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만났던 어느 불법 체류자 & '그 겨울의 찻집'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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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 캐나다 이민갔던 곳은 밴쿠버 입니다. IMF 때문에 제 재산이 거의 반으로 줄었던 아픔을 안고 온 지 이년 정도 지날 때 쯤 이곳에서 만난 어느 불법 체류자 와의 만남을 애기해 볼 까 합니다.

어느 일요일 이었습니다. 여느때와 같이 점심 먹으로 어느 한국식당을 갔습니다.

점심때여서 많이 빈 자리가 없을 만큼 손님이 많았습니다. 한창 두리번 거리는데 종업원이 어느 테이블을 가리키면서 저 손님도 혼자이시니 동석할 수 없겠냐고 해서 봤더니 한국분처럼 보이는 분이 혼자 식사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괜찮다 하니 종업원이 그분께 가서 물어보더니 그분도 오케이 하셨는지 가서 앉으라고 합니다.

마침 그분은 거의 식사를 끝낼 쯤이었습니다. 서로 눈인사를 하고 그 분은 일어서시고 전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근처 커피숍을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아까 그 한국분이 계셨는데 저와 눈이 마주쳐 마땅한 자리도 없고 해서 그쪽으로 가서 앉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서로 인사하고 몇 마디 주고 받았는데 본인은 친척이 운영하는 마트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요일마다 그 친척분이 교회를 다니시는데 자기는 예배 끝날 때 까지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점심먹고 차 마시고 그러다 친척분이 오시면 같이 이것저것 필요한 물품 사가지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시간이 다 되어 그분이 일어서기 전 가끔 전화하겠다고 전화번호 알려달라고 해서 그분 인상이 좋아 보이기도 하고 해서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평일날 전화가 왔는데 저녁같이 먹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만났는데 식사가 끝날 쯤 노래방을 가고 싶은데 같이 가 줄 수 있냐고 해요. 저도 노래 부르는 걸 무척 좋아해서 가자고 했죠. 그런데 노래 자체도 좀 슬픈 노래이긴 했지만 갑자기 흐느끼면서 울더군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IMF 가 터지는 바람에 일자리 잃고 생계가 어려워졌는데 그 친척분이 와서 일하라고 해서 무작정 왔다고 합니다. 달러로 벌어 한국으로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요. 그렇게 캐나다로 오게 되었고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보낸지는 일년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제 딸하고 통화를 하는데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인데 아빠 보고 싶다고 우는데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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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그만 한국으로 돌아가야 겠다고 그러십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새로 시작해 보겠다고 합니다. 그 떄 부른 노래가 본인의 애창곡 이었던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이었습니다. 사실 이 노래는 '사랑 two' 와 더불어 저의 애창곡 중 하나입니다.

이 분이 떠나는 날 친척분이 계셨지만 제가 픽업해서 공항까지 모셔다 드렸고 지금도 이분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한국가서 앞으로 뭘해야 할 지 아내와 애기를 했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그래도 사랑하는 딸과 아내를 일년 반 만에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합니다. 이윽고 그 분하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한국 가서 꼭 멋지게 재기하라는 말을 건네주었습니다.

돌아오면서 우리 주변에 스쳐지나 가는 우리 자신이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 겨울의 찻집'을 들으며 그분과의 짧았던 만남을 그리고 그분의 재기를 빌었습니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사랑하는 가족과 일년 반 동안 서로 떨어져 지내야만 했던 가슴에 묻었던 아픔을 눈물 흘리며 열창하던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지금 어디서 살고 계시던 잘 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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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찡해졌어요. 가끔씩 스치는 인연들이 있지요.
그분이 한국에 돌아오셔서 아이들과 아내분과 오손도손 행복한 일상을 누리셨으면 싶어요.

그나저나 크로스쌤이 노래를 좋아하시고 잘부르시는군요.ㅎㅎㅎ..

꼭 그렇게 되셨기를 바랍니다. 잘 부르긴요.. 그냥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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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미국에 살때 제 주위 지인들중에도
여러 사정으로 인한 불법 체류자들이 꽤 있었는데요.
그 중 몇명은 지금은 미국에서 잘 자리잡고 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서 기쁘더라고요. ^^

예전에 미국에서는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있었어도 합법적으로 들어왔을 경우에는 벌금인가 내고 합법적인 신분으로 바꿔 주는게 있었던 걸로 압니다. 그런 분들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시고 자리 잡으신 걸 보면 정말 대단하시단 생각이 듭니다.

따뜻한 기억을 남기셨네요.. 가끔 생각나면 서로가 위로 되는

맞습니다. 지금도 그 겨울의 찻집을 부를때면 어김없이 그 분이 떠올라 더 감정적으로 복받쳐 오릅니다. 힘들때도 떠 오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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