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 - 그냥 못 만들었다.(스포 가득)
그렇게 반공스럽진 않았다. 북한의 악행은 생각보다 평범했고, 맥아더의 병신같은 명언퍼레이드만 아니면 한국측 입장도 크게 오글거리지는 않았다. 아니 생각해보면 이정도 반공 소스는 한국전쟁 영화에서 넣어줘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람들을 공개처형하거나 반동분자의 시체를 걸어둔 것도 실제 벌어진 일로 알고있는데.
<고지전>이라는 끝내주는 영화에 비교하면 이념을 다루는 태도가 올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7~80년대 영화 수준으로의 퇴보‘라는 말은 다소 심한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영화가 잘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반공소스 말고도 이 영화는 깔 거리가 많다.
초반은 좋았다. 인천에 잠입한 장학수일행과 림계진 일행간의 심리전은 클로즈업과 음악을 통해 긴장감을 뽑아낸다. 미군 진영과 북한 사령부를 교차로 보여주며 인천 상륙 작전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도 좋았다. 좋던 느낌이 망가지는 것은 ‘왜 하필 인천 상륙이냐’란 말에 맥아더 장군이 ‘전쟁 후 만난 소년병에게 국가를 찾아주기 위해서’란 이야기를 할 때부터다. 그 일화는 ‘왜 인천이냐’란 질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인천상륙작전의 타당성을 논하는 자리서 그 말을 할 이유도 없다. 그저 감동을 위해 억지로 구겨넣은 씬인거다. 구시대적인 회상 씬과 감동유도 음악은 이 순간을 더욱 유치하게 만든다.
이 씬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게 아니다. 영화는 꾸준히 우리를 울리려고 노력하는데, 그 울리는 방법이 너무나 뻔하고 어설프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거다. 영화가 신파로 가기 위해서는 감정선을 착실히 쌓아야 한다. 그런데 맥아더의 회상은 뜬금없이 나오고, 장학수와 노모의 관계 등은 이전에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천상륙작전>의 신파는 뜬금없이 이루어진다. 갑자기 배경음악이 깔리고, 상황이 묘사된다. 그러다보니 공감은 안되고 스토리가 뜬금없이 전개된다는 의아함만 가득해진다.
초반 첩보전의 상황 설정은 꽤나 흥미롭다. 장학수와 림계진은 여러 면에서 대척점에 놓여있다. 일반장교와 그를 감시하기 위한 정치장교, 정보를 지켜야하는 진영과 정보를 빼내야하는 진영, 골수 공산주의자와 자유주의자(스러운 사상) 등 둘의 관계는 꽤나 복합적이다. 초반부에 발생하는 여러번의 충돌을 보면서, 나는 이들의 관계가 꽤나 오랜 시간동안 정교하게 묘사될 줄 알았다. 영화는 그러지 않는다. 장학수 진영의 공작은 너무나 허술했고, 그 결과 그들이 시도한 정보유출은 바로 발각되어버린다. 흥미로운 첩보전으로 그릴 수 있었음에도 너무나 빨리 끝내버렸다.
뭐 첩보전이 끝나도 좋다. 어차피 이 영화는 인천상륙작전이 클라이막스고, 목표했던 기뢰 위치는 알아내지 못했으니깐. 북한군 역시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니 임무는 더 어려워질거고, 주인공은 더 고생하겠지. 그런데 영화가 시간이 갈수록 상태가 안 좋아진다. 북한군은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장학수 일행은 반대급부로 더 강력해진다. ‘의사로 위장해 류장춘을 빼돌린다’라는 계획은 얼추 일리가 있으나, 그 방법이 들어가서 침대를 들고 튀는 거는 좀 아니지 않냐 -_- 그런데 이게 먹힌다. 장학수와 그 일행들은 북한군이 드글드글한 병원을 뚫고, 인천을 점령중인 북한군 부대의 공격도 버티고 빠져나간다.
클라이막스인 월미도 씬은 이 비현실적인 파워밸런스의 정점을 찍는다. 연합군의 상륙을 대비해 ‘연합군의 상륙을 저지할 수 있을 정도’의 방어시설을 갖춘 월미도 해안포부대를 단 3명이서 파괴해버린다. 이 순간 영화는 역사의 영역에서 벗어나 신화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이게 말이 되냐고 ㅡㅡ
역사 속 인천상륙작전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연합군은 성공리에 인천에 상륙해 전황을 바꿔놓았다. 월미도 전투 역시 영화와 달리 미군 부대의 상륙으로 성공리에 끝났다. 역사대로 가면 영화의 맥이 빠지니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할 전투를 억지로 만드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럴거면 좀 설득이 가게 만들었어야지.. 아니면 그냥 첩보전에 더 많은 비중을 두던가. 영화는 초반의 좋았던 느낌을 스스로 깨끗이 지워버렸다.
여자 주인공인 한채선은 아무런 역할이 없다. 북에서 남으로 전향하는 감정변화는 설명이 부족하고, 그러다보니 장학수와의 로맨스도 어설프게 진행된다. 심지어 악역인 림계진의 캐릭터마저 붕괴시킨다. ‘이념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외치는 그가 왜 그렇게 한채선에게는 관대한가. 영화는 그가 한채선을 좋아하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주지만, 그렇게 되면 사랑이 이념보다 더 강력하다고 스스로 말하는 게 되는거잖아. 한채선과 관련한 모든 것이 어설프고, 그녀가 나오는 모든 씬이 무의미하다. 여주 만들 시간에 첩보전을 더 찍었어야했어..
첩보영화와 전쟁영화를 너무 어중띠게 섞인 영화다. 해도를 가지고 오는 첩보임무는 너무 빠르고 허무하게 해소되며, 전쟁씬은 주인공들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적인 활약으로 인해 재미가 없다. 상륙작전의 거대한 스케일이라도 제대로 보여줬으면 좋았으련만, 영화는 군인들이 상륙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첩보전은 너무 짧았고, 전투씬은 어이가 없었고, 전쟁씬은 존재하지 않았다. 초반부의 간지는 어디가고, 영화는 끝으로 갈수록 점점 나락으로 떨어진다. 반공요소 때문에 평이 안좋은게 아니다. 그냥 이건 못 만든 영화다.
"이번 전쟁이 내 마지막 임무가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