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체온은 왜 37도일까
사람은 항온동물에 속한다. 내 곁의 사람이든 나든 인간이라면 37℃라는 특정 온도를 띠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37℃일까.
36.5 또는 37.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 숫자가 인간의 체온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러나 이 숫자만큼이나 인간의 체온이 단순할까. 때때로 자신의 팔을 만져보면 따뜻한 정도가 항상 똑같지 않다. 인간은 항온동물로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시킨다고 하는데, 왜 팔과 같은 인체 부위의 온도는 일정하지 않을까. 사실 ‘일정한 체온유지’는 몸 전체에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인간의 체온유지는 몸통 내 여러 장기, 예를 들어 심장, 신장, 폐, 간, 내장 등에만 의미가 있다. 이런 장기에서는 37℃ 정도로 거의 균일하게 유지되는데, 이를 심부온도라고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체온이라고 하면 바로 이 심부온도를 말한다. 그렇다면 피부와 같은 말초조직의 온도는 무엇이 결정하는 것일까. 외부환경에 의해서일까.
손발은 차지만 이마는 따뜻하다
인체는 대사작용에 의해 끊임없이 열을 생산한다. 안정한 상태에서 체내 열생산의 70% 이상은 여러 장기에서 일어나며, 피부나 근육 등의 말초조직에서는 약 30%의 열량을 생산한다. 따라서 피부조직은 그 자체에서 생성되는 열량이 아주 작기 때문에 피부온도는 혈액순환에 의해 체심부로부터 피부로 운반되는 열량에 의해 결정된다.
체심부에서 37℃로 데워진 동맥혈은 온도가 낮은 피부로 흘러와서 열을 잃고 찬 정맥혈로 돼 다시 체심부로 돌아간다. 혈액의 이런 작용 때문에 여러 장기에서 생성된 열이 체표로 이동될 수 있어 심부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만일 심부온도가 높아지면 이를 낮추기 위해 열을 더 많이 발산시켜야 하는데, 이를 위해 피부로의 혈액순환량이 증가된다. 그 결과 체심부로부터 피부로 운반되는 열량이 증가해 피부온도가 높아진다. 반면에 심부온도가 떨어질 때는 체열발산을 줄이기 위해 피부혈관이 수축되므로 피부로 흐르는 혈액량이 감소돼 피부온도가 떨어진다. 즉 피부온도는 환경온도에 의해 직접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피부로 흐르는 혈액량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추운 곳에 노출될 때 손발이 찬 것은 환경온도가 낮아서 피부가 차가워졌기 때문이 아니다. 추운 환경에서 심부온도를 유지시키기 위해 피부의 혈액순환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순환조절이 손발이나 사지에서는 잘 일어나지만 가슴이나 머리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머리의 혈액은 뇌 조직에 산소와 영양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머리 쪽으로의 혈액순환은 언제나 원활히 이뤄져 환경온도에 따라 조절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인체가 추운 곳에 노출될 때 손발은 차지지만 이마의 온도는 내려가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 몸에서 조절되는 온도는 심부온도이지 피부온도가 아니다. 심부온도를 유지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생리적 조절작용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신체 각 부위의 피부온도다. 생리적 조절작용의 정도는 부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피부온도는 부위에 따라 다르다.
동상은 체온유지 위한 고육책
때문에 때로는 심부온도를 유지시키기 위해 말초조직은 희생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추운 환경에 오래 노출돼 있을 때는 체열손실을 줄이기 위해 사지말단으로 가는 혈액순환을 최소로 유지시킨다. 그 결과 손끝이나 발끝은 오랫동안 혈액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해 동상에 걸리고 만다.
심부온도의 조절작용을 관장하는 곳은 뇌 시상하부에 있는 체온조절중추다. 체온조절중추는 뇌로 들어오는 혈액의 온도를 체크해 시상하부에 입력된 기준온도(set point temperature, 인간의 경우 약 37℃)와 비교한다. 이 결과 기준온도보다 높거나 낮으면 기준온도와 같아지도록 조절하는데, 이런 조절작용을 통틀어서 체온조절이라 한다.
만일 시상하부를 지나가는 혈액의 온도가 기준온도보다 낮으면 체온(심부온도)이 내려간 것으로 판단하고 체온을 올리기 위해 일차적으로는 체열발산을 줄인다(팔다리로 가는 혈액의 양을 감소시킨다). 그래도 심부온도가 계속 내려가면 떨림이 일어난다. 떨림은 근육이 무질서하게 수축되는 현상이다. 때문에 외부에 일을 해주지 않아서 근육이 수축할 때 소모되는 에너지가 모두 열로 방출되므로 효과적인 열생산 수단이 된다.
반면에 뇌의 혈액온도가 기준온도보다 높으면 체온이 올라간 것으로 간주하고 체온을 낮추기 위해 말초혈관을 확장시켜 땀을 흘리도록 한다. 그러므로 정상체온(심부온도)이 약 37℃로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은 우리의 체온조절중추가 심부온도를 기준온도에 맞춰 끊임없이 조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기준온도가 변하면 어떻게 될까. 기준온도가 높아져서 발생하는 질병으로 대표적인 것이 열병이다. 열병에 걸리면 외부에서 침입한 균이 내는 독성물질에 의해 체내(백혈구)에서 발열물질이 생산되며 이것이 뇌에서 프로스타글라딘(prostagladin)이라는 호르몬 분비를 변화시켜 기준온도를 높인다. 기준온도가 높아지면 심부온도가 37℃라도 인체는 마치 추위에 노출된 것과 같은 반응을 나타낸다. 즉 소름이 끼치며 말초혈관이 수축돼 체열손실이 억제되며 떨림이 일어나 열생산이 증가된다.
이런 반응은 심부온도가 새로운 기준온도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된다. 이때 아스피린과 같은 해열제를 먹음으로써 기준온도가 내려가게 된다. 한편 뇌종양이나 뇌손상으로 체온조절중추의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체온조절이 불가능해지는 경우도 있다.
마라토너가 훈련 시 땀복 입는 까닭
이 외에도 더운 환경에서 심한 운동을 할 때처럼 체열생산량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심부온도가 올라간다. 이때는 열병이라고 하지 않고 ‘고체온증’이라고 부른다. 고체온증이 나타나면 신경과 근육기능이 떨어지고 심리적 변화가 나타난다. 즉 피로, 무기력, 의욕상실 상태에 빠지며 결국에는 환각증세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체온이 43℃ 이상이 되면 신경과 심장기능에 장애가 생겨 사망에 이른다.
고체온증은 무더운 환경에서 장거리 마라톤, 사이클 경주와 같은 격렬한 운동을 할 때 잘 나타난다. 마라톤 선수가 전구간을 주파할 때 뇌에 있는 혈액순환조절중추가 초기에는 운동하는 근육과 피부로 가는 혈류량을 모두 증가시킨다. 근육에는 산소를 공급하고 피부에는 체열발산으로 땀을 흘려 체온상승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계속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혈액의 수분이 줄어들면 점성도가 높아지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혈류저항이 증가해 순환장애가 올 수 있다. 따라서 마라톤 후반부에는 혈액순환조절중추가 근육으로만 혈액을 보내고 피부로는 혈액을 보내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이로 인해 땀을 흘리지 못하고 체온이 급상승해 고체온증에 빠진다. 그 결과 정신기능에 혼동이 오므로 효과적으로 운동을 수행할 수 없다. 마라톤 후반부에 선수가 경기를 포기하는 경우 대부분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마라톤 경기 도중 군데군데 물이 배치돼 있는 이유도 고체온증을 막기 위해서다. 땀으로 소실된 체액을 일부라도 보충해 순환기능을 원활히 유지시킨다.
한편 마라토너들은 평상시 훈련할 때 땀복을 입고 훈련하는데, 이도 고체온증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땀샘은 훈련에 의해 다소 기능이 변화될 수 있는데, 땀복을 입고 훈련하면 땀샘의 기능이 강화돼 효과적으로 땀을 배출할 수 있다.
고체온증과 반대로 인간의 체온이 낮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차가운 바닷물에 빠진 상황을 떠올려보자. 피부에서 열이 밖으로 방출되는 현상은 피부표면에서 일어나는 열복사와 땀의 증발, 그리고 공기의 대류작용에 의해서다. 그러나 수중에서는 피부표면으로부터 복사와 증발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피부를 통한 체열손실은 주로 대류작용에 의해서 일어난다. 하지만 물은 공기에 비해 열전도도가 25배이기 때문에 공기 중보다 체열이 월등히 빨리 손실된다.
보통 사람이 공기 중에서 옷을 입지 않고 맨몸으로 노출될 때를 생각해보자. 기온이 약 27℃까지 내려가더라도 피부로 가는 열을 줄임으로써 체온유지가 가능하다. 그러나 기온이 그 이하로 내려가면 혈관이 더 수축되지 않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떨기 시작한다. 심하게 떨면 열생산량이 무려 4-5배까지 증가하는데, 이는 기온이 5-10℃까지 내려가더라도 심부온도를 정상으로 유지시킬 수 있다.
하지만 물 속에서는 27℃ 이하가 되면 아무리 떤다 해도 체온유지가 불가능하다. 이 점은 세계 어느 바다에서나 맨몸으로 노출되면 저체온증에 빠질 위험이 있음을 의미한다. 전세계 바다표면의 67%가 연평균수온이 25℃ 이하이며 47%가 20℃ 이하다.
타이타닉호 비극의 원인 저체온증
그런데 1970년대 이전 우리나라 해녀들은 한겹의 면잠수복만 입고 사시사철 잠수작업에 종사했다. 이들의 1회 작업시간은 여름에는 약 1시간, 겨울에는 15-20분 정도. 이 기간 동안 해녀들의 심부온도는 약 35℃까지 떨어졌다. 심부온도가 35℃ 이하가 되면 정신적·육체적 작업수행능력이 감퇴되므로 더 이상 작업을 하면 위험하다. 바로 이 현상을 저체온증이라 한다.
해녀들은 작업중 심부온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오랫동안의 경험을 통해 더이상 작업해서는 안되겠다는 느낌이 들 때는 언제나 작업을 중단했다. 이때 학자들이 심부온도를 측정한 결과 약 35℃로 나타났다. 이 사실을 기초로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학계에서는 안전한 수중활동을 위한 심부온도의 하한선을 35℃로 규정하고 있다.
만약 심부온도가 32℃까지 떨어지면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지며, 30℃ 이하가 되면 의식을 상실해 그대로 두면 사망한다. 겨울철 남해안의 평균수온이 10℃ 전후인데, 보통사람들은 이런 물 속에서 3-4시간 지나면 체온이 30℃까지 떨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바다에서 전사한 영국해군장병 약 2/3(약 3만명)의 일차적인 사인이 저체온증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타이타닉호의 비극도 같은 경우다. 타이타닉호는 1912년 4월 14일 오후 11시 40분 그린란드 연안에서 빙하와 충돌해 침몰했는데, 승선인원 2천2백1명 중 7백12명만이 구명정에 올랐다. 그리고 나머지 1천4백89명은 바다에 뛰어들었다. 당시 배에는 3천5백60벌의 구명복이 비치돼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구명복을 입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침몰 후 1시간 50분만에 카르파시아호가 구조를 위해 도착했을 때 바다에 떠있는 사람은 모두 죽어있었다. 날씨도 맑았고 파도도 별로 없었으므로 이들은 파도에 휩쓸려서가 아니라 바로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다쇼 수용소에서 포로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생존실험의 결과에 따르면, 0℃ 물 속에 빠진 사람은 1시간 반 내에 모두 죽는다. 이런 점들로 미뤄볼 때 수중에 노출될 때 대두되는 가장 심각한 의학적 문제는 바로 저체온증이다. 이처럼 인체의 온도는 37℃를 넘어도, 떨어져도 안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하나의 질문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왜 체온이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까.
신체기능은 체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물리·화학적 반응의 조화를 통해 나타난다. 이때 반응은 수많은 효소 활동의 조화를 통해 이뤄진다. 그런데 이 모든 반응은 온도에 따라 그 속도가 변하지만 그 변화율은 반응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그러므로 여러가지 반응이 연관된 복잡한 생체기능일 경우 온도가 변할 때 그 질적 특성이 현저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대사과정이 있다고 하자.
A → B → C → D
E
만약 온도가 상승할 때 B→C보다 C→D 반응이 더 촉진된다면 어떻게 될까. C가 고갈될 것이며, 그 결과 C를 필요로 하는 또다른 대사과정인 C→E는 충분히 이뤄질 수 없다. 이처럼 체온이 변할 때 종합적인 반응의 질적 특성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 경향은 복잡한 과정의 반응일수록 더 심하다. 따라서 뇌와 같이 수많은 반응의 통합조정이 일어나는 조직은 반응의 통합이 적은 말초조직보다 온도의 변화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고열에 의해 뇌 온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정신기능에 혼동이 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또한 아직 신경의 조화와 통합이 완성되지 않은 어린 동물이 성체에 비해 고열에 내성이 큰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사실로 미뤄볼 때 심부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일은 뇌 기능을 유지해 신체기능을 통합조정하는데 필수적인 조건인 것이다.
생리기능 최적화 위한 진화의 산물
그러면 우리의 체온은 왜 굳이 37℃로 조절돼야 할까. 33℃나 43℃가 되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설에 따르면 체내 효소들의 최적온도가 37℃이기 때문에 체온이 37℃가 되도록 인간이 진화돼 왔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체내효소 중에는 최적온도가 37℃보다 높은 것도 많고 낮은 것도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체 조직의 50% 이상이 평상시에 35℃ 이하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안정시 인체의 심부온도와 피부온도의 평균체온은 약 33℃에 불과하다.
또 효소는 자신의 세부구조를 약간만 변화시키면 기능은 같으면서 최적온도가 달라질 수 있다. 즉 효소는 구조변경을 통해 쉽게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효소들은 체온에 맞춰 각자가 적응한 것이지 효소활동의 최적조건을 위해 체온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면 체온이 37℃인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정답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현재 다음과 같은 학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심부온도가 37℃일 때 체온조절이 가장 효과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체온이 변하면 체열생산량과 체열손실량이 모두 변한다. 이 두 변화의 크기가 유사할 때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조절이 가장 용이하다.
기온이 25℃인 환경에 맨몸으로 노출된 사람에게서 대사량과 체열손실량이 유사하게 변하는 때는 체온이 37℃ 전후일 때다. 체온이 34℃ 이하가 되면 체열손실량의 변화가 대사량의 변화에 비해 너무나 커서 체온유지를 위한 생리적 조절량이 너무 커진다. 반대로 체온이 43℃ 이상이 되면 체온이 조금만 올라가도 체열생산량이 체열손실량에 비해 급속히 증가하므로 체온이 계속 상승하게 된다.
인류의 고대문명 발상지인 나일강, 메소포타미아, 북인도, 중국의 황하유역의 연평균기온은 약 25℃다. 이 지역에서 인류가 진화돼 왔다면 체온조절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체온이 37℃ 전후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의 진위는 확실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진화과정 중 항온동물에 의해 선택된 체온의 절대치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생리적 조절작용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독일 포로 수용소에서 생존 실험을 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