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역시 디스토피아 – 블랙 미러

in #kr7 years ago (edited)

NETFLIX에서 <블랙 미러 시즌 4>가 공개되었다.

기쁜 마음에 얼른 달려가 에피소드 1, 2를 봤다. 아아 역시 암울하고 침침하고 찜찜한 것이 아주 매력적이다. 일단 두 에피소드는 이전 시즌들에 비해 결말이 조금 밝아진 듯 하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는 수준이다. 헌데 정통 다크암울우울SF 블랙 미러가 명성(?)에 비해 생각보다 시청자 수가 많지 않다는 카더라가 들리기에 조금이나마 매력을 어필해보고자 몇 마디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에 이렇게 핵노잼 글을 타이핑해서 투척하면 원래 볼 사람마저 발길을 돌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지만 이미 늦었다. 할 말은 떠올랐고 쓰기 시작해버렸다.

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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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SF를 좋아한다. 적당히.

필립 K 딕, 레이 브래드버리, 옥타비아 버틀러처럼 자신의 스타일로 유명해진 작가들의 전집을 찾아 읽는 팬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관에서 SF 장르같은 무언가가 개봉하면 일단 앱을 켜고 예매 날짜를 뒤적이는 정도는 된다. 사실 이는 원인과 결과가 뒤집힌 서술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은 SF, 스페이스 오페라 계통의 영화가 흥행을 못하기로 유명하고 (눈물 좀 닦고…), 실제로 극장에서도 빛의 속도로 스크린을 빼앗기고는 한다. 즉, 내가 얼마나 열성적인지와 관계없이 개봉 후 약 1주일 안에는 봐야만 하고,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내가 꽤나 SF영화를 챙겨보는 사람처럼 비춰지는 것 같다.

잘 만든 SF는 사람의 상상력을 극단으로 자극하는 매력이 있다. 상상력이라 하면 SF보다는 판타지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판타지가 오히려 상상의 측면에서는 제약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 많은 판타지들이 세계관을 구성하는 ‘존재’ 각각에 대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개성을 부여하고—주로 ‘종족’으로 묘사된다—여기서부터 파생되는 많은 이야깃거리들을 풀어내는데, 그 갈등양상은 우리네 현실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고, 결국 캐릭터의 매력이 떨어지는 순간 이야기 전체가 힘을 잃는 사례를 종종 본다.

SF는 그에 비해 어느 정도 현실에 기반한 뒤, (주로) 과학과 공학이라는 지식 체계의 방향성 중 일부에 극단적인 설정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발생하는 일을 서술한다. 여기에는 미묘한 ‘비틀림’이 있다. 대놓고 ‘완전 새롭지? 신기하지? 우와아아아 멋지다’라고 보여주는 것이 아닌, 지금 내가 서 있는 곳과 꽤 비슷한데 무언가 한 끝이 다른 그런 불편함이 있다. 그 작은 틈새는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아주 근본적인 사회상의 차이를 드러낼 가능성을 부여한다. 이야기가 ‘잘’ 진행된다면 말이다.

‘비틀림’을 잡아내는 방법은 사람마다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야기 속에서 하나하나 말을 해 주지는 않지만 SF라는 장르는 기본적으로 현재의 인간 사회상을 과거의 일부로서 공유하는 (근)미래의 사회라는 가정을 암묵적으로 깔고 있기에, 사람들마다 각자 감상법이 다른 것 같다. 아마도, 과학자와 공학자들은 현재의 지식 수준과 비추어 실현 가능성을 (자신도 모르게) 타진하며 영화를 볼 수도 있을 테고, 법을 하는 사람이라면 갈등 양상을 보며 와 저건 지금 여기서는 고소감인데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는, 그래도 명색이 대학원생이라 그런지, SF를 보면서 해당 세계관이 가정하고 있는 정부의 시스템과 정치-정책 구조를 상상하는 이상한 버릇(…)이 언제부턴가 생겨버렸다. 아니, 버릇이라기 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생각을 해보게 된다. 가령, 내가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고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이 “그 황폐한 와중에도 우주선을 만들 최후의 지원책을 만들고 있었던 국가(혹은, 설정상 이미 우리가 아는 형태의 국가가 아닌 초-국가적인 가상의 어떤 집단)의 정치-정책적 역량” 이라고 한다면 어떤 생각을 하실지 모르겠다.

원래 하고 싶던 이야기는 못하고 한없이 늘어지고 있는 글을 다시 제자리로 돌리면, 이런 나의 감상 습관에 비추어 볼 때 블랙 미러는 정말 멋진, 양질의 SF 이야기를 선사한다. 한 편 한 편이 나름의 상상을 제공한다. 여기까지는 정말 내멋대로 SF 좋아! 최고야! 진짜 재미있어! 하앍하앍 하며 써내려왔는데 쓰다보니 떠올랐다. 스팀잇 유저들에게 특히 추천할만한 에피소드가 있는 것 같다.

NETFLIX 블랙 미러, 시즌 3, 에피소드 1, “Nosedive”

스팀잇 유저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이유는 하나, 다른 누구보다도 스팀잇 유저들이 보면 불편할 요소들이 사방에 깔린 에피소드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좀 예전에 봤던 에피소드라 글을 쓰다 생각나서 다시 봤는데… 정말 놀랍도록 스팀잇의 모델이 아주 극단적으로 투영된 모습들을 군데군데 볼 수 있었다. 아마 제작자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모델로 삼아 세계를 구성했겠지만, 그리고 처음 이 에피소드를 본 나도 페이스북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다시 보면 이건 스팀잇에 더 가까운 이야기이다.

Nosedive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일종의 SNS같은 광범위한 네트워크 플랫폼에서 서로가 별점을 주고받으며 평점을 부여받는다. 헌데 이 평점이 그저 네트워크 상의 가상의 인기에 그치지 않고 실제 생활에 영향을 주는데, 가령 2.5가 되지 못하면 특정 직장에 출입하지 못한다거나, 4.5가 넘으면 주거지 렌트 비용을 할인받을 수 있다거나 하는 방식이다. 이 세계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아주 열심히 서로에게 평점을 날리고, 한 번 밉보인 사람에게는 가까이가지 않는다. 내 평점도 깎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마도) 평점이 높은 사람이 주는 평가에는 더 높은 가중치가 붙는데, 주인공의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컨텐츠가 되고, 그 컨텐츠가 일부 몇 명이나 특정 제도적 권한을 위임받은집단이 아닌 커뮤니티 내의 사람들에게 집합적으로 평가받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현실의 재화에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이라는 설정은 다시 생각해봐도 스팀잇과 놀랍도록 닮았다. 단, Nosedive의 세계에서 보이는 한 가지 극단은 비-현실적인 실시간 정량화 시스템 덕분에(!) 우리가 흔히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일컫는 행위들—사회적 차별, 외면, 독선—이 아주 당연한 ‘합리적인’ 계산 결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윤리, 문화의 문제가 이익의 문제로 전환되는 모습인데, 지금 우리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Nosedive의 세계는 그 판단을 법정이나 여론이 아닌 개인이 눈앞의 수치를 통해 단 몇 초만에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래서 대체 뭐가 재미있다는 건가.

이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잘한 갈등 상황들에서는 정말 놀랍도록 ‘공권력’이 등장하지 않는다. 최후에 가서 등장하지만 굉장히 명시적인 문제로 인해 개입할 뿐, 자잘한 ‘비틀림’들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정말 놀랍도록 공권력의 ㄱ자도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뭐 어쩌라고(…)라고 하실 분들이 많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재미있는 포인트였다. 내가 이 세계관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짜낸다면 Nosedive 세계 속 경찰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어디까지가 ‘공’의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사’의 영역이 될 것인가라는 것은 공공정책의 고전적인 문제 중 하나다. Nosedive가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정말 흥미로운 문제였고, 최근 한국의 코인 시장이 마주한 문제이기도 하고, 아마도 스팀잇도 부딪히게 될 지도 모르는 문제일 것이다. 이렇게나마 간접적으로 고민해보면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뭔가 딱히 답이 있어서 쓴 이야기는 아니지만, 스티미언들에게 꼭 한 번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결론: 여러분 블랙 미러 보세요. 두 번 보세요. 꿀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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