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역사다] 관람기

in #kr7 years ago

혼자 영화관을 찾은 건 태어나서 두 번째였다. 상업영화관에서는 대부분 막을 내린 영화를 보려니 한 독립영화관이 눈에 띄었다. 사뭇 고급스러운 영화관객이 된 듯한 기분까지 주는 영화관이었다.

하지만 입장표를 관리하는 직원이 없어 낭만적인 영화관일 거라는 생각이 오산이었음을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영관 입구를 출입문이 아닌 암막커튼으로 가리웠는데 이건 독립영화관으로서의 분위기를 위한 선택인지 아니면 재정난에 의한 절약인지 모를 일이었다. 영화 중에도 부산스레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커튼을 완전히 폐쇄하지 않자 새어들어오는 빛이 맞은편 스크린에 미쳤고 덕분에 간간이 화질이 저하됐다. 좌석번호를 해당 좌석의 등판에 붙여놓은 것은 서로 도우며 살라는 교훈을 전하는 사려 깊음일까? 독립영화관임을 감안하더라도 주로 종교색체의 영화를 상영하여 관객의 신앙심을 밑천으로 운영하면서 이 정도 인프라를 제공한다는 건 괘씸한 노릇이었다. 게다가 가격마저 차이가 없었으니 차라리 돈 벌려는 의도를 전면에 내건 상업영화관이 서비스를 구입한 손님의 관점에서는 훨씬 좋았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비극의 막이 오른 건 영화가 시작한 후였다.
영화의 결말이 어떻든 상관 없이 어차피 은혜를 받을 게 분명해 보이는 권사님 느낌의 어르신은 부잣집 거실만한 영화관에 청량감 있는 벨소리를 선사하셨고 그 정도가 아쉬웠는지 기어이 전화를 받고야 말았다. 다른 데 같으면 1시간을 수다 떨 일이나,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귓속말로 용건만 간단히 하는 것이 예절이라고 믿는 듯했다. 이렇듯 저마다 '교양'의 범위는 달랐다.
그러고는 몇 분 뒤 앞자리에 앉은 이의 핸드폰이 또한 맑은물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재생했고 수신전화를 받지 않고 황급히 끊어버리는 것으로 봐선 '다른 교양을 가진 이구나'하는 안도감을 주었으나, 5분 뒤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환한 화면을 눈높이로 들이대며 문자를 확인하는 것을 보니, 교양의 범위는 역시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한눈에도 교회 소그룹 단체관람을 온 것 같은 한 무리의 청년 중 하나는 영화 중반 코를 골기 시작했고 아마 예쁜 '자매님'이 '신앙이 성숙한 남자'를 이상형으로 꼽자, '난 이런 영화도 함께 봐줄 수 있는 남자다'를 어필하러 호기롭게 영화관을 찾았지만 끝내 관심 밖의 스토리가 주는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든 모양새였다.
때마침 절반이나 놓친 영화를 어찌 이해하겠다고 들어오는 관객은 필시 예매한 표값이 아까웠으리라.
아까부터 좀이 쑤셔하던 뒷좌석에 앉은 초등학생은 옆에 나란히 앉은 부모의 은혜에 이끌리어 원치 않는 관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했고, 조기신앙교육도 부모 욕심이라는 것을 주지시켜 주었다. 부모 중 하나는 냉방병에 비염을 앓고 있는지 30초마다 코를 들이켰는데, 예수가 지나는 곳마다 환자들이 있었으니 마땅히 함께 신앙의 길을 걸아야 한다 생각하자 자못 기도까지 나왔다.

모든 상활을 지켜보며 심기가 불편한, 초장부터 심사가 뒤틀려버린, 그래서 팔짱을 낀 채 삐딱한 자세가 될 수밖에 없었던 맨 뒤에서 두 번째 줄에 앉은 한 출판편집자는 '자신만이 질 높은 관객'이라는 듯 영화의 주인공이 회심하기 전과 같은 오만한 태도였다. 영화가 끝나기만 하면 온라인에 자신이 느꼈던 불쾌감을 토해내리라 작심하며 홀로 이를 갊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행위가 세상을 이롭게 만들 가능성은 없었다. 그도 결국 작은 파편인 것을. 어차피 너도나도 등신이었다.

'예수'는 알되 '예절'은 모르는 무람없는 관객들은 왠지 서로가 남 탓을 하는 것 같은 묘한 기류를 생성했고 속절없이 흐르는 필름은 이를 수습할 시간을 내어주지 않았다.
끝까지 보지 않아도 뻔했던 '거대 교회 목회자의 간증을 바탕으로 한 실화'는 예상 범위 내 결론을 내어놓았고, 10점 만점에 전문가 평점 '4'와 관객 평점 '9'의 현격한 차이가 왜 그러한지 설명해주었다.

저마다 개성을 뽐내던 관객들이 아웅다웅, 복닥거리던 이 영화관은 그냥 그대로 오늘날의 교회였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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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제가 @book-zangyi님 옆자리에 앉아있다 온 듯 짜증 제대로였거든요. 영화도 시쳇말로 "안 봐도 비디오"고요. 잘 읽고 갑니다. 글 자주 써주세요. :)

헉!!!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짜증이 폭발하여 영화가 끝난 뒤 저는 키보드 워리어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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