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대학원, 하하하 웃지요 2018

in #kr7 years ago

버스 안, 젊은 남성과 할머니의 대화. “총각은 뭐 해?” “학교 댕깁니다” “어디 댕기는데?” “카이스트요.” “어디?” “과학기술원이요.” “그래, 공부 못하면 기술 배워야지.”

텔레비전 드라마 <카이스트>(1999~ 2000)의 첫 장면이다. ‘이공계 천대’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던 시대상이 자조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실제로 당시 신문을 살펴보면 ‘이공계가 살아야 한국이 산다’와 같은 이공계 육성론이 심심찮게 발견된다.

극중에서 전자과 이희정 교수(이휘향)는 ‘과학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능보다도 포기할 줄 모르는 마음가짐’이라는 말을 신조로 삼고 있다. ‘포기를 모르는 성격’만을 보고 실수투성이에다 성적까지 형편없는 정만수(정성화)를 자신의 연구실에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 ‘포기하지 않는 청년’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다. 극중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도전→시련→좌절→극복’이라는 서사 구조를 따르고 있으며, 주제곡인 ‘마음으로 그리는 세상’에서도 “소중한 건 바로 (마음속에) 쓰러지지 않는 용기죠. 나를 향한 믿음 (그것만이) 멋진 미래를 열 수 있는 작은 열쇠죠”라는 가사가 반복된다.

대중매체에서 그린 인문학도는 어떤가. 드라마 <스타의 연인>(2008~2009)은 국문과 박사과정 겸 시간강사 김철수(유지태)와 한류 스타 이마리(최지우)의 러브스토리를 다룬다. 김철수는 하숙비도 제대로 내지 못할 만큼 가난하지만, 드라마를 보면서도 ‘데리다’를 들먹일 만큼 현학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톱스타 이마리는 성장 과정에 문제가 있어서 인문학적 교양이 전무한 인물이다. 생활고로 인해 대필 작가로 활동하는 김철수는 의뢰인 이마리를 만나 그녀에게 ‘교양 과외’를 하게 된다. 계층적 차이로 연애관계 성립이 불가능한 두 인물을 매개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적 지식’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런 대학원(생)은 없다. 2018년 현재 이공계는 지나치게 열심히 육성된 탓인지 ‘산학협력’이라는 명분 아래 대학원생의 노동력을 저임금으로 착취하는 거대한 공장이 되었다. 인문·사회과학이 생산하는 전문 지식의 가치는 암호화폐의 그것처럼 갈수록 ‘떡락’하고 있다. 만약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가진 대학원생이 있다면, 슬프게도 그 또는 그녀는 저임금 노동, 각종 갑질, 인격 모독, 성폭력에 더 장기간 노출될 확률이 높다.

‘포기하지 않는 끈기’ 가진 대학원생은…

대학원생들이 만들어가야 할 ‘멋진 미래’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2018년 ‘문돌이(문과생)’들은 왜 ‘문송합니다’만 되뇌고 있을까? 도대체 근 20여 년간 대학 사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을까?

다시 <카이스트>로 돌아와,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서사와 거리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나를 향한 믿음(주제곡 중)’ 또한 지금의 대학원생에게 필요한 미덕이 될 수 있다. ‘대학(원)에서 밀려난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라는 불안이 대학원생들을 부조리와 불합리의 현장에서 인내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대학 사회의 주체인 대학원생이라는 확고한 자기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용기 내어 먼저 첫발을 내디딘 분들, 아직 망설이고 있을 수많은 대학원생,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가치 있고 아름다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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