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정> - 예상못한 수확(스포가득)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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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는 있었으나 예상과는 달랐다. 내가 기대한 <밀정>은 이중간첩의 딜레마와 이를 활용한 긴장감과 쫄깃함을 가득 담은 첩보물이었는데, 생각보다 영화는 밋밋했다. 대신 친일파의 개심 이야기가 가득했지. 부실하고 뻔한 스토리를 메우는 것은 강렬한 시청각적 이미지다. 칙칙하게 가라앉은 색감의 화면, 공간을 활용한 연출, 적재적소에 깔리는 효과음은 김지운의 영화답게 인상적이다.

영화 마지막, 암살 과정에 깔리는 음악은 역설적이게도 긴장감 하나 없는 클래식이다. 친일파 추동성이 가위에 찔려죽고 기념식장에 설치한 폭탄이 터지고, 그걸 축복하듯 클래식은 더 크게 흘러나온다. 확실히 이 감독은 스타일리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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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원이 주인공인 에스피오나지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긴장감을 끌어내느냐’일거다. 나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데 상대는 모른다. 이중간첩은 더 복잡해진다. 양쪽 다 ‘나’를 우리 팀으로 알기에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약간의 실수만으로도 모두에게 불신을 살 수 있는 위치기에 이중간첩은 두 진영 사이서 더 위태로운 줄타기를 한다. 이중간첩의 행동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긴장감, 진영 간의 만남에서 애매해지는 포지션의 쫄깃함 등 이중간첩이란 소재는 잘만 다룰 수 있다면 너무나 매력적이다.

밀정에는 그런 심리전이 없다. 이정출의 행동은 너무나 어설퍼서 양 쪽의 신뢰를 사기 힘들다. 그런데 의열단은 무슨 근거인지는 몰라도 변절자였던 이정출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낸다. 일본 측 인물인 하시모토 역시 그가 밀정인 것을 알면서도(대놓고 이정출을 식당칸으로 보내고, 그와 대화하는 김우진을 잡아넣었다.) 그를 변절자로 몰아세우지 않는다. 양측 모두가 이정출을 적대하지 않으니, 이중간첩의 쫄깃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열차 식당, 이정출을 가운데 두고 하시모토와 김우진이 대치한다. 그 사이에 놓인 이정출은 어느 진영도 쉽게 택하지 못하는 존재다. 열차칸 시퀀스는 이중간첩으로써의 이정출의 위치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하시모토는 이정출을 무시한 채 대놓고 김우진을 심문하고, 김우진 역시 그를 무시해버린다. 영화는 이정출의 심리 변화를 묘사할 뿐, 그를 활용하지 않는다.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첩보가 아닌 의열단 진영과 일본 경찰의 대립이다. 좁은 열차 안에서 일본 경찰과 의열단 멤버들이 교차되는 순간은 확실히 쫄깃하다. 그러나 이정출은 훼방만 놓을 뿐 그 대립에 개입하지 못한다.

영화는 대신 기차 안에서의 의열단과 일본 경찰간의 충돌, 내부 변절자 에피소드 등을 통해 부족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전자는 단편적이고, 후자는 너무나 떡밥을 적게 던졌다. 신성록이 밀정이라면, 그에 대한 복선을 어느 정도 깔아두어야하지 않았을까? 변절자 색출과 처단은 너무나 깔끔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다보니 별다른 위험도, 긴장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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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말보다 이미지로 캐릭터의 심리를 그려낸다. 이 과정에서 감독의 장점이 제대로 표출된다. 이정출의 내면 변화는 특정 사건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자주 그를 홀로 남기고 고민하는 그를 관조적으로 바라본다. 조선 총독부에서 홀로 서있는 모습을 길게 잡아서 그가 총독부 내에서도 고독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그는 꾸준히 무언가를 바라본다. 자신을 홀대하는 히가시를 바라보고, 자신에게 신뢰를 표하는 정채산을 바라본다. 동시에 자신을 자주 바라본다. 영화는 거울을 통해 자주 그를 비춤으로써, 일제와 독립군 사이서 고민하는 이정출을 그려낸다.

영화는 이미지로 그의 심리 상황을 보여주나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영화 후반부 ‘자신은 일본 경찰 소속이다’라며 구명을 요청하는 씬은 그의 심리를 어떻게 파악했느냐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일본군에 넘어가 독립군을 고문하는 이정출이 본심이라 생각한다면, 그 장면은 일본에 붙어 살아남고자 애걸하는 친일파의 추태로 보인다. 그러나 김우진의 도움 요청에 위험을 무릎쓰고 찾아간 이정출이 더 크게 와닿았다면, 그 장면은 동지들을 배신해야하는 죄책감으로 미안해하는 씬이 된다. 포커스를 이중간첩과 첩보물이 아닌 경계에 선 개인의 심리에 맞춘다면, <밀정>은 나쁘지 않은 영화다. 그 설명이 불친절하긴 하나 아예 못 읽어낼 수준은 아니다.

송강호의 연기력은 막연하게 이미지로 설명되는 ‘이정출’이란 캐릭터에 혼을 불어넣는다. 하시모토의 등장으로 인한 불안감, ‘밀정이 되달라’는 정채산의 제안에 대한 고민, 연계순의 죽음에 느끼는 죄책감 등 다양한 심리를 자연스럽게 표현해냈다. 공유와 이병헌, 엄태구 등 많은 배우들의 좋은 연기는 송강호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특히 난 공유의 연기를 보면서 <베테랑>의 유해진이 떠오르더라고. 유아인의 똘끼를 유해진이 잘 받쳐줬듯이, 공유 역시 송강호와 합을 맞춰 좋은 보조가 되어준다. <부산행>보다 <밀정>의 연기가 더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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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이정출의 심리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곱씹어보니 그의 선택이 크게 이상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밀정>의 스토리는 불친절하지만, 장면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부실한 부분을 얼추 메우는데 성공했다. 되돌아보면 영화에는 정채산과의 오랜 대화나 김장옥의 발가락 등 많은 면에서 이정출의 의열단 행보에 대한 복선이 깔려있다.(다만 결론이 나올 때까지 복선인지 맥거핀인지 모르기에 영화를 보는 동안은 끝없이 그의 행동에 의심을 갖게 만들었을 뿐이다.) 경무국의 친일파에서 의열단의 테러리스트로 변해가는 그의 행보는 그럭저럭 자연스럽다.

영화 속 독립 운동은 초라하다. 일제의 탄압에 밀려 상해로 도피한 상태고, 작전을 수행하는 인력도 소수에 불과하다. 얼굴을 지지는 고문을 당하고, 배신하지 않기 위해서는 혀를 끊는 희생도 각오해야 한다. 그 어려운 길을 변절자 이정출은 선택했다. 실제 역사도 그랬을거다. 독립 운동은 절대적 열세에서 벌이는 행위였을 거고, 독립 투사들은 완벽한 존재들이 아니기에 위험은 엄청났다. 그럼에도 그들은 목숨을 걸고 독립을 위해 위험한 도박을 끝없이 감행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행위는 더더욱 숭고하고 위대하다. <밀정>은 첩보물로 생각하면 실망스러운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를 ‘이정출‘이란 개인의 변화를 다룬 휴먼드라마라 생각한다면, 영화 속 행보가 실제 역사와 결합되며 우리에게 충분히 감동적이고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든다. 액션 가득한 첩보물을 볼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진중한 영화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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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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