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넌 대체 누굴 보고 있는 거야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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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그 존재 자체로 황홀하다. 아 예쁜 내새끼. 나는 그저 입을 헤 벌리고 둘째를 바라보며 기뻐할 뿐이다.

그러다가 퍼뜩 첫째가 생각난다. 나는 고개를 돌려 첫째를 찾는다. 첫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본다.

큰놈은 만 4세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 큰놈은 제가 아는 우주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11개월 전, 이상한 생명 하나가 집에 오면서부터 그 애정이 분산되기 전까지 그러했다. 녀석이라고 그 사실을 왜 모르겠는가.

선배들은 “동생을 안고 집에 온 엄마를 본 첫째의 심정은, 첩을 본 본처의 심정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아직 말을 못 하는 둘째는, 기분이 아주 좋을 때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방긋방긋 웃는다. 그러면 그걸 본 엄마, 아빠, 외할머니는 박수를 치며 웃는다. 첫째가 저도 웃으며 몸을 좌우로 흔든다. 그 모습이 서글프다.

내가 큰아들에게

아들아, 내가 너보다 동생을 더 사랑하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네가 동생만 할 때 나와 너의 어미는 온 힘을 다해 너를 사랑했다. 그 사랑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단지 지금 너의 동생이 그 삶 속에서 어른들이 보기에 가장 예쁜 시기를 통과하고 있을 뿐이다. 네 동생의 예쁜 짓에 환호하는 것은 아비와 어미와 네 조부모의 본능적인 반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조금도 서운해하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네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고 설명해봤자, 놈이 이해할 리는 없다.

나는 큰놈에 대한 내 사랑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둘째에 대한 내 사랑을 소극적으로 표현하기로 했다. 이후로 큰놈이 안아달라면 무조건 안아주고 점프점프(하늘로 던졌다 받는 것) 해달라면 무조건 해주고 까까(과자) 달라면 양치 한 직후를 제외하면 주고 밖에 나가자면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지 않은 한 나갔다.

어제 코스트코에 갔다. 에어컨이 과했다. 얇은 이불을 망토처럼 작은놈에게 둘렀다. 그걸 본 큰놈이 갑자기 “추워. 추워”하면서 울먹였다. 이불은 한 장이었다. 면역력은 첫째가 더 강했다. 둘째는 콧물을 흘리고 있었다. 누가 이불을 덮어야 할지는 분명했다.

나는 카트에서 큰놈을 쑥 뽑아서 꼭 안았다. 그러고는 “OO야, OO은 안 춥게 아빠가 꼭 안아줄게”하고 놈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큰놈이 씨익 웃었다. 매장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큰놈을 안은 채로 “우오오오”하면서 달리다가 “점프”하면서 높이 뛰었다. 큰놈이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그리고 “또 점프, 또 점프”라고 했다. 나는 계속 뛰었다.

계산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품에 안은 큰놈이 내 입에 뽀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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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 으리으리한 체구의 칼님이 둘째를 바라보며 헤~ 하고 좋아하실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한데요?^^ 지금은 몰라도 칼님이 보여주신 작은 몸짓과 눈짓들이 하나 하나 기억에 남아서 시간이 지났을 땐 '아, 아빠가 날 참 사랑했구나'라고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장녀의 경험담입니다.후훗)

아아 장녀이시군요. 저도, 큰놈이 지금 제 말과 행동을 하나하나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으로 어떤 감정들, 아니면 단편적인 장면이 스냅사진처럼 남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두놈 다 바른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집의 첫쨰들이 퇴행을 시작한다는 그 시기군요. 웃음이 슬쩍 나는 일기 잘 보고 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큰놈 퇴행 증상이 심각합니다.

저희집도 보물 1,2호가 있는데 아이들 키우기 너무 어려워요 ㅎㅎ;;

앗 두 아이를 두셨군요. 쉽지 않죠 정말. 화이팅입니다!

내가 지금 여기 눈 앞에 서 있는데~

날 너무 기다리게 만들지마~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

내가 지금 여기...아 한 발 늦었네요. ㅎㅎㅎ저는 왜때문에 가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요. 선배들이 해주신 질투에 대한 비유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터널님... 이제 그만 아재임을 인정하세요. 질투 주제곡을 아신다니 빼박입니다... 그 마지막 키스 장면도 기억하시는 거죠?

웰컴 투 아재월드

이것이 끝이라고 우린 믿지 않았지 너 떠난 텅빈 활ㅈ....아 ㅠㅠ내가 아재라니!

으악 아재냄새 ㅋㅋ

ㅎㅎㅎ 잘한다~ 잘한다잘한다잘하~ㄴ다^^

ㅋㅋㅋ 감사합니다. 으쓱으쓱

큰놈을 카트에서 쑥 뽑아서 안으려면 스콰트를 몇kg까지 해야합미꽈

쑥 뽑아서 안는 데에는 데드리프트가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어머 둘째는 없지만 왠지 격하게 공감가네요 ^ ^

공감 감사합니다. 둘째 보신 분들은 다들 둘째 정말 예쁘다고, 셋째 보신 분들은 셋째가 말도 못하게 예쁘다고...

로또 사러 갑니다.

첫째에게 그런말을 해준다니
공평한 아버지 인증합니다. ^^
둘째의 귀여움...그건 어쩔수 없죠
제겐 이미 지난 이야기지만 둘째 어릴때
첫째가 에미에게 받은 설움은 옆에서 보기에도 안스어웠습니다.
잘때도 엄마 발밑에서 손끝이라도 발목에 대고 자려다 혼나고.ㅠㅠ
다행히 정감있는 아들로 커 주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저는 나름 공평하게 대하려 노력했는데 ㅎㅎㅎ
에미는 힘들다보니 그러지 못해 평생 미안한 마음으로 사과하며 살아가고 있답니다. ㅎㅎㅎㅎ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왠지 두루 사랑으로 키우셨을 거라는 확신이 옵니다. 그러니까 다정한 아들로 자랐겠지요. 저는 아직 갈길이 멉니다.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앗 뽀뽀라니 제가 아버지한테 뽀뽀 언제했는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ㅋㅋㅋㅋㅋ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끼리 입에 뽀뽀는 하지 말자. 볼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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