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기술이란 무엇인가? (What is Social Technology?)

in #kr8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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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에 대한 결정론적 시각 혹은 기술로부터 도피할 수 있다는 시각은, 기술을 단순히 ‘기계’라는 물리적 실체에 구현된 어떤 것으로 볼 때에나 가능한 것이다. 기술이 결정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노력, 저항, 변형, 적응 등)이 기술 그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논리다. 또한 기술로부터 도피할 수 있다는 생각은 기술을 우리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는 '그 무엇’인가로 인식할 때나 가능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시각은 기술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 측면에만 촛점을 두고 논의하는 것이라면, 이와 사뭇 다른 유형이 기술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바로 사회적 기술(Social Technology 혹은 Socio-Technology)이다.

사회적 기술이란 개념은 우리에게 그리 친숙한 개념이 아니다. 게다가 그 개념은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사회적 기술이란 개념은 크게 세 가지 맥락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번째는 사회적 기술을 개인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기술(Technology)이 아니라, 사회에서 개인이 행동을 ‘잘' 하는 기술(skill)로 해석하는 것이다. 통속적인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처세술’, ‘용인술’, ‘대인관계술’과 같이 인간들 사이에서 사회적 관계를 만드는데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매너, 태도, 화법, 설득법 등 타인과 조율하거나 때로는 타인을 조종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아마도 ‘사회적 기술’이라 하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개념이 아닐까 싶다. (알라딘에서 '사회적 기술’을 검색하면 상단에 주로 이런 류의 책들이 나온다.

두번째는, 사회과학(Social Science)이라는 개념의 상보적인 개념으로 사회(과)학적 지식을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사용하는 구체적인 기술이나 방법론으로서 사회적 기술(Social Technology)을 사용하는 것이다. 두번째 개념은 개인 혹은 집단이 방법을 고안하거나 새로운 기법을 도입하는 것, 즉 사회적 문제나 과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 기술’을 ‘활용'하는 것에 촛점을 둔 개념으로, 여기서는 특히 학문적 측면과 실용적 측면(기술의 적용)이 부각되어 있다. 이와 같은 시각은 비교적 오래 전에 제시되었는데, 1901년에 C. R. Henderson이 쓴 'The Scope of Social Technology’에 잘 정의되어 있는데, 이 같은 시각이 일반적으로 학문 영역에서 논의되는 사회적 기술 개념이다. (이에 대해서는 https://en.wikipedia.org/wiki/Social_technology를 참조하라.) 첫번째 개념과 두번째 개념은 다소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다. 첫번째 것은 개인이 다른 개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특히 태도와 매너의 관점에서 다루는 것이라는 점에서 다른 두 개념과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특히 첫번째 개념은 이 기술을 개인이 체화할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는 측면에서 다른 두 개념과 큰 차이가 있다.

세번째 개념은 인간의 활동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인간들의 행동을 매개하고 개인들의 행동양식, 개인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개인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속도, 공동체 내부의 정보 유통양식과 커뮤니케이션 방식, 의사결정 방식을 매개하고 이들을 틀짓는 일련의 기술들, 즉 사회가 작동하도록 하는데 활용되는 다종다양한 기술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기술-이러한 기술을 물리적 기술(Physical Technology)라고 부르자-은 일상적인 개인들의 활동과 무관하게 공장이나 연구실 저 깊숙한 곳에 혹은 기계 속에 체화되어 작동하는 것들이 많지만, 사회적 기술은 바로 인간의 활동과 연계되어 있는 기술들이다. 즉 세번째 개념은 사회에 내재된,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가 작동하는데 중요한 매개체로 기능하는 기술 그 자체를 명명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사회적 기술’의 세번째 개념은 ‘사회적 기술’을 개인이 소유(첫번째 개념)하거나 혹은 특정 집단이 행사할 수 있는 것(두번째 개념)이 아니라고 본다.

세번째 개념은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리차드 넬슨(Richard R. Nelson)이 정의한 Social Technology의 의미에 가깝다. 리차드 넬슨은 기술을 '물리적 기술'(Physical Technology)와 ‘사회적 기술’(Social Technology)로 구분하고, 사회적 기술을 '법, 제도, 화폐, 도덕규범 등 사회를 지탱하고 유지하는 체계'로 정의했다. 필자가 사용하는 사회적 기술은 리차드 넬슨이 정의한 개념에 기초를 두고 있다.(사회적 기술에 대한 비교적 쉬운 소개글은 <사회적 기술에 의한 가치실현>를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

사회기술(Social Technology)이 중요한 것은 사회적 기술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 방식을 정의해주고,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해주고, 개인과 조직, 조직과 조직 사이를 매개하거나 연결해주는 장치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기술로는 시장, 화폐, 관료제 등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러한 사회 구성 장치들은 공동체 전체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개인이나 특정 집단(예컨대 두번째 개념의 전문가 집단과 같은 특정 집단)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필자는 이 글에서 3번째 개념으로서 ‘사회적 기술’ 개념을 사용할 것인데, 특히 앞의 두 개념과 구분하기 위해 이 책에서 ‘사회기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사회기술에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영역들이 포함된다. 앞에서 언급한 관료제와 시장, 화폐 시스템을 비롯하여 말과 문자와 같은 언어 시스템, 활자문화와 인쇄기술 등도 사회기술로 볼 수 있다. 나아가 사회를 유지하고 관리하고 운영하기 위해 사용되는 기법이나 방법론, 기계나 장치, 시스템 등이 모두 사회기술에 포함될 수 있다. 아마도 어떤 분들은 필자가 시장, 화폐, 관료제를 사회기술의 일종이라고 분류한 것에 대해 궁금해하겠지만, 필자가 보기에 오히려 관료제와 시장, 화폐가 사회기술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리고 이 장치들을 사회기술로 해석할 때, 우리는 기존에 시장과 관료제, 화폐를 바라보던 시각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 장치들을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왜 블록체인이 이러한 기술들을 변형하거나 혁신하거나 대체하는 기술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사회기술의 맥락에서 ‘기술'을 바라볼 경우 기술만능주의나 기술무용론과 같은 시각과는 사뭇 다른 지평들이 열린다. 사회기술은 기술과 인간(인간사회)의 상호작용을 전제하고 있으며, 개인들의 상호작용 사이에서 사회기술이 작동한다. 사회기술은 창조의 영역이면서 동시에 싸움의 전장이기에, 그것은 기술 자체가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결정된다. 따라서 사회기술이라는 개념이 고려된다면 기술결정론 혹은 기술무용론, 기술로부터의 도피와 같은 주장 같은 것들은 자리잡을 공간이 없어진다. 이러한 주장은 사회기술이라는 영역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배제해야만 성립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극단적이고 편협한 시각이기 때문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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