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실험은 여전히 필요하다

최근 들어 많은 동물실험 비판 의견을 읽었다. 24일이 영국 단체 NAVS(반생체해부협회)가 지정한 ‘세계 실험동물의 날’이어서일까?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다르게 UN이 공식적으로 정해놓진 않은 듯하다. )

물론 우리는 3R 원칙(Replacement, Refinement, Reduction)을 합리적으로 따라야 한다. 동물이 불필요한 실험법을 찾고, 실험동물의 고통을 줄이며, 실험동물의 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물을 합당한 이유 없이 해치거나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에 동의하면서 나는 한편으로 동물실험 악마화를 염려한다. 동물실험에 대한 여러 오해와 혐오가 인류 발전과 복지에 필요한 동물실험을 과하게 규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규제는 당연히 비효율적이고, 심지어 비윤리적일 수도 있다.

‘동물실험을 신뢰할 수 없으니 반대한다’는 주장이 있다. 탈리도마이드가 흔히 언급되는 예시다. 탈리도마이드는 임산부 입덧을 방지하는 신약으로 개발되었다. 그러나 태아에 미치는 심각한 부작용이 동물실험에서 확인되지 않았고 결국 수많은 아기들이 팔다리가 없는 기형으로 태어났다. 또한, 이런 주장엔 동물실험을 통과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승인되는 신약이 드물다는 사실도 자주 근거로 제시된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동물실험이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동물에는 없지만 사람에 있는 효과의 가능성은 물론 존재한다. 그러나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작용이 불러온 결과가 비극적일수록, 탈락하는 후보 약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런 말을 쉽게 할 수 없다. 지금 절차가 완전하지 않다고 절차를 없애는 건 위험하다. 당장 동물실험이 없다면 이보다 더 심각한 사태들이 벌어질 것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하기 전에 후보 약물은 동물을 사용하는 전임상시험 단계를 거친다. 크게 동물에 직접 약물을 투여하는 실험과 동물에서 채취해 배양한 세포와 조직에 약물을 '치는' 실험이 있다.

여기서 동물을 해하거나 죽이는 실험을 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후보 약물이 임상시험 단계에 진입할 것이다. 일단 진행하더라도 엄청난 비용의 문제가 생긴다. 걸러지지 않은 수많은 신약 후보들에 대해 임상시험을 하려면 사람을 그만큼 모아야 한다. 더군다나 동물을 희생했다면 미연에 알아낼 수 있는 유형의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생명체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최소한의 근거가 미약하여 투여 용량조차 불확실한 물질을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일까? 단순한 세포와 조직을 넘은 개체 수준에서의 영향을 확인하려면 동물실험을 대체하는 기술의 적용도 힘들다.

이처럼 내가 접한 동물실험 반대 논거는 주로 신약개발과 화장품 안전성 검사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동물실험은 단순히 어떤 물질의 유해성을 검증하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은 온갖 생명현상을 규명하기 위한 자연과학적 목적에서도 실험에 쓰인다. 비만, 파킨슨병, 우울증 등 인간 질병의 기전을 연구하기 위해서 동물모델을 개발해서, 어떤 요소들이 관여되어 어떻게 발병하는지 알아보고 어떻게 예방하거나 치료할 가능성을 찾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동물에게 지속적 고통을 주고 억압하는 E등급 동물실험도 마찬가지다. PTSD를 연구하겠다고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전기충격을 준 다음 해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어떤 사람들은 극히 제한된 경우에만 허용하자고 하거나 아예 동물과 인간을 동급으로 두고 실험을 금지하자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어떤 지식이 나중에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지금 질병과 직결되는 동물실험만 허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더 나아가 나는 인간의 고통받지 않을·행복할·살아갈 권리는 동물의 그것과 같지 않다고 본다. 예컨대 빈곤층의 더 나은 삶과 공장식 축산의 금지 중 내가 우선으로 두는 건 인간의 복지다. 인류 진보와 동물실험 철폐를 둔 저울질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동물실험은 인류에게 필요하며 윤리적이라고 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