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티벌

in #kr8 years ago

봄-여름은 바야흐로 페스티벌의 계절이다. 평소 쇼핑몰이나 홍대 9번 출구 같이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숨이 턱 막히고 흐물흐물해지는데 이상하게 공연이나 페스티벌 등은 예외다. 연초부터 갖은 페스티벌들의 라인업이 뜨면 그 때부터 설레기 시작하여 어디를 갈까 고민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면 또 다음 여름을 기약하며 시름시름 지낸다.
올해도 어김없이 크고 작은 페스티벌들이 열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지난 몇 주간 부지런하게 움직여 몇몇 페스티벌을 순회하고 왔다. 아래는 그에 대한 소소한 단상들과 행동 양식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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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페스티벌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누워서 살랑살랑 즐기는 페스티벌이고 다른 하나는 미친 듯 뛰어노는 페스티벌이다. 최근 다녀온 곳들은 모두 전자에 속하는 페스티벌이었다.
다닌 지 얼마 안됐을 땐 앞을 선점하겠다는 욕망에 불타올라 오픈 몇 시간 전에 가곤 했었는데 이젠 체력이 그걸 허락하지 않아서 스테이지 입장 시간 즈음에 느지막이 간다.

시야를 다소 포기하고 체력을 비축하는 전략이다. 여유롭게 티켓과 팔찌 교환 후 입장하여 적당한 곳에 돗자리를 펼치고 드러눕는다. 오면서 사용한 체력을 회복시키기 위함이다. 좀 살만하다 싶으면 슬슬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한다. 페스티벌에 수많은 부스들이 있는데 내가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언제나 맥주 부스이다. 내 삶의 철칙 중 하나가 ‘오전에는 음주를 하지 않는다.’ 인데 페스티벌은 예외다. 일탈의 기분을 마음껏 느끼며 첫 잔을 흡입하고 맛있는 냄새가 나는 곳으로 향한다.

어쩌면 내가 페스티벌을 가는 까닭은 음악을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음식을 즐기기 위함일 수도 있다. 축제의 음식들은 비싸고 양도 적지만 그것들이 나를 막을 순 없는 것이다. 나가서 뛰어놀 때가 아니면 항상 뭔가를 씹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런 페스티벌의 단골 음식은 보통 닭강정이나 감자 후라이로 맛은 쏘쏘하지만 냄새가 굉장하여 홀린 듯 부스로 향하고 있는 나를 볼 수 있다.

그 중 하루, 미세먼지와 바람이 엄청났던 날이 있었다. 오지 치즈 후라이의 비주얼에 홀려 구매를 결정하고 음식을 받아 자리로 돌아가던 중 참극이 벌어졌다. 몇 가닥 먹지도 않은 상태였는데 강풍이 몰아쳤고 흙먼지와 잔디 조각이 내 후라이를 강타했다. 눈물을 머금고 버릴 수밖에 없었다.

많은 페스티벌들이 스테이지가 나뉘어져 있다. 때문에 보고 싶은 공연들이 겹치는 경우가 수도 없이 발생하여 몸이 하나밖에 없는 나는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비극에 처해진다. 이번에도 역시 수많은 공연들을 포기했다. 세상살이가 이런 것이다. 원하는 걸 모두 다 가질 순 없는 것이다.

그렇게 먹고 마시고 눕고 울고 즐기다 보면 시간이 꽤 지나있다. 하루는 내가 좋아하는 밴드가 헤드라이너였기 때문에 그 전전 공연부터 스탠딩존으로 뛰쳐나가 대기를 탔다. 그들을 조금이라도 앞에서 보기 위해 장장 세 시간을 서있었다. 디스크 환자는 오열하고 싶었다. 앞 사람 키도 커서 하나도 안보이고 다리 아프고 발 아프고 환장할 노릇이었는데 그들이 리허설을 위해 나오자마자 모든 근심과 걱정이 풀리며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하고 그 후 기억이 거의 없다. 행복했던 느낌만 남아있을 뿐...

페스티벌은 정말 좋은 추억이 된다. 비 오면 비 오는대로 우비 쓰고 미쳐 날뛰는 재미가 있고 날씨 좋으면 그것대로 재미있다. 뛰어노는 것은 물론 사람 많은 곳에서 게으르게 누워 먹고 마시고 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앞으로도 많은 페스티벌이 기다리고 있는데 벌써 재밌다. 훗날 나에게 20대의 가장 재미난 추억이 무엇인가요? 묻는다면 당당하게 페스티벌이요...! 라고 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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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stivals are great, I love when people come together to have a good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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