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잘사는 법] 미니멀 라이프로 가는 멀고도 험한 길 - 2편

in #kr7 years ago (edited)

1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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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구글 서치
<아기가 있는 집 거실에겐 피할 수 없는 숙명일까?>

앞에서 쓴 이야기지만, 2세의 출현을 앞두고 새집으로 이사를 가기 전이라 몇달째 열심히 물건을 버리고 있다. 이 글이 올라가는 시점에는 이미 예정일이 2주밖에 남지 않은 만삭인데다 이사일은 예정일보다 정확히 3일 전이라 이 말도 안되는 일정때문에 아주 조마조마하다. 여튼 만삭의 임산부가 버릴 물건 골라내는 고된 일을 느리지만 꾸준하게 할 수 있었던 건 모티베이션을 뿜뿜 높여주는 노동요 덕분이었다. 그리고 내게 최고의 노동요는 Ridibooks에서 산 다양한 미니멀리즘 관련 도서들을 읽어주기 모드로 트는 것이다. 이렇게 일한지 벌써 2달째다. 현재까지 처분한 물건들은 전에 소유하고 있던 물건들의 대략 40%정도는 되는 것 같다.

일본인 작가가 쓴 책, 한국 주부가 쓴 책, 프랑스 사람이 쓴 책, 선불교 승려가 쓴 책 등등 가리지 않고 다 읽고 알게 된 것은, 미니멀리즘 운동이라는게 단순히 자본주의 사회의 과잉소비를 지양하자는 메세지에 그치는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집을 비우고 깔끔하게 사는 것 외에도 인간관계도, 건강도, 직장에서 일하는 방식도, 재정 관리도, 심지어 육아도;;; 거의 모든 삶의 어려움을 개선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만능 솔루션이라고하니 점점 더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미니멀라이프의 추종자가 되었고 오늘은 물건으로 가득찬 집을 비워가는 과정에서 간간히 썼던 일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일기 #1
많은 물건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도 산을 이룬 박스들을 도네이션 하고 오면 또 버릴게 보인다. 버리기란 정말 최소한의 물건만 남을때까지 끝도 없이 계속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치 젖은 수건이 바짝 마를 때까지 물을 짜내는 것처럼. 버려서 빈 공간이 보이면 전에 봐두었던 더 나은 물건으로 채워넣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하지만 예전처럼 함부로 감히. 결제 버튼을 누르지는 못한다. 한때 흥분된 마음으로 시간을 투자해 골랐던 (아직 멀쩡한) 물건들을 거실 한가운데 산처럼 쌓아놓고 그걸 착잡한 마음으로, 하지만 애정없는 건조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일기 #2
처음에 버리기를 시작했을 때는 금전적으로 낭비를 했다는 죄책감과 더 완벽한 물건을 고르지 못했다는 열등감으로 괴로웠다. 하지만 물건들이 집밖으로 나가고 내 눈앞에서 사라지자 고통은 바로 사라졌다. 무엇이 나갔는지 기억도 하지 못하고, 빈자리의 허전함 조차 느끼지 않는 내 자신에 놀랐다. 그동안 수많은 물건들을 사들이게 한 그 파도같은 욕망은 뭐였을까. 설마 거기엔 아무 실체도 없었던건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걸 소유해서 얻고자 했던 것을 얻었는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물건은 놀랍게도 거의 없었다. 이 버리기 프로세스는 나의 끝도 없이 드넓은 소유욕망의 바다에 몸을 담그고 천천히 바닥까지 가라앉으면서 사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는 잔인한 과정인듯하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더 신중하고 고급한 취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아니 30%쯤만 사실이라고 해주자) 버리는 일의 무게가 나를 더욱 깊은 곳으로 가라앉게 한다. 그리고 아직도 바닥은 먼 듯하다.

일기 #3
웃기지만, 요즘은 버리려고 모아놓은 물건들을 쳐다보고 있으면 ‘미안하다’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그건 버려지는 물건에 대한 죄책감에 더해진 좀 더 복잡한 마음인 것 같다. 열렬히 불태웠으나 소유하자마자 너무 빨리 식어버린 사랑같달까. 이별 후에도 단 하루도 아프지 않을 나의 마음이, 심지어 그의 존재조차 기억 못할 나의 무심함이, 참 미안하다. 그래서 그 후로는 아무것이나 쉽게 소유하고 홀대하다가 이렇게 쉽게 내버리고 싶지 않다. 결혼하는 마음으로 물건을 집에 들인다면 아마 앞으로 나의 소비는 정말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3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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