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평 17] 오만과 편견 - 불확실성과 투자

in #kr6 years ago (edited)

'독사평'은 '독후감 사이 서평'의 준말입니다.


제목을 안 들어본 사람이 없는 유명한 고전이지만, 예전에 한 번 읽으려다가 중간에 그만둔 적이 있어서 누가 추천해줬을 때 좀 망설여졌다. 그러나 생각보다는 훨씬 재미있게 읽혔다. 다른 시공간에서 발생하는 이야기인데도 재미있는 걸 보면 고전으로 인정받는 데는 이유가 있나보다.

이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작가가 인물 설정을 시트콤처럼 해서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베넷 부부부터 예사롭지 않다. 특히 베넷 부인은 이웃들과의 수다가 낙이고 딸들을 시집 잘 보내는게 인생 사업인 사람으로, 등장할 때마다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주인공 엘리자베스(리지)가 어머니의 언행 때문에 부끄러워할 때면 가려주고 싶어진다. 책은 많이 읽었을지 몰라도 분위기 파악은 전혀 못하고 지적 허세만 부리는 메리 등 리지의 동생들도 재미있다. 그러나 앞부분에서 역시 가장 재미있는 곳은 편지를 쓰는 다아시 씨와 옆에 붙어서 촐싹대는 빙리 양의 대화다. 고전 소설을 읽다가 웃음이 터질 줄은 몰랐다. 작가는 인물의 특징을 과장해서 풍자하는 데 재능이 있다.

"여자의 NO는 NO다." 아직도 남자들이 반신반의하는 문장이다. 소설 초반에서 작가 제인 오스틴은 리지를 통해 이 주장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작가가 여지없이 희화화하는 콜린스 씨만 봐도 그렇다. 그는 리지에게 청혼하지만, 리지는 마음이 전혀 없기에 거절하는데 콜린스는 이것을 리지가 튕기는 것으로 오해한다. 리지는 힘겹게 그를 떼어내는데 어이없게도 그는 금방 리지의 친구인 샬럿에게 또 청혼한다.

이 소설은 여자들이 결혼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여자가 현대처럼 취직하기도 어려운 시대였다보니 성공적인 결혼은 여자의 '가장 확실한 가난 예방책'일 수밖에 없다. 당시에는 조건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거나 사랑 없는 결혼이 많았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리지의 철딱서니 없는 동생 리디아는 사랑만 있는 결혼을, 친구 샬럿은 조건만 있는 결혼을 한다. "가문이며 재산, 모든 것을 다 갖춘, 그렇게 훌륭한 젊은이가 자기 자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잖아. 이런 표현을 써도 좋다면, 그분은 오만할 권리가 있어." 초반에 샬럿이 다아시 씨를 평가하는 말이다.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 목사 남편을 찾은 그의 현실적인 사고방식이 드러난다.

한편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주인공답게 우여곡절 끝에 조건과 사랑을 모두 쟁취한다.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주변의 여러 인물들이 돌아가며 발목을 잡거나 도와주는 통에 지루할 틈이 없다. 게다가 엘리자베스는 재치 있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상대방을 점차 알아가면서 그에 대한 생각을 바꿔나간다. 즉 어느날 간택되어 인생역전을 한다기보다는, 근거에 따라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처음엔 리지가 별볼일 없다던 다아시 씨는 그녀의 눈에 반하더니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다. 구글에 잠깐 검색해 보니, 돈만 보고 접근하는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리지는 사람을 사람 자체로 대했기 때문에 다아시 씨에게 스스로 돌아볼 기회를 주었고, 다아시 씨는 이런 리지의 성격 때문에 결혼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는 의견이 있다. 나무위키에는 다아시 씨가 "나한테 이런 건 네가 처음이야"의 원조라는 분석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작가가 엘리자베스의 심리 변화는 굉장히 공들여 서술하면서 다아시 씨의 감정은 좀 뜬금없이 나타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뜬금없이 빠지는 게 사랑이고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비합리적이지만 말이다. 작가가 남자였다면 다아시 씨가 가장 미인인 제인에게 반하게 했을 것 같다.

제인 오스틴의 시대에도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팔자를 고칠 수 있고, 근로소득은 임대소득보다 천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씨가 결혼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비합리성과 인생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샬럿같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아시 씨 같은 '비합리적인' 결정을 하고 신분이 낮은 배우자를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이 소설에서도 그렇고 여러 드라마에서도 등장 인물들이 합리적인 결혼으로 인생의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려고 노력한다. 재미없고 속 좁으며 눈치없는 콜린스 씨와 결혼한 샬럿이 그렇다. 그만한 혼처라도 왔을 때 잡아야지, 잘못하면 더 못난 사람과 결혼해야 하거나 심지어는 결혼을 못할 수도 있다. 즉 인생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이다.

우리는 불확실성을 'risk,' 즉 위험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데 익숙해져 있다.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고 불확실성 끝에 손실을 입는 것은 더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에는 좋은 가능성도 포함되어있다. 불확실성은 일단 사람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하므로 좋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불확실성의 좋고 나쁨은 오직 결과만이 말해준다. 그런데 결과는 완전히 예측할 수 없으니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해 예측하되, 그 과정에서 자신의 원칙, 가치, 철학을 지키는 것이 최선이다. 예측할 수 없다면 원칙을 지키되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가치와 원칙을 지켰다. 사람은 신분이나 재산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로 보았고,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며 재치 있는 대화를 즐겼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여 처음에는 위컴의 말에 다아시 씨를 매우 안 좋게 보았으나, 반대되는 증거들이 하나둘 나타나자 의견을 바꾼다. 중립적인 불확실성은 다행히도 리지의 인생을 바꾸었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한 미래를 두려워한다. 입시, 취업 경쟁, 결혼 정보 회사...그래서 안정된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통해 안정을 찾고 하면서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듯 불확실성을 하나씩 뿅뿅 제거하려고 애쓴다. 그러면 불안한 미래는 정해진 미래로 바뀐다. 주택담보대출, 퇴직, 육아...에 한숨을 쉰다. 매우 안정적이고 확실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 미래. 그렇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불확실성을 찾아가는 건 어떨까? 예를 들어 월급을 착실히 은행과 보험사에 쌓아두기만 하기보다는, 주식, 코인, 암호화폐 등에 투자를 해야 내 인생이 나아질 불확실성(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

엘리자베스 베넷은 불확실성을 그저 제압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함께 춤을 추었다. 그리고 불확실성은 그의 인생에 꽃으로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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