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그 매너와 의리의 경계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책을 매개로 하는 책방이라는 공간이 주는 그 자유와 낭만 사이에서 정해지지 않은 매너와 의리 같은 것들을 곱씹어 보게 된다. 정해진 답이 없어서 좋지만 그래서 그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더 필요한 곳이 바로 책방이 아닌가 싶다.
사람이 모이는 공간
대형서점은 사람들이 모여서 편안하게 책을 읽다가 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해 둔다. 책을 읽고 사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 속에서 서점은 어떻게든 사람들의 발길이 서점으로 향하게 하기 위해 공간을 끊임없이 재편집한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도 하고 도서관처럼 여러 권의 책을 가져다 놓고 읽기도 한다. 그곳에서 책을 다 읽고 안 사는 사람도 존재할 테고, 맘에 드는 책을 발견하고 구매하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가 금액을 지불하지 않은 새 책들은 손 때가 묻은 채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고스란히 생산자들이 떠안아야 할 헌 책이 된다. 애초에 오래도록 읽다가도 좋으니 일단 와서 앉아있으라고 말하는 듯한 그 공간에서 책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먹으면서 책을 사지 않고 읽어볼 수 있는 공간까지 생기고 있는데, 새 책들이 어디까지 헌 내음을 머금을 수 있는지 실험이라고 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책을 꽁꽁 싸매고 아무도 앉아서 읽어보지 못하게 한다면, 그게 과연 서점이라는 공간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우리의 일상은 퍽퍽하고 그것은 작은 소비 하나에도 스스로를 꽤나 이기적으로 만들지만, 그것을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까에 대한 부분도 의문이 남는다. 열 곡 남짓한 음반 하나를 위해 줄을 서서 만 얼마의 가격을 지불했던 어린 날이 생각난다. 그땐 그 가격이 당연했고 하나의 곡을 여러 번 들으면 곱씹고 또 곱씹었다. 음원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유명 뮤지션들이 다운로드하지 말고 좋은 음질의 cd로 사서 들으라는 이야기도 많이 했지만, 지금의 스트리밍 시대로 오는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인증이 곧 목적지
공간이 크지 않은 독립서점들은 또 다른 매너의 경계에 서게 된다. 미술관의 고귀한 작품마저도 예쁜 카페의 커피 한 잔과 비슷한 인증의 값을 치르는 시대에 책방들은 또 하나의 인증 대상이 되기도 한다. 책방이 궁금해서 오는 사람들과 '나 책방 왔다!'를 외치고 인증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뒤섞인다. 대형서점보다 책을 싸게 팔 수도 모든 책을 다 가져다 놓을 수도 없는 작은 책방에게 주인장의 큐레이션은 독특한 개성이 되고 때론 전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애써서 만들어 놓은 그 만의 맥락이 사진 한 장으로 쉽게 공유되고 널리 퍼진다. 맛집의 양념 비결은 얼마든지 비밀로 감춰둘 수 있지만, 책방의 큐레이션 목록은 그렇게 또 누군가에게 임시방편이 되기도 한다.
공간을 담고 싶어서 무심코 사진을 찍던 나는 이런 상황들을 알게 된 후로 서점 밖에서 외관을 찍거나 책이 자세히 보이지 않는 공간을 위주로 찍게 되었다. 요즘은 문 앞에 '촬영 금지' 표시를 해두는 책방들이 많은데, 헷갈릴지도 모르는 손님들에게는 미리 체크할 수 있는 주의사항이 되어준다는 점에서는 좋은 것 같다.
낭만이 아닌 의리
책방들이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운영되고 그게 지극히 동네스럽다는 건 너무나도 매력적인 일이지만, 가끔은 책방에서 낭만이 아닌 의리가 요구되는 것 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애써 시간을 내서 찾아간 책방이 문을 열지 않아 허탕을 치고 돌아오게 될 경우가 그중 하나인데, 인스타그램 공지 하나 없이 지켜지지 않는 영업시간을 어디까지 이해해줘야 하는 걸까 의문이 든다. 각자가 사는 동네의 책방이 전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있다고 해도 동네의 책방만 이용하지는 않는 시대가 되었다. 카페든 책방이든 어디든 사람들은 맘을 먹고 찾아가는 것인데, 남의 시간 비용을 너무 관대하고 여긴다고 느껴지면 자연스레 마음이 돌아서게 된다. 물론, 너무나도 성실한 모습의 책방들이 그렇지 않은 곳들보다 더 많이 존재한다.
두 번째는 책 그 자체에 관한 부분이다. 누군가의 작업실을 들린 것처럼 작고 소박한 책방들은 왠지 그냥 둘러보고 나가면 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뭐라도 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애써 고른 책이 한 권뿐이라서 약간의 흠집을 감수하고서 구매한 적도 있다. 대형서점이었다면 가장 상태가 좋은 것을 고르고 골랐을 텐데, 그리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의 어딘가가 구겨져있다면 속으로 비난을 퍼부었을 텐데, 처음 가보는 작은 책방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그러한 행동을 했던 것일까.
얼마 전 <글, 책, 책방>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살롱에서 누군가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은 '무인서점'이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작은 책방에서 책을 사는 행위가 그 공간에 머무는 감사함에 대한 '기부'처럼 여겨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부분은 너무 공감하기도 했고 어떤 부분은 나의 생각과 너무 달라서 놀랍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사람이 적은 시간에 책방 주인과 언제 어떻게 시작될지 모르는 대화를 내심 기대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사무적이고 차가운 태도로 응대하는 경우에 가끔은 아쉬울 때도 있다. 이렇게 책방이라는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속성을 지닌다.
암묵적인 배려
책과 책방에 대해 무엇이 맞다고 정의할 마음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더구나 동네 책방은 그만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날 때 가장 매력적인 공간임은 분명하다. 다만, 아무것도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의 매력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로움과 낭만의 감성인 만큼 서로가 서로를 신경 쓰는 암묵적인 배려가 필요할 것 같다.
내가 살 책이 아니라고 해서 함부로 뒤적거리지 않을 배려, 찾아주는 사람들의 시간을 소중히 여길 배려, 타인이 애쓴 흔적을 쉽게 가져가지 않을 배려. 무엇보다 이기적이지는 않은 선 내에서 개인의 행동과 선택을 존중할 배려.
책방주인과 대화가 기대되서 서점을 가는1인입니다~앞으로 사진을찍을때 주의해서 찍어야겠네요~^^
문 앞에서 한번씩 확인하면 좋을 것 같아요. 대부분은 표시를 해두는 편이더라고요.ㅎㅎ
여러차례 공감하며 글 읽었습니다. ㅎㅎ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