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잡담]80년대 일본문화와 전공투

in #kr7 years ago

언젠가부터 일본 80년대 문화를 소비하는 게 '힙'한 거라는데, 내부인(?)이 아니라 정확한 맥락은 모르겠다. 한국 90년대 = 일본 80년대로 간주하면, 90년대 향수의 힙스터 버전일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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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전공투의 개요는 간단히 링크로 대체하고... https://ko.wikipedia.org/wiki/%EC%A0%84%ED%95%99%EA%B3%B5%ED%88%AC%ED%9A%8C%EC%9D%98

일본 80년대 문화의 근간 중 하나는 전공투의 실패와 단카이 세대의 사회진출, 특히 문화예술계 진출이다. 물론 일본의 운동권인 전공투 세대는 군체동물이 아닌지라 각자가 다른 개인이었다. 일부는 핵심 간부였고 일부는 그냥 운동원이었다. 비판적인 관찰자들도 있었다. 용기가 없어서 참여하지 못한 사람부터 내부투쟁(폭력투쟁인 우치게바부터 단순한 왕따까지)으로 축출당한 이들까지 모두가 하나의 집단적 의식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운동권 세대와 달리 전공투 혁명은 철저하게 진압당했고, 단카이 세대의 집단적 의식에 자리잡은 것은 '패배'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문화예술계에 진출했다. 사진채증에 걸려서, 전과가 있어서, 한 세대의 열망이 체제의 진압으로 끝나는 모습을 목격한 후 보다 자유로운 직업을 추구하고 싶어서...

무엇보다도 당장은 잘 언어화하기 힘들지만, 무언가 내고 싶은 목소리가 있어서 그랬다.

사회주의자였거나 최소한 사회주의의 언저리에 있었던 그들은 사회에 진출하면서부터 자본주의 체제에 충성할 수밖에 없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기쁨이요, 누군가에게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모순이었다.

닛카츠 로망 포르노는 모순의 극단을 보여준다. 닛카츠 영화사는 핑크무비, 우리 식으로는 에로영화를 천 편 넘게 제작하면서 창작자에게 약속한 횟수 이상 여배우를 벗기기만 하면 나머지는 창작의 자유를 보장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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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수입을 위해 배우를 벗기겠다는 노골적인 자본주의 이익논리와 개인의 창작욕구에 예산을 집행해주는 이중적인 예술공간은 전공투 출신 감독들을 배출했다. 그들은 여기서 과감한 아니 날것으로 말하자면 홀랑 깨는 실험을 해댔고 로망 포르노는 일본 영화의 팜 노릇을 했다.

단카이 세대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은 80년대에 이르면 소위 '짬'이란 걸 먹게 된다. 실력도 늘고 슬슬 의사결정권이 생길 무렵 일본의 자본주의는 유래없는 풍요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시도한 혁명이 좌절되었는데 세상은 좋아졌다. 문화예술에 돈을 쓰는 이들 덕에 단카이 세대 창작들의 삶도 좋아졌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의 모순, 개인과 세계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한국 90년대 대학가를 휩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나약한 개인의 정체성 탐구다.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가까운 블루>는 자본주의 체제 속의 타락한 허무주의를 담았다.

정치적으로 실패한 세대는 실패를 반추할 수밖에 없고 필연적으로 자기반성적인 태도를 갖는다. 이런 사람들의 세계관은 넓다. <건담> 시리즈에서 중요 인물들은 정의를 위해 적에 맞서기 위해 기체를 조종하지만 회의하고 망가져간다. 현실은 복잡하며 세계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마크로스> 극장판의 절정인 전투씬은 허무주의적 낭만의 극치를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으로 '이게(이 모든 싸움이) 다 무어냐'는 정조를 제시한다. 두 작품 모두 선악의 투쟁이 아니라, 애초에 선악은 무엇이며 선악이란 것이 존재는 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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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수준은 모순의 결합이다. 단카이 세대가 공유하는 의식에 넘치는 자본이 제공하는 물량이 만난 결과물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세계에서 한 발 떨어진, 적당히 외로운 사람들이다. 자본주의의 부작용과 순기능을 면밀히 관찰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정교해진다. 불필요하게 천박하지 않으면서도 소비자의 입맛을 잘 이해하거나, 기분나쁘지 않게 자본주의를 조롱하는 음악도 나오게 된다. 모두가 전공투는 아니었고 정확히 그 세대도 아니었으되, 집단적 의식이란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자장'이기 때문이다.

80년대 일본문화의 태도는 선악의 경계가 분명하고 목적지향적인 한국 운동권 세대의 그것과 맥락을 달리 한다. 이 간극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1972년 전공투의 멸망과 1987년 민주화투쟁의 승리가 빚어낸 세계 해석의 차이를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왜 우리 영화인들이 일본 감독들의 세련된 '거리두기'를 선망하는지 알 수 없고, 왜 일본 영화인들이 거악을 타격하기 위해 직선으로 치달아가는 <내부자들>을 보고 '일본에는 없는 힘이 있다 '며 부끄러움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양국의 영상예술 종사자들은 서로를 질투하는 재미난 관계다.


80년대 일본 문화는 버블경제의 낙관 아래 전위적이고 데카당스한 감수성을 기저로 깔고 있다. 그 시절 도색잡지 표지의 색감은 좋은 의미로 간질간질하다. 아직 다 버리지 못한 세상에 대한 애정과 싸늘한 허무주의 사이에 선 경계인들의 데카당스. 80년대를 자양분으로 하는 일본문화는 90년대의 화분에 뿌리내린 우리의 그것과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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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보팅하고 갑니다

크엇 감사합니다 ㅎㅎ

저는 일본 문화의 패배주의적인 요소가 참 맘에 들지 않았는데, 역시 전부 원인이 있었군요.

흥미롭군요. 잘 읽었습니다.

린민메이!
마크로스. 85년이었나... 토요일이면 AFKN에서 해주는 마크로스를 보기 위해 학교 수업에 지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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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퍼웨이브가 퍼지면서 시티팝 등을 듣는 것이 힙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닐런지요. 힙해지고 싶다는 명목이 없어도 그런 음악들은 충분히 훌륭하다 생각합니다.

곧 80년대 일본과 관련된 포스팅을 하고 싶었는데 너무 좋은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오오 좋은 글 고맙습니다. 예전에 테무진tothe칸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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