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말의 창고

in #kr7 years ago

어느 날 집사람으로부터 한 마디 말을 전해 들었다.
어느 신부께서 하신 말씀이란다.

‘악한 말을 하는 자는 자기 창고에서 악한 말을 꺼내 쏟아낸다.’

이 말인즉슨 악인은 악한 것만 애써 찾아내 쓴다는 뜻이리.
허니 선한 말을 하라는 가르침이시리라.

아마도 대개의 사람들은 신부의 말씀을 의당 옳은 말이라 여기리라.
세상에 이 말을 두고 부정할 이가 어디 있으랴?

허나, 나는 이 말을 듣자 즉각 한 생각을 떠올리고 만다.
저 말씀은 악한 말은 곧 나쁜 것이란 전제를 하고 있다.
나아가 선한 말은 좋은 것인즉 나쁜 악한 말을 하지 말고,
선한 말을 하란 주문으로 이어지고 말 것이다.
이는 사뭇 위험한 노릇이다.

만약 선한 말을 자주하지만,
행이 따르지 않고, 남의 비위만 맞추기 바쁜 이가 있다하면,
이를 어찌 진선(眞善)한 이라 이를 수 있겠음인가?
위선자(僞善者)는 선한 말을 앞잡이로 세우는 데 능숙하다.
불교에서는 이를 기어(綺語)라 하여 계율로 엄히 경계하고 있다.
비단처럼 번지르한 말은 거짓이 숨어 있기 십상이다.
물론 신부께서 한 말씀이 일분 악구(惡口)를 경계하신 게이겠으나,
자칫 무비판적으로 선한 말만 추구할 위험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악인을 향해 선한 말로 타이름만이 능사가 아니다.
때론 추상열일(秋霜㤠日) 엄한 말로 질타함이 필요할 때가 있다.
좋은 말로 감싸는 것만이 마냥 바람직하지만은 않으니,
따끔하니 비판하고, 때론 욕된 말로 비난하여,
사태를 바로 경계하는 것이 요긴하다.

요는 악한 말이 마냥 좋지 않다라든가,
선한 말이 언제나 옳다는 도그마에 빠지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바른 인식을 하고 옳은 판단을 구하고자 한다면,
거죽 말에 의지할 일이 아니라,
차갑게 벼린 이성의 칼날 아래 사물을 눕혀야 한다.

칭찬 받는다고 상을 주고,
비난 받는다고 벌을 준다면,
상을 좋아하고 벌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공적인 일을 버리고, 사익을 위해 술수를 부릴 것이며,
서로 패를 지어, 닦아주고 위해줄 것이다.
군주를 잊고 밖으로만 교제에 힘써,
자기 패거리만 나아가게(出仕) 이끌어,
윗사람을 위한 아랫사람들의 할 도리가 엷어질 것이다.

사교술만 늘고, 안팎으로 패거리를 짓게 되면,
비록 큰 잘못이 있어도 덮여지는 일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충신은 죄 없이 죽을 위험에 처해지고,
간신은 공이 없이도 편히 이익을 얻게 된다.

충신이 위험해지고 죽임을 당함에,
그게 그 죄 때문이 아니라면,
선량한 신하는 복지부동하게 될 것이다.
간신이 편안히 이익을 얻게 됨에,
그것이 공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간신이 영달하게 될 것이다.
이는 망하게 되는 근본이다.
이리 되면 신하들은 법을 폐하고, 사사로운 권세를 부리며,
공법(公法)을 가볍게 보게 된다.

以譽為賞,以毀為罰也,則好賞惡罰之人,釋公行、行私術、比周以相為也。忘主外交,以進其與,則其下所以為上者薄矣。交眾與多,外內朋黨,雖有大過,其蔽多矣。故忠臣危死於非罪,姦邪之臣安利於無功。忠臣危死而不以其罪,則良臣伏矣;姦邪之臣安利不以功,則姦臣進矣;此亡之本也。若是、則群臣廢法而行私重,輕公法矣。

말만 번지르하게 늘어놓고,
패거리 지어 우르르 몰려다니며 서로 닦아주고 추켜세우며,
공도(公道)를 저버리고 제들 사익만 추구하는 이들이 세상엔 의외로 많다.

공부는 등한히 하고, 실력도 없으면서,
그저 교제에만 능하여 세상을 눙치고, 중인(衆人)을 기만하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이들은 공적도 없이 관복을 입고,
죄 짓고도 버젓이 국록(國祿)을 축낸다.

헌즉 달콤한 말은 거죽이 화려한 독버섯 여기듯 하고,
쓴 말은 몸에 좋은 쓴 약 대하듯 하라.
달콤한 말은 주로 간신이 늘어놓기 십상이고,
거슬리는 고언(苦言)은 충신이 올리는 것이 상례임이라.

여기 이야기 하나를 더 보태며,
내 뜻을 더 충실히 채워본다.

노목공이 자사에게 물었다.

“내가 듣기로 방간씨의 자식이 불효자라고 한다. 그 행이 어떠한가?”

자사가 답하였다.

“군자는 현자를 존중하며 덕을 숭상하며, 착함을 들어 민을 권고합니다.
잘못된 행동은 소인이나 아는 것이어서 신은 아지 못합니다.”

(※ 바로 이 장면에서,
나는 신부의 말씀을 견주어 본다.
시비 판단 덮고, 무책임하게 내지르는,
좋은 게 좋다란 말을 나는 제일 염오(厭惡)한다.)

자사가 나가자 자복려백이 들어가 뵈었다.

방간씨 자식에 대하여 묻자, 자복려백이 답하였다.

“잘못이 세 가지 있습니다. 모두 군주께서 아직 듣지 못하신 것입니다.”

이로부터 군주는 자사를 귀히 여기고, 자복려백을 천시하였다.

魯穆公問於子思曰:「吾聞龐간(米+間)氏之子不孝,其行奚如?」
子思對曰:「君子尊賢以崇德,舉善以觀民。若夫過行,是細人之所識也,臣不知也。」
子思出,子服厲伯入見,
問龐간(米+間)氏子,子服厲伯對曰:「其過三,皆君之所未嘗聞。」
自是之後,君貴子思而賤子服厲伯也。

혹자가 말하였다.

노나라 공실이 삼대에 걸쳐 계씨에게 겁박을 당한 것은 당연하다.
현명한 군주는 착함을 찾아 상을 주고,
간악함에 벌한다.
그 찾아내는 일은 매 한가지다.

고로 선을 알리는 자는 선을 좋아함이 군주와 같은 자이며,
간악함을 알리는 자는 악을 미워함이 군주와 같은 자이다.
이것은 마땅히 상과 명예가 주어지는 바다.

간악함을 알리지 않음은 군주와 달리 아래로 악과 한 패가 되는 자이다.
이것은 마땅히 비난과 벌이 미치는 바다.

지금 자사는 잘못을 알리지 않았는데도 목공이 그를 귀히 여기고,
여백은 간악함을 알렸는데도 목공은 그를 천히 여겼다.

인정이란 모두 귀함을 좋아하고, 천함을 싫어한다.
고로 계씨의 반란이 이루어지도록 군주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것이 노의 군주가 겁박 당한 까닭이다.

또한 이는 망한 나라 군주의 풍속으로,
취, 노의 백성이 스스로를 아름답다 여기는 바임인데도,
목공이 홀로 그를 귀히 여긴다는 것은,
역시 거꾸로 된 것이 아니겠는가?

或曰:魯之公室,三世劫於季氏,不亦宜乎!
明君求善而賞之,求姦而誅之,其得之一也。
故以善聞之者,以說善同於上者也;以姦聞之者,以惡姦同於上者也;此宜賞譽之所力也。
不以姦聞,是異於上而下比周於姦者也,此宜毀罰之所及也。
今子思不以過聞,而穆公貴之,厲伯以姦聞而穆公賤之,
人情皆喜貴而惡賤,故季氏之亂成而不上聞,此魯君之所以劫也。
且此亡王之俗,取、魯之民所以自美,而穆公獨貴之,不亦倒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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