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현상의 기원 1
트럼프가 취임하자 마자 문제가 복잡하다. 행정명령에 서명을 해서 중동에서 입하려던 사람들의 발이 묶었고 구글에서는 중동출신 직원들의 외국 출장도 안보낸다고 한다. 잘못하면 다시 들어오기 어려워질수 있다는 이유다. 법무장관 대리는 트럼프의 조치에 반대하다고 해임되었다. 때맞춰 동양인이나 소수인종에 대한 증오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하다. 물론 히틀러치하의 독일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질까? 인간들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바보들에 불과한가?
우연히 막스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글을 읽다보니 선동적 연설의 힘이 정치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막스베버는 영국의 경우를 지적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상황은 미국과 유사하다. 아니 대중 민주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경우는 많은 경우 그렇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데 베버는 "사람들은 오늘날과 같은 상태를 대중의 감정을 이용하는 것에 입각한 독재라고 부를 수 있다"라고 했다. 지금의 미국이 독재와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어찌 백년은 훌쩍 더 전인 영국의 상황이 지금의 미국과 유사하단 말인가?
지금 미국이 처한 문제는 명확하다. 국민들이 잘 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산층은 붕괴되고 있으며 부자는 더 잘살게 되었다. 중산층에서 하층민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미국을 둘러싸고 있다. 2007년 월가의 금융위기는 미국민들에게 충격을 가져댜 주었다. 흑인인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이도저도 안된다고 생각한 미국인들이 극단적인 방법을 써 본 것이다.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가하는 방식은 문화권마다 다 다르다. 미국은 새로운 대통령을 선택했다. 과거와 전혀다른 새로운 대통령이 자신들앞에 놓여 있는 위기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의 이러한 위기 극복 방법은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1929년 대공황은 루즈벨트를 통해서 해결했다. 한국전쟁이후 국제정치적 위기는 아이젠하워를 통해서 해결했다. 미국이 흑인인 오바마를 선택한 것은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주류 백인이 아닌 흑인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이다.
오바마는 성공적으로 대통령직을 마치고 퇴임했다. 후임인 트럼프가 보여주고 있는 문제를 보면 오바마는 분명 성공적이다. 그러나 과연 오바마는 성공했는가. 그는 젠틀하고 우아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아주 무난한 대통령이었다. .사려깊고 훌륭한 인품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가 지금 미국이 짊어지고 있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미국은 빈부격차가 극심해지고 있으며 미국의 안정성은 훼손되고 있다. 오바마는 오바마케어라는 건강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미국민들이 짊어지고 있는 부의 편중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아니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
사실 트럼프 현상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오바마의 무력함인지도 모른다. 대외정책에서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미국내이 문제는 여전히 증폭되고 있었다. 이번 미국 대선에 있어서 특이한 점은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가 관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극우에 해당된다면 버니 샌더스는 극좌에 해당된다. 왜 양극단이 주목을 받았을까?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가 각광을 받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미국인들이 기존의 방식으로는 자신들 앞에 놓여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양극단에 있는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가 각광을 받은 것은 미국의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미국인들은 양 극단중에서 좌파가 아닌 우파 극단주의를 선택했다. 그것은 충분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레드 콤플렉스가 가득차 있는 미국에서 사회주의자인 샌더스를 선택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극단은 서로 닮아 있는 법이다. 버니 샌더스와 트럼프는 현실문제를 진단함에 있어서 엄청난 싱크로율을 보여주었다. 두사람 모두 보통 미국인들의 삶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제시하고 있는 정책은 놀랄만큼 유사하다. 그러나 이런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방법은 달랐다. 그것이 샌더스와 트럼프의 차이였다. 샌더스는 부의 집중을 해소하기 위해 부자들에게 부담을 지우겠다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의 탐욕을 억제하고 복지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샌더스의 방법은 매우 고전적이다. 지금 미국의 문제는 부의 집중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고치면 된다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하다. 문제는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샌더스와 달리 트럼프는 문제를 살짝 비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