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하세요 그리고 미소지으세요
"처음부터 우리가 사랑한 사람들은
밀려나지도 잊히지도 않으리.
죽은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슬퍼하리라,
존재하지 않음을……
그 이별이 두 번 다시는 없으리라 다짐하면서.
떠나보낸 자는 생생하게 기억하리,
함께 존재한 백만 번의 순간들은
기억 속에서 마음껏 흩뿌려지리라,
밤새 가문비나무 가지에 쌓인 흰 눈이
오전의 햇살 속에서 반짝이는 먼지로 부서지듯이."
- 골웨이 킨넬(Galway Kinnell), 미국의 시인
붓다는 우리가 불난 집의 어린아이처럼 삶을 탕진하고 있다고 가르쳤다. 아이는 놀이에 흠뻑 빠져서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자욱한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 놀이는 삶의 불가피한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그릇된 귀의처, 삶을 통제하고 속이려는 무의식적인 시도를 뜻한다. 하지만 이 삶이 타버리고 무너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슬픔과 기쁨은 하나로 엮여 있어서 결코 떼어낼 수 없다. 상실의 실상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변화무쌍한 이 세계의 아름다움과 독창성, 신비로움과도 단절된다.
나는 상실의 고통에서 물러서는 것이 영리하고 자비로운 대응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가 기운을 차리고 객관적인 시각과 균형을 되찾을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 상실 직후에 어떤 것에 몰두하는 행위, 즉 일이나 책, 영화에 파묻히거나 친구들에게 둘러싸이는 것은 그릇된 귀의처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위안을 얻는 방법이 건전하지도 일시적이지도 않을 때가 많다. 그 방법들은 슬픔을 느낄 필요가 없도록 자신의 경험을 통제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으로 변질된다.
크나큰 상실을 겪은 후 우리가 자학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의 잘못에 골몰하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실망시킨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임종을 지켰어야 했어.” “너무 바빠서 함께 있어주지 못했어.”라는 생각에 몰두한다. 또는 이혼, 실직, 건강 문제, 통제 불가능한 부정적 감정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강박적으로 곱씹는다. 자신의 고통에 대고 자기비난이라는 두 번째 화살을 쏘는 것이다.
자기비난은 우리가 상황을 통제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우리의 일상 활동의 다수는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고 느끼고 곤경을 피하려는 세심한 노력이다. 이것이 실패할 경우, 다음 방어선은 자신을 더 낫게 뜯어고치는 것이다. 자신을 바꿀 수 있다면 더 이상의 고통은 없을 거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자신과의 전쟁에 돌입하는 것은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다.
자기 보호막이 찢어져 열릴 때 우리는 너무도 연약하고 취약하다. 때때로 우리는 허둥지둥 통제자를 재건하여 바쁘게 활동하고 타인을 비난하고 자신을 비난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 찢어진 틈을 기꺼이 내버려둘 때, 통제하지 않고 현재에 살 수 있을 때 치유가 가능해진다. (…) 깨어날 때 우리는 슬픔이 언제나 그 자신에게 충실하도록 허락할 수 있다. 슬픔에 기꺼이 항복할 수 있다. 떠나간 것을 존중함으로써 우리는 지금 여기의 삶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슬퍼하는 일이 끝나면,
상실의 상처는 아물고
당신은 그 아득한 간극에서
시선을 거두는 법을 배우고
당신의 영혼 속의 안식처에
들어설 수 있으리라,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이 돌아오길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
- 존 오도나휴
호흡하세요 그리고 미소지으세요
- 두 번째 화살을 피하는 방법 [ 개정판 ]
타라 브랙 저/윤서인 역 | 불광출판사
https://steemit.com/news/@bible.com/6h36c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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