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과 나(5) - The hero

in #kr5 years ago

신해철과 나(5) - The hero

1. 세상이 한 순간에 바뀌지 않음을 다시 느꼈던 그 날은 눈물이 나지 않았다. 잠시 멍했고, 그 다음에는 화가 났고, 그 다음에야 슬픔이 찾아왔다. 추모 콘서트에서 분노하고,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부르는 신해철의 모습도 보았다. 어쨌든 세상은 한 순간에 바뀌지 않았고, 믿음과 희망으로 하루를 살아가던 날은 그저 봄날의 꿈처럼, 한 순간에 무너진 것 같았다.

2. 함께 희망에 차 싸웠던 그 때의 친구들 중, 누군가는 분노하여 ‘반 노무현’이 붙은 누구도 가차없이 처단하려 했고, 누군가는 정치에 뛰어들어 완전한 현실정치 논리대로 행동했으며, 또 많은 친구들은 덕후가 되어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는 컨텐츠 속의 설정놀음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세상에 다른 희망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바야흐로 힐링의 시대였고, 아프니까 청춘인 시대였고, 내 또래가 졸업하는 시기였다.

3. 신해철도 내 친구들처럼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는 사회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점점 삼갔고, 가끔 드러나는 모습은 희망보다는 분노였다. 그는 사업을 하는 것 같았고, 과거보다 훨씬 덕력을 드러냈으며(스타크래프트 앨범 등을 보면 사실 원래 그랬던 사람이었던 것 같긴 하다), 과거보다 훨씬 가끔 나오는 노래들도 메시지보다는 사운드와 프로듀싱에 집착에 가깝게 천착한 노래들인 것처럼 들렸다.아주 오래 전, 내가 올려다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내 키가 그보다 커진 것을 발견한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 넥스트, ‘아버지와 나’ 중에서

4. 나도 마찬가지였다. 무엇인가 찾고 싶어서,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위해 일해보기도 했고, 이런저런 사회단체에 발도 담가 보았다. 길거리 공연도 했고, 술을 많이 마셨다. 가끔은 분노했지만 가끔은 그냥 살아갔다. 세상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만을 배워가면서, 고민을 유예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로스쿨에 갔다.

5. 변호사시험을 두 달 남짓 남겨둔 어느 날, 공부가 부족해 벼락치기를 하던 어느 저녁, 인터넷도 거의 하지 않고 두문불출하는 중에, 예전 그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괜찮아?’ 지난 번 경험 때문인지 기분이 이상했다. 오랜만에 인터넷을 켜자 메인에 믿을 수 없는 기사가 떠 있었다. 

‘신해철, 별세’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이 바닥으로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6. 나의 시대들은, 그렇게 죽어 갔다. 노무현이 죽었을 때도, 신해철이 죽었을 때도, 나의 노력과 감정과 추억들로 이루어진 내밀한 시대가, 그렇게 죽었음을 느꼈다. 새삼 신해철과 신해철의 음악이, 그 모든 순간들에 함께 했다고, 나의 모든 역사 동안 나에게 힘을 주었다고, 나의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 나를 지켜 주었다고, 느꼈다.

그대 현실앞에 한없이 작아질때 마음 깊은곳에 숨어있는 영웅을 만나요
무릎을 꿇느니 죽음을 택하던 그들 언제나 당신마음 깊은곳에 그 영웅들이 잠들어 있어요
그대를 지키며, 그대를 믿으며
<N.EX.T - ‘The Hero' 중에서>

7. 나는 직업을 가졌고, 결혼을 했다. 아이가 생겼고, 또다른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직업상,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 환희를 보며, 삶이 복잡하다는 것,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느낀다.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왜 그렇게 방황했었는지 가끔 잘 기억나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노래를 들을 때면, 그 모든 기억과 감정들이 되살아나고, 봄날 꽃길처럼 아름다웠던 나날들이 떠오른다. 힘들 때도, 아플 때도, 내 마음속에 잠들어 있는 그, 신해철은, 언제나처럼 나를 지키고, 믿어주고, 힘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고마워요, 나의 영웅. 신해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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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입이 제대로 되는군요 ㅠㅠ
저도 그날 저녁 가슴 한켠이 무너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날 밤새워 그의 노래를 다시 찾아들어보고...
지나온 시절들 내 맘을 항상 대변해주던 나의 작은 영웅이었지요
잘가요~~ 해철이 형~~

너무 일찍, 너무 어이없는 방식으로 가셔서 더 안타깝습니다. 지금 세상을 보았다면 좋았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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