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궁극적인 역할은 최종 고용자(employer of the last resort)이다

in #kr7 years ago (edited)

국가의 궁극적인 역할은 최종 고용자이다
: <균형재정론은 틀렸다> 서평 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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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의 구성

이번에는 시간과 분량의 압박으로 쓰지 못한 랜덜 래이의 저작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서평을 써보고자 합니다. 600페이지에 가까운 만만치 않은 분량이지만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경제야 이 바보야!’라는 슬로건을 여전히 믿는 사람들, 특히 복지 문제뿐만 아니라 일자리 문제에 대한 국가의 직접적 개입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한 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다소 선정적으로 들리는 국역본 제목과 달리 원제는 “MMT: Modern Monetary Theory”라는 다소 건조한 제목입니다. 제목대로 이 책이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화폐론입니다. 이 책은 이른바 ‘현대화폐이론’에서 출발하며 이에 기반하여 현실경제에서의 국가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풀어냅니다. 앞질러 말하자면 이 책의 저자는 국가의 역할은 완전고용에 있으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확고한 케인스주의자인 것이지요.

하지만 래이를 비롯해 래이가 동류라고 언급하는 여러 학자들(ex와인 고들리)은 전통적인 케인지언과 많은 부분에서 다릅니다. 이들은 거시경제학 교과서의 전통적인 IS-LM 곡선을 거부하며 (같은 이야기이지만) 경제원론에서 지겹게 들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분리하는 관점을 완전히 거부합니다. 이들의 논의를 정책적 측면에서 요약하자면 국가의 역할은 완전고용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지출을 행하는 ‘동시에’ 자신의 발권력을 이용하여 그러한 지출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유기적/기능적 결합을 요구하는 주장의 이론적 근거는 이들이 신봉하는 독특한 화폐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래이는 이러한 화폐론을 포괄하여 책 제목대로 MMT라고 명명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야말로 현대화폐제도의 본질과 작동방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자신만만한 태도를 취합니다.

실제로는 과연 어떠한지에 대한 궁극적인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고 저는 그 논의의 얼개와 몇 가지 흥미로운 쟁점들을 제 나름대로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1. 화폐는 부채이며, 조세에 의해 유통된다!

먼저 저자는 화폐의 본질을 교환의 매개로 사용되는 이런 저런 사물과 구분해서 생각하길 권합니다. 과거 마르크스가 권고한대로 우리는 현실 속 교환의 매개수단으로 사용되는 이런 저런 대상들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며 화폐의 본질을 그 추상적인 형태 속에서 사고해야 합니다. 이때 화폐의 본질은 ‘빚을 갚겠다는 약속’, 즉 ‘채무증서’입니다. 대표적인 것은 은행예금입니다. 은행예금은 인출요구시 현금을 지불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은행이 발행한 채무증서를 신용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수령하는 은행예금을 지불수단으로 인정합니다.

또한 비은행 금융기관은 이러한 은행예금을 기반으로 또 다른 각종 증권화된 형태의 신용수단들을 창조해냅니다. 결국 화폐시스템이란 중앙은행의 본원통화를 정점으로 한 부채 피라미드라고 해도 좋습니다. 예컨대 비은행이 발행한 차용증서는 은행예금과 태환되고 이 은행예금은 다시 한번 법정화폐와 태환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본원통화라고 이야기되는 현금과 지불준비금 등의 법정화폐 역시 중앙은행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국가가 발행한 '지불약속' 내지는 '채무증서'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의아할 수 있습니다. 국채도 아닌 그냥 국가가 발행한 법정화폐는 이제 더 이상 금으로 태환되지도 않는데 그것이 도대체 무엇에 대한 지불약속이란 말일까? 그리고 애초에 태환되지도 않는 화폐에 왜 경제주체들은 비트코인이나 금보다 더 큰 신뢰를 부여하는 것일까?

그 비밀은 바로 조세제도에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국가는 국민에 대한 조세 납부의무를 강제함으로써 법정화폐가 현실경제에 통용되도록 하고 심지어 모든 일상의 금융적 부채와 자산을 이 법정화폐를 단위로 측정되도록 만듭니다. 결국 국가가 발행한 법정화폐는 ‘이 화폐를 조세지불 수단으로 인정하겠다’는 약속에 다름 아닙니다. 법정화폐는 궁극적으로 조세의무를 탕감해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은 죽음과 세금이라지요. 언젠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사람들은 법정화폐를 자연스레 요구하게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이를 수요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일상의 거래에서 법정화폐를 서로 지불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국가가 이러한 법정화폐를 유통시킴으로써 자신의 발권력을 이용하여 원하는 만큼의 민간자원을 공공의 목적으로 전용할 수 있게 됩니다. 평생 동안 세금을 낼 의무가 있는 민은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를 얼마든지 받아들일 용의가 있으니까요.

조금은 조삼모사 같은 너무한 처사라고도 생각이 드는군요. 아무튼 좋든 싫든 국가는 자신의 발권력을 이용해 항상 필요한 자원을 얻으며, 어쨌든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MMT 이론은 말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랜덜 래이는 조세를 정부지출의 재원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물론 재정적자에 대한 과도한 공포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재정적자를 발생시킨 지출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냐로 문제의 초점을 이동시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앞서 보았듯이 조세의 기능은 법정화폐를 유통시키는 데 있지 지출의 사전적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정부지출은 정부 자신이 발행한 통화로 이뤄지기 때문에 정부는 정의상 필요한 지출을 할 여력이 항상 있습니다. 정부가 과도한 차입으로 빚을 졌다고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지만 애초에 정부가 자신이 발행한 자국통화를 차입했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이상한 표현입니다. 또한 국채는 정부가 통화를 차입하는 수단이 아니라 단지 이자율을 조절하기 위한 정책수단일 뿐입니다. 정부가 자국통화를 발행하고 이를 통해 조세를 거두는 한 정부는 절대로 지급불능 사태에 봉착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지급불능 사태에 봉착하는 것은 과거 아르헨티나나 19세기 금본위제처럼 자국통화를 외환이나 금 따위와 고정된 환율로 태환하겠다는 어리석은 약속을 할 때 뿐입니다. 기타 등등...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로서는 너무나 타당한 말인 것 같습니다.

  1. 내생화폐론과 부문별 균형 접근

먼저 정부가 발행하는 통화는 결국 국내외의 거래에 필요한 화폐수요를 공급하도록 되어 있다는 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통화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법정통화는 통화당국에 의해 자의적이고 재량적으로 공급되는 변수가 아닙니다. 현실의 화폐공급은 멘큐의 비유처럼 공중에 핼리콥터에서 지폐를 살포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현실의 화폐공급은 화폐수요에 탄력적으로 반응합니다. 또한 언제나 그렇듯이 이러한 화폐수요에 대응한 화폐공급은 무에서 창조(creatio ex nihilo)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멘큐의 비유처럼 화폐공급을 늘리기 위해서 현물적인 지폐와 헬리콥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중앙은행이 통화공급을 늘리는 방식은 사실 이보다 간단합니다. 중앙은행 직원이 컴퓨터 엔터 키만 치면 그 순간 중앙은행 계좌에 예치된 예금인 지불준비금을 얼마든지 늘릴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따가 보겠지만 이러한 국가의 발권력 혹은 화폐창조능력을 이용하여 비정부 부문의 화폐수요를 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정부부채'입니다. 민간부문에만 한정해 보았을 때 민간기업이나 가계의 화폐수요를 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은행대출과 이로 인해 발생한 은행부채(예금)라는 사실과 비슷합니다. 이처럼 MMT나 그것이 기반한 부문별 균형접근은 바로 이러한 '내생화폐론'에서 출발합니다.

자, 내생화폐론이 무엇인지 얼추 이해가 됐으리라 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랜덜 래이는 이른바 부문별 균형접근이라는 것을 제안합니다. 이 제안 배후에 자리 잡는 아이디어는 경제 전체의 스톡과 플로우를 회계적으로 일관되게 측정하자는 것으로서 이것은 와인 고들리의 이른바 '스톡-플로우 일관접근'(stock-flow consistent approach)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생소한 용어라고 해서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 원리는 지극히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스톡-플로우 일관접근이든 부문별 균형접근이든 쉽게 말하면 경제전체를 통틀어 보았을 때 각 경제부문의 수입과 지출의 차이는 상쇄되어서 없어진다는 회계적인 원리에 기반합니다. 이 원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래의 식입니다. 이는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성립한다는 의미에서 회계 항등식입니다.

국내 정부부문 수지 + 국내 민간부문 수지 + 해외부문 수지=0

이처럼 우리가 정부의 재정적자를 다른 부문, 예컨대 국내 민간부문이나 해외부문의 재정수지와 연관지어 이해해본다면 재정적자 자체에 대해서 호들갑을 떠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내 소비자들이 높은 저축성향으로 인해 자국화폐로 표시된 금융자산을 축적하려고 하고 또 동시에 무역적자가 발생하여 자국화폐가 유출되고 궁극적으로 해외 투자자들의 손에 쥐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렇다면 정부부문에서는 정확히 그만큼의 부채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본 부문별 균형접근 항등식을 재배치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국내 정부부문 수지 = +국내 민간부문 수지 + 해외부문 수지(=무역적자)

미국의 경우가 위 식에 전형적으로 부합하는 사례입니다.

국내저축을 통해서든 무역적자를 통해서든 자국화폐를 수요하는 국내외의 경제주체들을 위해 정부는 그만큼의 화폐를 공급해야 합니다. 대개의 화폐공급은 중앙은행이 지준금을 시중은행에 공급하는 방식을 통합니다. 한편 중앙은행이 공급한 초과지준금은 금리를 인하하는 압력을 낳으므로 중앙은행은 목표이자율(기준금리)을 유지하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국채를 판매해서 초과지준금을 재흡수합니다. 대략 이런 메커니즘으로 국내에 초과저축이 존재하고 해외부문에 무역적자가 발생하면 정부는 반드시 그만큼의 부채(국채발행 잔액)를 지게 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정부가 국채를 많이 발행한 것은 정부가 많이 차입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단지 비정부부문이 필요로 하는 화폐를 많이 공급했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이렇게 본다면 정부부채 자체가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의 경우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위의 경우에서 만일 정부가 부채를 줄이고 싶다면 경제의 소비성향을 늘려 저축을 줄이든가 국내 재화 위주의 수요를 늘려 무역적자를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정부의 예산이라는 것은 애초에 경기역행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예를 들어 불황기에는 정부가 사회보장지출과 경기부양을 위해 적자를 늘리게 됩니다. 우리는 절대 그것을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어려운 시기에 긴축재정을 정부에 강제한다면 역으로 민간이야말로 정부 대신 부채를 떠안고 연쇄도산의 위험에 처할 것입니다. 이때 민간에서 발생한 부실채권을 구입하고 부실기업과 은행을 구제하려면 결국 정부는 또 다시 부채를 안게 됩니다!

  1. 최종 고용자(lender of the last resort)로서의 국가

앞서 우리는 정부가 조세를 강제할 권력에 기반하여 자신이 정한 화폐를 유통시킨다는 것, 정부가 자신의 발권력을 이용하여 필요한 지출을 행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우리는 정부의 재정적자가 다른 부문의 재정수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더 나아가 지금까지의 논점에 기반하여 우리는 현실경제에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래이는 과거 뉴딜시절의 이른바 ‘기능적 재정정책’으로 복귀할 것을 요구합니다. 국가는 완전고용에 도달하기 위한 수준의 재정지출을 행해야 하며 절대로 균형재정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플레이션만 유발시키지 않는다면 (불태환 자국화폐로 표시된) 정부부채 규모가 얼마나 되든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때 재정수지의 세입항목을 이루는 조세는 균형재정을 추구하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경기조절의 수단에 가깝습니다. 경기가 과열되면 높은 수준의 조세를 거두어 화폐를 회수하고 경제를 안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반대로 경기가 악화되면 세금을 줄여야 합니다. 이 점에서 MMT의 주장은 보수파가 주장하는 감세론과 일면 크게 상이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래이는 피케티가 주장한 누진세, 자산세, 상속세 등등을 통한 부와 소득의 재분배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조세를 통한 재분배론은 국가가 긴급하게 행해야 할 재정지출을 오히려 가로막는 알리바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나아가 래이는 실제로 조세 자체가 얼마나 부와 소득의 재분배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확실히 국가의 발권능력을 강조하고 조세의 역할을 제한적인 영역에 국한하는 MMT의 관점에서 볼 때 정책의 초점은 이동되어야 합니다. '누구에게 얼마만큼을 세금으로 거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얼마만큼 지출하느냐'로 말입니다. 그리고 래이는 실제 부와 소득의 재분배의 관건도 바로 이 재정지출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우선 '어디에' 지출해야 할까요. 이에 대답하기 전에 우리는 MMT 이론이 국가가 사실상의 최종대부자(lender of the last resort)의 역할을 자임한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이론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늘어난 정부지출 때문이건 민간의 거래적 수요 때문이건 민간은행의 파산으로 인한 구제금융 때문이건 국가는 결국 자신의 발권력을 이용해서 필요한 화폐를 공급하고 이로 인해 부채를 집니다. 하지만 이왕 부채를 질거라면 국가가 지닌 발권력을 가장 사회적으로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은 역시나 '고용'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것입니다.

안정적 고용은 그 자체로 소득재분배의 기능을 수행하고 사회보험 및 사회안전망의 역할도 할뿐만 아니라 노동을 통한 사회적 통합마저 이룬다는 점에서 만능의 정책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실제로 고용이 이뤄지면 소득이 발생할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보험이 따라붙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개별적인 사회보장정책, 사회통합정책, 소득분배정책을 종합하는 것이 고용정책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래이는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질 좋은 일자리이지 기본소득이 아니라고 잘라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국 일을 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물질적 부를 향유한다고 생각한다면 이 견해는 확실히 타당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때 래이가 제출하는 주장은 국가가 이제는 최종 고용자(employer of the last resort)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래이는 과거처럼 경기부양을 통한 간접적인 고용창출 정책은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부자들은 결국 간접적인 재정지출의 전달경로가 어디인지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에 결국 이러한 재정지출의 떡고물을 중간에 착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원래 건설경기 부양을 의도했던 4대강 사업을 예를 들어 생각해보면 쉬울 것 같습니다.

결국 국가가 펼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재정지출 정책은 정부 스스로가 실업자들을 '직접' 고용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최종 고용자'의 의미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메리트와 정당성이 있습니다.

우선 정부의 직접고용은 점차 점증하는 사회적 서비스 수요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물질적인 노동생산성이 발달할수록 시장이 적절히 제공하지 못하는 육아서비스, 노인캐어, 의료서비스, 방과후 학습 등 각종 질 좋은 사회적 돌봄노동 및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더더욱 늘어나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고용과 직업훈련 제공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내친김에 말하자면 이는 제조업 등 물질적 생산영역에서 발생하는 기술진보적 실업을 흡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두번째로 사회적 통합의 기초는 안정적인 일자리 제공입니다. 래이의 논의에 나오지 않지만 나름 응용하자면, 남녀평등 사회를 이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성을 노동시장에 통합하는 것이며 노동시장이 여전히 여성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면 여성을 주류사회에 통합하는 궁극적인 지름길은 여성 실업자와 경력단절자를 국가가 의무적으로 고용하는 것입니다. 유사한 사례로, 실제로 과거 마틴 루터 킹 목사도 미국 내의 인종통합을 위해서는 흑인 커뮤니티를 정부의 각종 사회적 고용 프로그램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주장한 바 있습니다. 킹 목사의 주장은 현실적인 실현가능성(feasibility)을 떠나 지금도 도덕적인 호소력이 있습니다.

세번째로 최저임금제나 생활임금제 등 각종 소득재분배 정책을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지자체가 정한 생활임금을 민간의 일부 영역이 흡수할 여력이 없다면 국가가 직접 실업자들을 고용해서 생활임금제를 현실화해야 합니다.

네번째로 임금수준과 물가수준에 대한 안정적인 관리가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우선 노동은 대부분의 상품 및 재화에 투입되는 생산요소입니다. 따라서 국가가 실업자에 대한 의무고용제를 통해 사회적으로 용인 가능한 최저한도의 임금수준을 통제하는 능력을 갖게 되면, 국가가 사실상 인플레이션에 대한 통제력도 가지게 됩니다. 한편 여전히 사람들은 국가가 고용을 직접 보장해주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합니다만 실제로는 고용에 대한 직접적인 재정지출이야말로 덜 인플레이션 유발적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가령 인플레이션은 화폐의 과다한 발행 때문이 아니라(이는 정의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보았습니다) 수요에 못 미치는 생산능력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통화주의자들이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는 짐바브웨나 바이마르 공화국의 하이퍼 인플레이션도 화폐의 과다한 발행 자체가 원인이 아니라 패전과 내전으로 인한 생산능력의 파괴가 원인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국가가 사회적으로 필요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고용창출에 지출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 전체적인 공급능력을 높이고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에게 '최종 고용자'의 역할을 요구할 때 여전히 남는 의문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거대한 고용 프로그램을 가동시킬 역량이 있느냐는 데 있겠습니다. 가령 전국민 완전고용 프로젝트에 대한 정부지출이 중간에 부정부패로 착복된다면 어떨가요? 우리 사회가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를 가동시킬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바로 여기서 어쩌면 좌파와 우파의 신념이 갈라지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 래이는 고용프로그램을 지방정부나 아닌 협동조합과 시민단체 등에 위탁하는 방법 등으로 이 문제를 충분히 돌파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았습니다.

  1. 위기를 부추긴 잘못된 통념

한편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의 재정위기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또 한 가지의 수확이라 하겠습니다.

우선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해 래이는 이왕 정부부채를 늘릴 거라면 부패하고 실패한 은행을 구제하는 것보다 생산적인 기업들을 구제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데 더 많은 재정이 투여되었어야 했다고 아쉬워 합니다. 이것은 제 생각과도, 특히 대부분의 좌파들의 생각과도 일치하는 대목이라 생각합니다.

그 다음으로 그리스, 스페인, 아일랜드, 키프로스 등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재정위기에 대해서도 저자는 애초에 유로존의 설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통렬하게 지적합니다. 유로존 국가들은 말하자면 통화적인 주권이 없는 국가들입니다. 가령 그리스 위기의 본질은 그리스의 방만한 재정지출도 공무원 복지도 아닙니다. 애초에 그리스에게 통화주권이 있었다면 그리스의 정부부채는 심각한 문제로 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럽통합을 위해 개별적인 국가들의 통화적인 주권을 박탈했다면 유럽은 산업구조상 무역적자를 겪을 수 밖에 없는 주변부 국가들에게 더 관대한 구제금융을 제공하거나 그들이 재정지출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주었어야 합니다.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박탈당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재정위기에 취약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U는 거시경제적 불안정성에 쉽게 노출되는 소규모 주변국가들에 그에 상응하는 안정장치를 주지 못합니다. 저자는 EU가 오히려 전유럽의 안정적인 고용을 위한 지출을 지지하는 조직체로 거듭나지 않으면 EU는 해체 일로를 겪을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2015년에 제시되었던 이 예견은 2017년 영국의 브렉시트로 부분적으로 현실화되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저는 이 진단에 상당부분 공감이 갑니다. 저는 유럽의 극우정당 약진과 미국의 트럼프 당선은 상당 부분 국가가 경제적으로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노동시장은 사회통합의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그러나 국가가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자리뿐만 아니라 사회 인프라와 각종 사회적 부를 둘러싼 계층 간의 갈등 및 증오가 더욱 심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 나가며

주마간산 격으로 진행한 서평을 급하게 끝맺습니다. 다시 강조하자면, '사회문제의 근본은 결국 경제문제'라고 믿는 분들은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더 나아가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국가권력을 통한 직접적인 해결책이 주효하다'고 믿는 분들은 반드시 읽어보기를 강권합니다.

내친 김에 말하면 이 책은 좌파 내부에서도 여러 가지 논쟁점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누진적 소득과세와 자본세가 더 유효한 방향인지, 아니면 세입 자체에 연연하지 않는 보다 더 공격적인 정부지출이 더 유효한 방향인지가 한 가지 쟁점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은 소득주도성장, 노동시간단축, 기본소득론 등 최근 진보진영에서 제기된 경제적 의제에 대해서 일정부분 이의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지적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단적으로 말해 케인스주의적인 완전고용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최근 진보진영에서 제기된 상당수 의제들과 상당한 거리를 둡니다. 예컨대 노동시장단축과 소득주도성장정책은 완전고용 목표와 모순되거나 혹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참고로 저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질 좋은 일자리이지 기본소득 따위가 아니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상당히 공감합니다. 다만 소득주도성장과 노동시간 단축에 찬동하는 저로서는 이것이 완전고용이라는 정책목표와 괴리된다는 저자의 분석에 대해 몇 가지 이의가 있습니다. 다만 분량상 이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뤄두고자 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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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 어렵내요 솔직히 조금 읽다가 포기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금 더 끈질기게 시도해보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죄송합니다. 오늘은 잠이 와서 내일 다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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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중반에 있는 내용이
"누구에게 얼마를 걷느냐가 아닌, 누구에게 얼마를 지출하느냐" 이 부분 현재 대한민국의 창업 실정에 너무 어울리네요..

조세정책을 비롯하여 기업을 하기 안좋은 나라라는 것이 공공연히 밝혀지는 실정인데 오히려 세금을 더 걷어 기업들이 한, 둘 떠나는 상황이니까요. 청년을 지원하여 청년 벤처를 살리고 창업률을 높인다는 정책을 하고, 제대로된 지원의 부재는 물론 기업하기 최악의 환경을 동시에 만들어주니 대한민국 창업률이 이 지경이 된 듯 합니다.. 기업들이 떠나가는 건 물론이구요..ㅠㅠ

조금 어려운 내용이라 솔직히 완전히 읽지는 못했지만, 차츰 배워나가면서 나중에 다시 읽기 위해 리스팀도 해놓을께요..ㅎㅎ 팔로우/보팅도 남기고 갑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