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영화] 안도 타다오(Samurai Architect Tadao Ando)

in #kr6 years ago


안도타다오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국내에 상영된다고 했을 때,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내에서 건축에 관심있는 사람은 최소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며, 건축가로서 일반 대중에게까지 인지도를 갖춘 스타는 전세계적으로도 몇 명 없을 텐데, 안도 타다오는 그 중 한 명이다. 당연히 그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있다고 하면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면 본 영화 자체는 엉망이다. 안도타다오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서 딱히 새로운 것을 얻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연출도 엉망이며, 그냥 그의 작품을 나열하며 관련 영상을 보여줄 뿐이다.

다큐멘터리로서 유일하게 의의를 가지는 건, 안도타다오 본인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 그 관계자분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 뿐이다. 전달방식과 콘텐츠 면에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다큐멘터리 영화다.


내가 안도타다오의 이름을 처음 알게된 것은 2008년이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회사는 사무실 인테리어를 리뉴얼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책임자가 나였다. 그동안 오래 함께 일해왔던 인테리어 회사의 Chief architect가 제안했던 것이 '노출 콘크리트'였다. 그 당시 그게 가장 Hot한 Trend라며 그것을 도전적으로 다른 외국계 회사들보다 먼저 도입해보자고 제안했다. 당연히 내 첫 반응은 "그게 뭔데요?" 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노출콘크리트 공법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알게된 이름이 안도타다오였다. 오늘날까지 노출콘크리트는 그의 signature로 남아있다. 그래서 건축사에서는 노출콘크리트 기법의 꽃을 피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노출콘크리트를 처음 사용한 것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이지만 오늘날 이렇게 대중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지되게 만든 건 안도타다오이다.


다시 그의 이름을 듣게 된 것은, 제작년 박물관 전자도록 작업 관련 건이었다. 이런저런 조건이 맞지 않아서 안하기로 했는데, 당시 본태박물관 전자도록 작업 의뢰가 들어왔었고 그 과정에서 해당 박물관에 대해 찾아보고 살펴보면서 다시금 그의 이름을 듣게 되었다. (본태박물관도 안도타다오의 작품이다.)


작년에 제주도 여행을 가면서 직접 본태박물관을 방문하여 곳곳을 살펴보게 되었는데, 안도타다오라는 건축가의 탁월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항상 백문이 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다. 글로만 봐왔던 그의 건축 특징, 그의 장점을 눈 앞에서 직접 보고, 그가 설계한 동선을 따라 박물관을 관람해보니 왜 그가 위대한지 느낄 수 있었다.


잘 모르는 이들 눈에는 그가 사랑하는 재료인 콘크리트의 회색벽만이 눈에 들어오지만, 그의 진짜 위대함은 이질적인 것들을 한 공간 안에 조화롭게 구성하는데 있다. 예를 들면 자연물과 인공물, 동양의 건축과 서양의 건축. 이런 거다. 절대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고 기존의 건축가들 방식이라면 어쩔 수 없이 그 경계가 생기는 지점이 만들어지는데 그의 건축에는 그런게 없다. 이질적인 것들이 마치 태초부터 그러한 듯 함께 공존하며 그러한 가운데 전에는 느낄 수 없던 공간미가 발현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가 다른 건축가들처럼 제도권에서 건축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럴 꺼라는 추측을 해본다. 그의 건축은 그야말로 도전적이다. 이것저것을 분석하고 고려하여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면 그의 건축은 이러한 까닭에 비실용적이다. 특히 동선은 분명 그 공간 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불편할 수 밖에 없고 공간 활용 측면에서 본다면 죽은 공간들이 많이 생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만드는 동선은, 그 동선을 걸어가야 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볼꺼리를 제공하고 그 동선을 거니는 것만으로 영감을 받을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내가 돈이 많은 부자라면 그에게 내 집 건축을 맡길 것이고, 한정된 부지 위에서 최대한 실용적으로 공간을 뽑아야 하는 생활인이라면 그에게 건축을 맡기지는 않을 것이다. :)


영화 보는 내내 다시금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공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 대해 눈을 뜰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영화를 좀 더 잘 만들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참 크게 남았다.


두 번은 보지 않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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