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그리고 첫 보상

in #kr7 years ago (edited)

20150812.png

한번씩 호되게 술병이 난 날이면
세네시간은 고사하고 열시간 열두시간을 구토에 시달리곤 했었다.
어느정도 비워내다보면 더 이상 비워낼게 없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악질은 멈추질 않았다.
게다가 아무것도 없는데 헛구역질하는건 정말 괴로워서
틈틈히 물 따위를 마셔서 토할거리를 만들어줘야했다.
그건 비워내기 위한 비움이 아니었고 채워넣기 위한 채움이 아니었다.
기약없는 맹목적 비워내기와 비워내기 위해 채워지는,
병이란게 그랬다.
2015.8.12

회식을 마치고
술이 잘 안 받는 날이라 혹여 술병이 나진 않을까.. 하며 옛그림들을 둘러보다 발견한 일기.
취하기도 전에 술병부터 먼저 나는 체질이라 늘 조심합니다만은, 뜻한바대로만 되지 않는게 술자리겠지요 ㅎㅎ
다행히 이것저것 하다보니 속이 좀 차려진듯 합니다.

하지만 기왕 마신김에 이런저런 넋두리를 좀 해보려합니다 ㅎㅎ '~'

저는 꽤 긴 시간 그림을 그렸습니다.

어릴적부터 재미를 붙였고, 대학교 전공이기도 했고, 잘 그리는 건 아니었지만(미술성적은 늘 엉망이었어요 ㅎㅎ)
제가 가장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일이죠.
하지만 직업이 되지는 못했어요.
생업이 될 수 있을만한 기회는 종종 있었지만...

특이체질이랄까,
페이를 지급받는 그림을 그리려고 하면 부담감에 얼어붙어서 전혀 그리질 못하는 병적 증세가 있어요.
대가성, 요청작 모두 마찬가지여서 어렵게 얻은 기회들 대부분을 무책임하게 날려버리기를 반복하다
'이바닥 좁다'는 업계관계자의 충고를 받은 후 그림으로 돈을 버는 일은 완전히 포기해버렸습니다.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돈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림은 여전히 제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고, 생활이고, 목적입니다.
가능한한 영원히 저는 그리고 싶습니다.
지금은 생업은 별도로 둔채 짬이 나는 틈틈히 손이 굳지 않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상과정이 없는 피드백을 꾸준히 유지하기는 쉬운일이 아닙니다.
sns에 그림을 올려 좋아요나 댓글을 받는 일이 제 피드백의 전부인데,
업계에 끼친 민폐가 상당하므로 될수록 눈에 띄지 않도록, 김삿갓의 마음으로 '심해'에서 그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서
그렇게 얻을 수 있는 관심도 사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쏟아붓는 시간과 에너지에 비해 받을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보니,
사람이라는게 지치게 되더군요.
바리에이션이 줄고, 퀄리티가 줄고, 과정은 생략하고, 완성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2015년의 일기에서 쓰고싶었던 괴로움이 그런것들이었습니다.

토할 것이 없음에도 토해내야만 했던. 맹목적 비워내기의 병.

그리고 스팀잇

그런 제게 '누군가가 직접 돈을 주지는 않지만 아무튼 돈을 받을 수 있는' 스팀잇은 새로운 가능성입니다.
대가성의 부담감은 없으면서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게 너무나도 꼭 맞는 시스템이지요.
직업으로의 그림을 포기하면서 sns에 내 작품을 전시하며 살고 싶다고 막연히 꿈꾸었는데,
그 꿈을 가장 현실적으로 실현해줄 플랫폼이지요.

사실 조금씩 스팀잇에 대해 알게되어가면서, 결국 이게 대가성이 아주 0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기성 시스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지요.
자본에 얽매이지 않는 예술은 진정 자유롭습니다.
오직 관객과 예술가만이 존재하는 이 곳이, 저는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

일주일, 그리고 첫 보상

저는 오늘 스팀잇에서 첫 보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적은 돈이지만, 제가 받은 마음적인 보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게 어떤 기분인지 잘 모르겠어요.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상상해보게 됩니다.

겁도 나요.
결국 여기에도 대가성의 부담을 느끼게 되어버리면 어떻하나,
반대로 심해의 원칙을 깨고 영향력을 키우게 되어버리면 어떻하나,
어느 순간 소식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르죠.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의 제 상황은 사실 상당히 심각합니다.
이제사 물을 준다고 해서 꽃을 피울 수 있기는 할까,
어쩌면 오히려 더 큰 타격을 주게 되는건 아닐까,
어떤 결과가 될지는 저도 저를 좀 더 지켜보려 합니다.

저는 최근 이슈된 일련의 사태와 기술에 대해 상세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양극화 시대, 마침내 블록체인 기술을 만난 개미의 상황과 지금의 제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부어도 부어도 차오르지 않는 밑빠진 독에 지쳐 쓰러진 그들 앞에 나타난, 그저, 그저 밑이 빠지지 않은 독.
지극히 상식적인 세계를 향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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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을 예체능충 이라고 하셨는데, 딱히 어떤 의미를 두어서 쓰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소위 시쳇말로써 사용됨을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벌레로 표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다만, 그림 잘 그리시는 분들은 대게가 글도 잘 쓰시나요? 여기 스티밋의 그림 작가 분들은 죄다 그런 것 같아서 말이예요. 그림도 그림이지만, 글이 더 기대가 된다고 말씀드리면 실례가 될까요? ;)

반가워요.

저도 그림으로 먹고 사는일을
하다가 지쳐서 전직?을 한 후
한~ 참을 안그리다가
붓을 다시 꺼내고 타블렛을
사용해 보면서 요즘은
이 재밌는걸 왜 안했을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생계가 문제가 아니라면
취미로 접근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화이팅~!
블레스_작은거.gif

이곳에서 치유하겠다 마음먹고 지내보세요
달라지실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공감가는글입니다
이곳에서 부디 부담없이 맘껏 날개를 펼치시길 바랍니다~!!

오~ 저도 미대에서 디자인 전공했지만 늘 기획이나 홍보 같은 일을 했지요. 미적 감각이 많이 부족해서... ㅠㅠ
그림으로 돈을 번다거나 꼭 성공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버리고 취미로 한다면 또 그림만한 취미가 없지요. 스팀잇에서 작은 보상이라도 받으면 더욱 좋은 거구요. 부담없이 즐기는 작품 활동 기대합니다!

마음담긴 글 잘봤어요 팔로우할께요!!

심해 가오리님 미소녀그림 잘 보고있어요 ^^
스팀잇이라는곳에서 화이팅 하시길 바래요 ㅎㅎ

너무 공감되는 글 입니다~!
뭐든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려면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면하게 되는 문제 인 듯 합니다!
부디 이 좋은 시스템을 이용하여
화려한 꽃을 피우는 꿈을 펼치시길 기원 합니다~!^^

p.s.
건강을 위해 음주는 적당히 하시길 바랍니다!!^^;;

지금이라도 시작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저도 @abyssray 님처럼 팔로우, 팔로워가 많아지고, 관심가져주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고맙기도 하지만 부담감도 느껴집니다.
제가 3~4달 정도 스팀잇을 쉬었던 이유도 그러한 요인이 어느정도 작용했던것 같아요.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말씀하신 것처럼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금은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꾸준히 해 나가야 하는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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