지금이 태평천하라고 믿는 이들의 환상은 잘못되었다. 주변을 돌아보라. 진정 변호인의 엔딩이 완성되었는지 다시 판단하라. 도와줄 거면 도와주고, 그러지 않을거면 그냥 가라. 만족해 사는 사람들의 조롱은 고통받는 이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당신들은 차동영처럼 비난받는 캐릭터가 되고, 물러서지 않은 이들은 제2의 송우석이 되어 주연으로 일어서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