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글의 소재

in #kr-writing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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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은 쉽게 쓸 수도, 어렵게 쓸 수도 있다. 때로는 고심해서 글을 쓰기도 하고, 머릿 속 생각이나, 가슴속에 오래 묵혀두었던 무언가를 꺼내 오히려 가볍게 써 내려가기도 한다. 개인적인 경험에 고심해서 글을 쓰는 경우 마음에 드는 글이 잘 나오지 않는다. 무언가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고, 맥락이 뚝뚝 끊기는 경우인데, 요즘 들어 그런 경험이 잦다.

쉽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순간이 있다. 마음 속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이 이곳이든 아니든, 보팅을 많이 받든 아니든 관계 없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낼 때가 있다. 나에게는 그럴때가 가볍게 써 내려가는 경우이다. 궂이 잘 쓰려 하지 않고, 남들이 어떻게 볼까 생각하지 않고 감정에 맞겨 글을 써내려갈 때가 자주는 아니고 간혹 있다.

#2.

글을 쓰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경우가 있다. 보통 정보를 전달하기 위함이나 시사적인 주제에 내 생각을 전할 때는 아니다.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할 때다. 그것이 어딘가 해야하는데, 하지 못할 때가 있다. 마음이 답답한데 누군가에게 하소연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럴 때 글을 쓰며, 위안을 느끼고, 평온함을 되찾는 경험을 한다.

반면에 남의 글을 읽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 나에게는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을 때 그런 경우가 많다. 삶에서 단 한번도 생각해본적 없는, 당연하게 여겼던 사소하고, 단순한 이야기를 가지고 다양한 시각으로 부수고, 쪼개고, 붙인다. 책을 보며 감탄하고, 때로는 오금이 찌릿찌릿하다.

스팀잇에서도 그런 경험을 종종 한다. 그 역시 마찬가지로 정보글이나 시사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그 작자의 마음이 전해지는 글, 진심이 느껴지는 글, 고민이 느껴지는 글,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글, 삶의 아픔이 느껴지는 글, 정말 즐거움이 느껴지는 글, 행복함이 묻어 나오는 글. 이 모든 글에 느껴진 나의 감정의 공통점을 ‘공감’이라 부를 것이다.

#3.

스팀잇은 양질의 글을 매일 매일 생산해내게 하는 능력이 있는 반면, 창작자의 순수성은 앗아가는 양면의 존재이기도 하다. 이것이 창작을 업으로 하는 크리에이터들이 매번 하는 고민인지는 모르겠다. 양질의 글이라 함은 보팅을 많이 받는 식으로 유도하게 만드는데, 그러한 양질의 글을 생산해 내려하다보면 창작자는 이상한 오류에 봉착한다. ‘많은 보팅을 받는 글 = 양질의 글’의 공식이 나도 모르는 새 정착 된다.

종종 이곳에서 누군가의 삶의 어두운 단면을 만나기도 한다. 누군가는 가족의 질병에 대한 슬픔을 글로 표현한다. 누군가는 본인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나와는 상관 없는 제3자의 슬픔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많은 보팅은 곧 공감이기에 많은 이들이 그들을 찾아가 위로한다. 그러고 보면 이 공간은 참 따뜻한 공간이다. 그렇기에 아픔과 슬픔을 여과 없이 공유할 것이다.

그리고 성격에 모가 난 나는 간혹 이들의 글에 한번씩 반대의 불필요한 의문을 던진다. 이들의 아픔에 진정성이 있는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은 때론 누군가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사게 만든다. 스팀잇이라는 지극히 극단적 자본주의의 산물 안에서 우리는 그것을 더 격렬하게 논의하고, 따지고 든다. 자본이 개입된 글의 소재는 순수성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 그것인 진정성 있는 슬픔이든, 만들어진 슬픔이든 무관하게 이러한 현실이 그리 기쁘지는 않다.

#4.

새벽에 쓰는 글은 비교적 반응이 좋다.(상대적이란 것이다) 감정이 실렸기에 그럴 수도 있고,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쓴 글이라 그럴 수도 있다. 간혹, 스팀잇에서는 한 번 뿐이었지만, 밤에 글을 쓰고, 아침에 이불킥하는 경험을 한다.(그래서 SNS를 안한다)

아침에 글을 읽으며, 지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도 없이 고민했다. 7일이 경과하면, 영원 무궁토록 인터넷 상을 떠 돌아다니게 될텐데. 생각해보니 삭제도 안된다. 고민하다 보팅이 많이 되었길래 눈 한번 질끈 감기로 했다.

한편으론 이 역시도 나의 감정을 팔아 돈을 벌려 했던 것은 아닌가 자문하게 된다. 그날 그밤 나의 감정을 고작 이 돈으로 환산하겠다고, 그대로 둔 내가 한심스럽다. 타인의 시선도 부담스럽다. 얼굴도 모르는 이가 나의 가장 깊숙한 이야기까지 알고 있으니.(물론 그는 나를 모른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곳은 창작자에게 양질의 창작물을 매일 생산해 내게 하는 동시에 순수성을 앗아가는 양면적인 곳이다.

#5.

문체라는 것이 있다. 나의 스타일이다. 간혹 누구의 것이 부러워 흉내를 내봤다. 영 어색하다. 내 글이 아니다. 그래도 나의 이 글본새가 참 마음에 안들어 글을 흉내 내어 타인의 글쓰기와 그가 하는 주제를 빌려 글을 써본다. 허나 내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다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그 사람이 쓴 글을 많이 읽다보면 어느새 글의 느낌이라도 조금 가까워져가는 착각이 든다. 나는 그것이 창작자와 교감을 하는 것으로 인지한다. 내 것은 아니지만, 단시간에 내 것이 될 수는 없지만, 조금씩 물들어 가는.

사랑하면, 상대의 생각이 궁금하다. 자꾸 대화하다보면, 말투가 닮아간다. 그의 관심사와 취향이 나의 것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것으로 내 것들이 물들어 간다. 글을 읽고 쓰는 것도 그러한 것 같다.

#6.

번호글을 쓰다보니 묘한 매력이 있다. 본래 하나의 주제를 두면, 그 글에서는 하나의 주제에 통일 되게 글을 써야 하는데, 그런 제약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다. 물론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생각 나는 다양한 것들을 하나로 묶을 방법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파편적인 생각을 있는 그대로 담을 수 있어 또한 좋다.(파편이란 단어가 마음에 걸린다. 번호글을 쓰는 분들을 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내겐 번호글 쓰는 분들 중에 정말 좋아하는 글을 쓰는 분들이 다수 있다.)

물론 좋은 글이 나왔는지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생산의 관점이 아니라면, 내가 좋으면 됐다. 오늘 밤도 글의 소재와 그 속의 내용을 두고 생산자와 창작자의 경계에서 묘한 줄타기를 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 자체가 참 기분이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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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며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아마 제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원동력일 것입니다. 물론 보팅이 크면 클수록 기분이 좋지만, 글을 쓰는 과정 또한 즐거움이 따르지요. 저 역시 @likersh7님의 말씀대로, 주로 정보글을 싣는 사람이지만,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마다 제 마음의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글을 질러내곤 합니다. 매일 포스팅하고 자주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스팀잇에서 블로그를 운영하며 꽤 쏠쏠한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sleeprince님 글들 많이 찾아가 읽어야 겠습니다. 아직 자세히는 안봤지만 글에 정성이 느껴지네요~ 많이 배우겠습니다:)

잠자는왕자님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

뭐가 우선인가에 대한 딜레마에 빠질수도 있지만...내가 좋아하는 글도 쓰고, 좋아하는것으로 인한 보상도 있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자기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는 사람들이 순수하지 않다고 할수는 없는거니까요 ^^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수 있는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저도 부정적인 얘긴 아니었어요~ 업으로 글쓰는 분들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구나~ 그런걸 느끼죠. 그분들도 좋아하는 일이라해서 쉽게 하시는건 아니겠구나 그런 생각들이 들죠. 물론 말씀처럼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버는건 축복일 수 있지만, 쉬운 일은 없는 것 같아요:)

글쓰기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신거 같네요.
likersh7님이 즐거운 글을 쓰시면 될듯 한데요 ^^

번호글은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어 좋아요 ㅎ

즐겁게 글쓰기 하고 있어요~~^^
항상 뭘 하든 고민은 많은 편이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되는 것 같아요ㅋㅋㅋ

공감이 많이 가는 글이네요. 보팅에 휩쓸리지 않고 내 흐름을 이어 가려 노력중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ㆍ

도움이 되셨다니 감사하네요:)

저도 이어지지 않는 글, 모자이크로 엮어지는 글, 퀼트같은 글이 매력있더군요.

네네 적응되면 재밌을 듯 합니다. 말씀하신 퀼트같은 글모자이크 처럼 엮어지는 글들. 비유가 많이 와닿네요.

글쓰기/글 읽기를 통한 치유의 힘을 체험하고, 앞으로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바여서, 깊이 공감하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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