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번호를 버려라!

in #kr6 years ago

[열블나는 책과 사람_#6(하)] <<블록체인 거번먼트>>의 전명산


자신의 저서 <<블록체인 거번먼트>>로 얼굴을 가린 전명산 블록체인OS 이사. 그는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흔치 않은 사회과학 연구자 출신이다. 사진=고경태

<상편에 이어 계속>

‘사기꾼 판별법은 무엇인가.’

<<블록체인 거번먼트>>의 지은이 전명산(47)에게 인터뷰 현장에서 던졌던 질문이다. 그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 뒤 곰곰이 생각해봤다. 한가지가 떠올랐다. 좋은 이야기만 하는 사람, 잘 된 결과만 말해주는 사람은 신뢰가 덜 가지 않을까. 수많은 블록체인 기업이 있다. 성공담과 실패담이 존재한다. 모두 직선이 아니다. 예기치 않게 만나는 시행착오와 갈등은 직선을 울퉁불퉁한 곡선으로 만든다.


블록체인 이론가이자 현직 플레이어인 전명산 블록체인OS 이사(CGO)는 현재 곡선 위를 질주한다. 지난해 5월 ICO(암호화폐공개)를 진행했던 보스코인은 올해 11월 메인넷 세박(SEBAC)을 공개했다. 속도 등 여러 기술적 문제를 해결했고 가격도 오른다고 자랑했지만 곧 내분에 휩싸였다. 다만 보스코인은 숨기지 않고 그 상황을 대중들에게 공개했다. 좋은 이야기만 하거나, 잘된 결과만 말하지 않았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기 치부를 드러냈다.

전명산이라는 이름 석자를 처음 들은 때는 지난해 8월 초순이었다. 두 명의 지인과 함께 한 어떤 점심자리에서 블록체인 미디어를 기획 중이라고 밝히자 누군가 그 이름을 꺼내면서 아느냐고 물었다. 대학원 때 사회과학 공부를 세게 한 사람인데 뜻밖에도 ‘비트코인 업계’에 있더라고 했다.

전명산 이사는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 시절 철학자 고병권, 사회학자 이진경(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등과 함께 공부했다고 한다. 당시 대학원에서 함께 지냈던 한귀영 한겨레 경제사회연구원 센터장은 “전명산씨는 4차원 끼가 있는 인물이었다”고 회고했다. 뭔가 한우물을 파기보다는 서태지 팬덤에 관한 다큐를 찍는 등 여러 다양한 분야를 오간 이력 때문이었던 것 같다. 대학 선배로서 그를 알아온 이진순 비영리 공익재단 와글 대표는 “황당한 상상력이 뛰어난,  내가 만나본 천재 중의 천재였다”며 “기술 한 가지를 가지고 물리학, 천체우주, 정치, 철학을 망라해서 의미를 해석하더라”고 했다.

어쩌면 <<블록체인 거번먼트>>는 황당한 생각이다. 블록체인으로 정부를 바꾸고 국가를 개조한다고? 그는 블록체인으로 돌아가는 도시를 꿈꾸고, 현재의 주민번호 체계도 뜯어고쳐 개인정보는 개인에게 오롯이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황당한 생각은 훗날 천재적 구상으로 인정받고 현실화될 수 있을까. 언제쯤?.

전명산 이사를 만난 날은 지난 10월31일이다. 그가 서면질문지에 답변을 보낸 날은 10월29일이다. 상편과 달리 하편의 아래 내용은 대부분 그날 보내온 답변으로 구성했다. 보스코인 메인넷 공개를 둘러싼 우여곡절 등 그 이후 변한 상황에 관해선 12월18일 최종 업데이트를 했음을 밝힌다. 


#왜 SF는 블록체인을 상상하지 못했을까


블록체인은 한번도 미래를 예견하는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한 적 없다고 언급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 이러한 기술을 예견하지 못했던 것은 대부분의 SF가 주로 우울하고 비관적인 상상력에 기반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책에서 이 부분을 언급한 이유는, 통상 SF의 상상력 하면 우울하고 비관적인 미래만 그리는데 실제 세계는, 지금도 그렇게 앞으로도 그렇고 그렇게 암울하지도 또 그렇게 비관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썼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렇게 장미빛도 아니고 그렇게 낙관적이지도 않지요. 항상 두 개가 공존하는 것이 현실 세계인데, 블록체인은 여러 면에서 미래에 낙관적인 요소를 가능하게 해줄 것 같습니다.”


책 앞 부분에서 에스토니아를 비롯해 여러 해외 사례가 나옵니다. 여기에 과장된 부분은 없을까요? 나중에 직접 다녀오시기도 했는데, 확인해보니 어떻던가요.

“책을 쓰면서 걸렸던 부분은, 단지 문헌조사 그것도 거의 뉴스에 언급된 보도자료를 근거자료로 썼다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부정확하거나 부풀려진 부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두바이, 에스토니아, 네덜란드, 독일을 직접 방문해서, 그리고 한 컨퍼런스에서 스웨덴 사례 발표를 들으면서 느낀 건, 이들 나라들이 제가 문헌으로 조사한 것보다 훨씬 풍부하고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네덜란드와 스웨덴에서는 직접 서비스를 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고요. 에스토니아는 문헌조사가 오히려 실제보다 훨씬 더 빈약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에스토니아에 대해서는 제가 책에서는 웹에서 접근할 수 있는 자료를 통해 추정만 하고 확신이 없어 약하게 기술한 부분이 있는데, 실제로 방문해보니 추정한 것보다 훨씬 진도가 더 많이 나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과의 격차가 감히 따라가기 어렵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또한 각국 정부들이 훨씬 더 열린 자세로 기술을 탐색하고 프로토타입으로 실험하고 과감한 도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국가가 마치 스타트업처럼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나라들과 우리나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유럽의 몇개 국을 방문해보니, 사회적 기술을 설계하는 능력이나 지식, 경험치가 비교하기 어려운 정도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유럽은 근대사회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부터 따져보자면 거의 500년 정도에 거쳐서 싸우고 뒤집어엎고 협상하고 타협하면서 만들어온 경험들이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 이후로 따지자면 채 100년이 안된 셈입니다.”


대통령을 바꾼 ‘촛불’은 사회적 기술에 영향을 끼쳤을까요?

“촛불이 직접적으로 새로운 사회적 기술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어느 지점까지 후퇴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국민적인 합의 지점을 확인해주는 것 같아요.”

<<블록체인 거번먼트>>의 지은이 전명산 블록체인OS 이사. 사진=고경태 


#정부 문서 하드디스크 훼손을 막는 길


블록체인을 활용해 관료제를 대체하는 작업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했는데, 정부가 그런 의지를 갖게 된다면 출발점을 무엇으로 삼아야할까요.

“아마 정부 행정조직에 적용하게 된다면, 블록체인을 활용해 데이터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작업이 실제 구현사례도 있고 해서 가장 쉽게 구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 문서에 블록체인을 적용해 문서의 위변조, 유실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같은 거요. 국립기록원, 청와대, 정부부터 지방정부 조직, 지방의회까지 다 적용 가능하지요. 이 정도만 해도 박근혜, 이명박 시절 있었던 하드 디스크 부시며 기록을 없애는 행위는 쉽게 하지 못할 겁니다. 이미 두바이는 2020년까지 모든 전자문서에 블록체인을 적용하겠다고 하고 있고, 에스토니아는 이미 그것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스웨덴에서 진행한 스마트 컨트랙트를 활용한 토지 거래 시스템 같은 것들을 프로토타입으로 실험해보는 정도만 해도 결코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 시도하고 있는 여러 프로젝트들이 있으니 그것을 벤치마킹해서 구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책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블록체인으로 돌아가는 자율조직 같은 정부를 만들어보자는 것인데 너무 성급한 꿈은 아닌가요? 또한 그런 점에서 가장 모델로 삼을 만한 나라는 어디일까요?

“에스토니아는 이미 블록체인 없이도 자율적으로 돌아가는 자동화된 행정 시스템을 상당 부분 도입했습니다. 에스토니아는 전자정부의 목표 중 하나로 아예 Invisible government로 설정했어요. 보이지 않게 시민들의 삶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거지요. 네덜란드는 개인정보를 국가가 모아서 관리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개인정보를 온전히 개인이 소유하도록 하는 방식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저는 (특히 블록체인의 등장으로 인해) 이미 세계가 탈국가 시대로 들어섰다고 보는데, 에스토니아나 네덜란드는 탈국가 시대에 국가가 어떻게 변모해야 하는지 이미 고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두가지 경로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에스토니아나 네덜란드처럼 국가 스스로 어떤 영역들을 탈중앙화하는 방향 그리고 민간 블록체인 프로젝트에서 국가간 경계를 넘어 기존의 국가가 했던 역할을 일부 대체하는 어떤 프로젝트들이 지배적인 서비스로 등장하는 방향이요. 두개의 힘이 동시에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현재의 주민번호 체계는 버려야 가고 시급하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시민정보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걸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네덜란드가 프로토타입을 구축해서 실험하고 있는 Self Sovereign Identity(자기주권신분) 서비스가 해답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개인정보는 개인이 관리하도록, 정부는 그 개인정보의 유효성만 확인하도록 하는 방식인데요, 주민등록증이 종이 문서로 관리될 때는 종이문서를 유출해도 사고 범위가 작고 크게 활용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정보로 넘어오게 되면 하드디스크 하나에 전국민의 정보를 담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즉 개인정보를 둘러싼 사고 가능성이 이전보다 엄청나게 ‘어마무시하게’ 커진 거지요. 더불어 개인들이 점차 세계를 돌아다님에 따라 한 국가에서 발행한 신분증만으로는 본인을 증명하기 점점 어려워집니다.
예를 들면 해외에 나갔다가 취직을 하는데 경력이나 학력 증명을 하려면 다시 국내에 들어와야 하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난민들의 경우에는 아예 신원 증명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개인정보 관리를 개인이 할 수 있게 해주면 정보 유출의 가능성이 확연하게 낮아지고 해외에 나가서도 자유롭게 자신을 증명할 수 있게 됩니다. 훨씬 편리해지는 거죠. 더불어 산업적으로 개인정보를 개인이 관리하면 개인정보를 본인 의지로 팔 수도 있기 때문에 역으로 관련 산업이 더 번창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천식환자 유전자가 필요한데, 제공하면 10만원이다 하면 천식환자 증명을 받아서 스스로 유전자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는 거죠. 기업체들도 완전히 합법적인 방법으로 데이터를 얻을 수 있게 되고 개인은 자기가 소유한 것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거니까, 안전한데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그런 구조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블록체인 정부를 부르는 이름 DAG


공유경제 플랫폼 구축, 블록체인 실험 도시 등 지은이가 제안한 프로젝트들 역시 당장 실천하기 쉽지 않은 과제들입니다. 그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에 거품이 있고 사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또한 본인이 가지고 있는 기술력을 활용해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과감한 실험을 하고 있는 그룹들이 있습니다. 이 그룹들이 충분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활짝 열어주어야 합니다. 구글, 페이스북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IT 산업에서는 성공한 서비스 하나가 세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단 하나의 제대로 된 성공사례만 만들어지면 기존의 모든 부정적 요소들을 다 상쇄하고 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블록체인 거번먼트를 위해 해결해야 하는 최대 난관은 무엇일까요? 블록체인 거번먼트의 기초가 탄탄히 구축된다면 이 정부의 본질에 관해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요?

“최대 난관은 정부의 규제라고 해야 할까요? 아마 각국 정부 관계자들이 블록체인 기술이 가진 의미와 이것이 만들어내는 가능성 그리고 그 방향 혹은 지향을 이해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앙집중적인 기존의 정부시스템과 충돌하는 지점도 있어서 더더욱 그럴 거에요. 그래도 이 흐름이 뒤로 가기는 어려울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어느 시점에 블록체인 거번먼트의 기초가 구축된다면 DAG(분산자율정부, Distributed autonomous government)라고 부르면 어떨까 합니다.”


블록체인 거번먼트란 결국 4차산업혁명으로 연결되겠네요. 4차산업 혁명이란 한마디로 뭔가요?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자신 없는데요, 여러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술적으로는 기술이 환경에 스며드는 현상(인간들이 살아가는 환경 자체의 재구성)으로 볼 수 있고, 정보 이론의 측면에서는 모든 물질적인 것들의 비물질화(정보화)라고 볼 수 있고, 정치경제학 측면에서는 인간 노동의 소멸, 기계 노동의 보편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블록체인은 기술의 홍수 속에 인간의 입지를 확보해주는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의 여러 기술들 중에 블록체인은 그 모든 기술들의 신뢰 영역을 담당하는데, 이 기술은 인간이 개입해야 작동하는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블록체인이란 사회적 기술을 만드는 기술이라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오세현 김종승의 <<블록체인노믹스>>에선 블록체인을 경기 파동을 촉진하는 ‘범용기술’이라고 설명합니다.

“아마도 넓은 의미에서는 비슷할 것 같습니다. 다만 사회적 기술이란 개념은 통상 기술이라는 개념이 이과 중심의 공학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아서, 기술에 다른 범주가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어 책에서 조금 길게 기술했습니다. 블록체인에는 정치학이나 경제학이 기술 안에 녹아 있으며, 인센티브와 같은 핵심적인 경제 개념들이 물리적 기술을 작동시키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기에 ‘물리적 기술로 구현한 사회적 기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블록체인은 경제 시스템이나 사회 시스템을 구축(프로그래밍)하는데 직접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리적 기술인 것이지요. 또한 사회 시스템을 프로그래밍하여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는 측면에서 범용기술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블록체인OS를 만드시고 한국 최초의 암호화폐인 보스코인도 만드셨는데, 직접 플레이어로 ICO를 하면서 느낀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블록체인OS에는 중간에 합류했습니다. 보스코인 초기 멤버는 아니지만, 2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이제는 같이 만들었다고 해도 될 정도인 것 같습니다. 굉장히 의미있는 프로젝트이고, 현재 멤버들은 가치 지향이나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 등이 같은 방향을 보고 있어서 꽤 좋은 상황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40 후반에 이런 프로젝트를 하게 되어서 굉장히 기쁩니다.”


#보스코인이 겪은 우여곡절

보스코인 메인넷 발표 이후 좋은 뉴스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큰 흐름에서 보자면, 회사나 재단과 같은 중앙화된 조직에서 어떻게 탈중앙화된 네트워크를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것은 블록체인 산업에서 일종의 숙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은 명확한 거버넌스 구조가 없기 때문에 두리뭉실한 구조이거나 혹은 ‘맘에 안들면 힘대결 하다가 서로 찢어지는 하드포크’로 가고 있죠. 반면 보스코인의 블록체인은 명확한 거버넌스 구조가 존재해요. 우리는 백서 1.0에서 이미 이 네트워크의 최고 의사결정 단위를 콩그레스라고 정의했어요. KYC(개인인증) 이후 1인 1표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에 이 거버넌스의 참여자 범위, 이 네트워크의 이해관계자의 범위가 명확해요. 이해관계자,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집단이 명확하니까 당연히 이 집단이 가진 위상이나 권한, 권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이 네트워크에 기존의 중앙화된 조직이 두개 있어요. 개발회사와 재단 말이에요.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개발회사의 위치는 참 애매하기도 하고 독특합니다. 개발회사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면서 또한 프로젝트 리더 역할을 해요. 그래도 개발회사가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면 안되요. 탈중앙화에 위배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이걸 알고 있고, 그래서 개발 회사 위치를 콩그레스 밑에 둔 겁니다. 재단 역시 위치가 참 독특해요. 이 네트워크에 법적 지위를 부여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통상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참여자들이 회사나 재단 이후에 만들어지기 때문에, 제대로 된 탈중앙화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려면, 기존에 이미 존재하는 중앙화된 권력에 대해서 어떤 권한 조정, 혹은 지배구조의 변화가 필요한 거죠. 바로 그 숙제가 메인넷을 오픈하자마자 우리한테 떨어진거에요.

사실은 이렇게 빨리 닥칠 줄 몰랐습니다. 보스코인 커뮤니티가 1인 1표 시스템에 적응하고 이 툴을 써보고 권한을 행사해보고 하면서, 커뮤니티가 가진 권력을 자연스럽게 인지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권한 혹은 권력 재조정에 대한 요구들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럴 기회를 못 드리고 우리가 숙제를 던져드렸어요. 중앙화된 권력인 재단이 탈중앙화된 네트워크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결국 재단 이사들의 권한이 탈중앙화된 권력에 복속되는 구조가 되어야 해요. 그래서 재단 이사 선출제’를 제시한 거죠. 개인적으로 누가 무엇을 했고 누가 뭘 잘못했고 이런 얘기들은 부차적인 것이고, 저는 중앙화된 권력에서 탈중앙화된 권력이 자리잡게 하는 것, 이게 보스코인 메인넷 이후 발생한 문제의 핵심이라고 봐요. 잘 풀어야죠. 사실 이런 문제들은 다른 프로젝트들도 다 가지고 있지만 무마하거나 쉬쉬하면서 갈 수 있는데, 보스코인만 독특하게 아주 명시적인 탈중앙화 권력체(콩그레스)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다소 격렬한 형태로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단계를 넘어야 블록체인 기반의 진정한 탈중앙화 커뮤니티가 작동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산업에서는 실패할 기회를 줘야 한다

블록체인에서 단 하나의 성공사례만 나오면 된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두 차례인가 하셨던데, 이는 거꾸로 그만큼 실패가 많았다는 얘기일 겁니다. 실패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실패해봐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보스코인은 내부적으로 3번 정도 위기를 겪었습니다. 대표가 두번 바뀌었고, 개발진은 완전히 새로 재구성되었습니다. 그것도 실패라면 실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 실패를 딛고 어쨌든 메인넷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한다면 올 수 없는 길이었다고 봅니다.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직접 결합해서 2년 가까이 해보니, 프로젝트의 난이도와 도달해야 하는 수준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훨씬 높습니다.

사실은 한번도 해보지 않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닥치는 문제도 그렇고 고민의 정도도 다릅니다. 그래서 결국은 겪어봐야 해요. 비트코인이 처음 작동하는 블록체인을 세상에 내고 거래소 해킹부터 온갖 문제를 겪었듯이, 이더리움이 블록체인 위에 작동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고 나서 다오 해킹부터 하드포크 그리고 최근의 ICO 대란으로 가격 폭락을 경험하듯이, 이 산업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일어나야 하는 일들은 결국은 다 겪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 경험으로부터 보다 진지하고 보다 전략적이고 보다 똑똑한 프로젝트들이 탄생할 거에요.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이더리움 이후의 3세대 블록체인에 대한 고민은 사실 거의 2014년이나 2015년부터 시작되었어요. 이제 그 결과물이  하나씩 나오고 있는 것이죠. 이것도 역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이 보여준 전망과 성과 그리고 한계와 취약점 등을 보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들을 찾았기 때문에 3세대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 산업에서는 실패할 기회를 주어야 해요. 물론 사기, 횡령, 배임 등은 철저하게 차단해야죠. 그게 아닌 실험과 실패는 장려하고 또 도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해요. 그래야 산업 전체의 발전 속도가 빨라질 거에요.”

전명산 이사가 코인데스크코리아 독자들을 위해 추천한 책은 <<암호화폐, 그 이후>>(애덤 로스타인 저, 홍성욱 역, 반비, 2018년 4월)다. 전명산 이사는 “블록체인이 어떤 궤적을 그리며 왔는지, 기술 이슈를 중심으로 배경을 충실히 보여주는 책”이라고 평가했다. 


#다음엔 블록체인시티 청사진 그려보고 싶어

다음 책을 기획하고 계신가요? 다음에 또 책을 쓰신다면 어떤 방향으로 계획중이신가요.

 “당장은 현재 코인데스크 코리아에 기고하고 있는 글 및 올해 언론에 기고한 글들을 재정리하여 책을 하나 낼 예정입니다. Blockchain City라는 컨셉으로 책 혹은 Blockchain City의 청사진 같은 것을 그려보는 것이 목표 중 하나입니다. 원래 올해 진도를 빼는 것이 목표였는데, 아직 손을 못대고 있네요.”

블록체인 분야를 탐구하면서 늘 흥분된다고 어느 글에선가 쓰셨던데, 무엇이 그렇게 흥분되나요.

“그동안 사회운동의 꿈, 불가능한 이상으로 여겨졌던 ‘탈중앙화된 사회’,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보다 가깝게 구현해볼 수 있겠다는 상상을 끊임없이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시리아 쿠르드인들의 ‘로자바’ 관련 기사는, 블록체인 기술로 사회 시스템을 설계하고 작동시켜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저만 하고 있는게 아니라는 자극을 주기도 하구요. 흥분할 수밖에 없지요.”


블록체인에 관해 구루가 있거나, 있으셨나요? 그 분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사토시 나카모토나 비탈릭 부테린이나 다 엄청난 이정표를 만든 사람들이고 정말로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 둘을 제외한다면, 현재 같이 작업하고 있는 CEO 최예준, CTO 배민효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도 한 이론하고 한 상상 하는데, 최예준 대표는 CEO는 엔지니어이면서 기술적 상상력과 인문사회학적 지식이 웬만한 학자를 능가합니다. 이미 3년 전에 블록체인으로 지역화폐를 직접 돌려본 실천가이기도 하구요. 배민효 CTO는 우리가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기술적 해결책들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내부에서 이 일은 이런 이런 의도가 있고 이런 이런 걸 해야해… 뭐 이런 걸 가지고 설득하고 이런 일들은 많이 없어요. 철학과 비전과 방향이 비슷하니까 주로 실행이 어떻게 되냐를 가지고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만난 엔지니어들 중에는 최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열불납니다. 아니 열블납니다. 불 말고 ‘블’입니다. ‘열심히 블록체인 블라블라’의 준말이라고 해둡시다. 블록체인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에 관해 뜨겁게, 또는 냉철하게 기록하고 조망한 책들을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책의 주인공도 만납니다. 이름하여, 열블나는 책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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