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지금 곧 내려가, 그 여인의 영혼을 거두어라. 그러면 세 가지 말의 뜻을 알 수 있을 게다. 인간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세 가지 말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세 가지를 깨달은 날에, 하늘로 돌아오너라.' p.45
"나는 모든 인간들이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고 걱정하기 때문에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을 낳고 죽어가던 그 어머니에게는, 아이들이 살아가는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또 그 부유한 손님은 자기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지 못했다. 사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살아서 신을 장화인지 아니면 죽어서 신을 슬리퍼인지, 그것을 아는 것은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는다. 내가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내 스스로의 일을 걱정하고 염려했기 때문이 아니다. 길을 가던 한 사람과 그의 아내의 마음에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보살펴 주려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두 고아가 잘 자랄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어여쁘게 생각한 한 여자의 진실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든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그들이 자기 자신을 걱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에도 하느님이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그들이 잘 살기를 바라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새롭게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흩어져 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개개인의 인간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보여주지 않았다. 다만 인간들이 서로 모여 살기를 원하시면서, 자기 자신과 모든 인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일깨워주신 것이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사람이 오직 자기 자신의 일을 생각하는 마음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저 인간들의 생각일 뿐이라는 것을. 인간은 오직 사랑의 힘에 살아가고 있다. (하략)" p.51~52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단편을 요약하면 이렇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다. 그래서 화를 내던 세몬의 아내가 태도를 바꾸어 미하일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인간에게 주어져 있지 않은 것은 자신의 육체를 위해 없어서는 안될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지혜가 주어져 있지 않다. 일 년을 신어도 변하지 않는 신발을 주문하고 있지만, 자신이 그 날밤에 세상을 떠나는 것은 모르고 있다.는 사건에서 나오는 얘기다. 아이들의 부모는 죽었지만 그들의 이웃이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봐주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일화에서 내려놓은 해답은 '사랑'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의식주 외에 사랑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 내 마음속에 있는, 또 타인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이 상호 간에 끈을 만들고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왜 사는가?
내가 요즘 빠져있는 논제이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어떤 책들을 읽으면 좋을지 고민해봐야겠다.
<달걀만 한 씨앗>
"소인의 밭은 신(神)의 땅이었습니다. 쟁기질을 한 그곳이 바로 밭이었습니다. 땅은 자유였습니다. 제 땅이란 것이 따로 없었습니다. 제 것이라고 여겼던 건, 오직 제 노동뿐이었습니다." (중략)
"요즘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살아가려 하지 않고, 남의 것을 넘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오직 신의 뜻에 따라서만 살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땀 흘려 얻은 것만 가졌을 뿐, 결코 남의 것을 탐내거나 빼앗는 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p.63~63
**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자유'롭다. 예전처럼 누군가에게 귀속되어 대가 없이 노예처럼 일하지 않는다. 물론 어딘가에 고용되어 일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한 대가는 오로지 나의 선택에 의해 쓰인다.
그러나 이것이 '100% 자유'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당장 윗집에서 울려대는 층간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일요일 아침 근처 교회에서 울려펴지는 성가대의 노랫소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아침 일찍 길을 나선 쓰레기차의 후진 시 나오는 엘리제를 위하여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매일 마주하면서도 일을 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또 내 옆에 있는 누군가가 더 좋은 차를 탈 때 느끼는 박탈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나보다 어느 것 하나라도 뛰어난 사람에게 느끼는 시기와 질투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누군가를 이겼다는 상대적 우월감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자유로울 수 없는 것들로 인해 수반되는 우울함, 열등감 그리고 각종 사회악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소유의 자유로 인해 우리는 더 소유하려 하며 소유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에게 자유가 많이 주어질수록 자유로워질 수 없는 아이러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사고들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난다. 한국은 너무 단기간에 많은 자유를 가졌으며, 그 자유로 인해 너무 빨리 성장했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이 세계가 그렇다. 우리는 자유로워졌다. 자유로워진 만큼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성찰했어야 했는데, 자유의 시간을 내 것을 지키고 내 것을 만드는 것에 너무 쏟아부었던 것 같다. 사회의 발전에도 속도가 필요하다. 구성원이 납득할 수 있고, 사회에 종속되지 않고 온전히 이끌어나갈 수 있을 정도의 속도여야만 한다.
우리는 지금 너무 빨리 흐르는 물살을 탔다.
<꼬마 도깨비의 선물>
꼬마 도깨비가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그런 방법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 농부가 필요 이상의 옥수수를 수확할 수 있도록 했을 뿐입니다. 짐승의 피는 항상 사람들 속에 흐르고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필요한 만큼의 곡식만 가지면 결코 그 한계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저 농부는 예전에 빵을 잃어버리고도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았던 겁니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곡식이 넘쳐나자, 그는 그것에서 다른 즐거움을 찾으려 했습니다. 저는 그 즐거움이 술이라고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결국 저 농부는 하느님의 선물을 자기만의 쾌락을 위해 술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몸속에 흐르던 여우와 늑대, 돼지의 피가 한꺼번에 솟아 나오게 되었죠. 저 농부가 계속해서 술을 마시는 한, 그는 언제나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될 것입니다." p.138~139
** 우리는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 최소한의 의식주만을 영위할 수 있을 때는 이 정도로 살아도 더할 나위 없겠다 싶다.
그러나 조금씩 가진 것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잃을까 두려워하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한다.
소유에 대한 욕망이 생길수록 인간은 불행해진다. 맛있는 것을 먹을수록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 하고, 사치품을 가질수록 더 고가의 상품을 원한다.
이미 가진 것들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하는데, 나 역시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신분이 변하면서 수중의 돈이 많아지자 이전에는 가질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욕망이 생겼다. 구매해놓고 돌아보면 이것이 꼭 필요한가? 자문했을 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앞으로는 물건을 구매하건, 어떤 다른 쾌락을 찾던 이것이 내게 꼭 필요한 것인지 돌아보겠다. 검소한 삶이 곧 가난한 삶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사람에겐 땅이 얼마만큼 필요한가?>
하인은 삽을 들고, 빠홈의 무덤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정확하게 치수를 쟀다. 3아르신(1아르신은 약 70cm)이었다.
하인은 그곳에 빠홈을 묻었다. 약 2미터가량의 넓이가 그가 차지할 수 있었던 땅의 전부였다. p.222
** 아등바등 살아서 많은 재산을 가지더라도, 결국 우리가 흙으로 돌아가게 될 때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흙에 묻힌다면 빠홈과 마찬가지로 내 신장만큼의 땅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화장해 납골당에 들어간다면 내가 가질 수 있는 땅은 하나도 없다.
작은 공간만이 나의 추억과 기억을 함께 공유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그토록 많은 것을 가지려 하는 것일까?
결국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게 되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함과 가진 것에 감사하지 못함에 있다.
그 못함은 결국 과욕을 부르고, 불행의 늪으로 빠지게 만든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첫 단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봤던 또 다른 톨스토이 단편선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나는 신발이 없어서 우울하다. 그런데 길거리에서 발이 없는 사람을 보았다.'
이때도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한참 신발에 대한 소유욕이 높아 몇 켤레씩 구매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톨스토이의 단편선들도 저 문장과 마찬가지로 대체적으로 인간의 '욕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답은 사랑이다.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소유와 욕망)은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오랜만에 잊고 지내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끔 해주는 책이었다.
역시 톨스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