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연재소설) [PANic Song -chapter 3] Vertigo(4)

in #kr-writing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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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 Dog King(1)
Chapter 1 - Dog King(2)
Chapter 1 - Dog King(3)
Chapter 2 - HERO(1)
Chapter 2 - HERO(2)
Chapter 2 - HERO(3)
Chapter 2 - HERO(4)
Chapter 3 - Vertigo(1)
Chapter 3 - Vertigo(2)
Chapter 3 - Vertigo(3)

“그럼 여기 나오는 「추락하는 고통」이란 건?”

“처음 말씀드린 이카로스 얘기요. 미궁에 갇힌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의 탈출기는 워낙 잘 알려진 얘기니까요. 미궁에 갇힌 다이달로스가 갈라진 벽 틈 사이로 밀랍과 새들의 깃털을 모아 만든 양초날개를 이카로스에게 달아준 얘기.”

프레드릭 레이튼_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_1869.jpg

프레드릭 레이튼(Frederick Leighton), 이카로스와 다이달로스(Icarus and Daedalus), 1869

“…아버지의 조언을 무시한 채 태양 가까이 날다가 날개가 녹아내려 바다에 떨어져 죽는다는 이야기 말이죠?”

수사관은 신일 대신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며 대화를 적어 내렸다.

ch3.jpg

(上) 페테르 루벤스(Peter Rubens), 이카로스의 추락(The Fall of Icarus), 1636
(下)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Herbert James Draper), 이카루스를 위한 탄식(The Lament for Icarus), 1898

“신일 씨 의견을 참고해서 범인의 살인 동기를 추정하자면 결국 한 대령이 어떤 부정한 사실을 은폐하거나 비위사실에 침묵했다는 얘기가 될 텐데요.”

신일은 선뜻 수사관의 말에 동의를 표할 수 없었다. 그녀 옆에서 매서운 눈을 부라리고 선 김 소령 때문이었다.
그의 호흡은 이미 상당히 거칠어져 있었다. 예전에도 저랬다. 불같이 번지는 화를 억지로 참아야 때, 그의 숨소리는 싸움을 목전에 둔 황소의 코골이처럼 둔탁해지곤 했다.

“피해자 한 대령의 평판은 어땠나요? 업무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저희가 따로 알아야 할 만한 내용 같은 게 있나요?”

“그분은 부정한 일에 연루되실만한 분이 아닙니다! 한 대령님과 관련된 비리 같은 건, 알려진 바도, 들은 바도 전혀 없단 말씀입니다.”

발끈한 김 소령이 수사관의 질문을 대번에 잡아 내친다. 비위사실에 침묵했다는 말을 들을 때부터 그의 미간은 격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 말에 누구보다 공감을 표한 건 신일이었다.

한 대령은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목숨보다 중시하던 사람이었다. 분명, 부정한 일에 연루될만한 사람은 아니야. 신일은 윗입술을 옹알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엇보다 군 부정과 연루된 사건이라면 이런 식의 공개살인은 어울리지 않는다. 처음 수사관이 지적한 대로 이건 한 대령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품은 자의 소행이다. 이쪽 방면에 문외한인 신일이었지만, 그 역시 이번 사건 전반에 밴 심상치 않은 냄새를 똑똑히 맡을 수 있었다. 이건 누군가의 피에 굶주린, 맹렬한 적개심의 향이다.

“그럼, 마피아라는 문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그 부분이 영 설명이 안 되네요. 마피아와 이카로스의 연관성 같은 건 따로 들어본 적이 없어서….”

제멋대로 떠들어대긴 했지만, 신일이 확신할 수 있는 건 사실 아무 것도 없었다. 어쩌면 그의 얘기는 너저분한 단서들을 정신없이 나열한 것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이 정말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 하는 건가? 신일은 뜻 모를 기호로 쌓아 올린 미궁에 스스로 갇힌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범인은 왜 하필 그리스 신화를 택한 걸까. 자신의 범행동기를 암시하기 위해 굳이 다이달로스와 미노타우로스를 인용하다니…. 신일은 땀에 젖은 오른손으로 뒷목을 훔쳤다. 가슴 속 타오르는 의심의 불꽃은 아직까지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렇군요. 일단 뭐, 그 부분은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죠. 오늘 신일 씨가 말씀해 주신 부분만으로도 수사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신일 군, 혹시 나중에 이분들이 다시 연락할 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한 때 자네가 모셨던 분인데, 수사에 도움 될 만한 얘기 있으면 최대한 협조 좀 부탁함세. 한 대령님의 억울한 죽음, 우리가 그 원한은 풀어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당장 눈물이라도 쏟을 듯 울먹이는 김 소령을 신일은 그저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그의 과잉된 슬픔을 이해할 수도 없지만, 분에 겨운 그의 결의를 올곧게만 해석하고 싶지도 않다.

“저 실장님…”

김 소령 뒤로 정복 차림의 중위 한 명이 다가선다. 젊은 사관의 얼굴에는 푸릇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그는 신일이 선 쪽을 향해 까딱, 목례를 건네곤 곧장 김 소령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김 소령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휘둥그레진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의 얼굴엔 전에 없던 조급함이 가득했다.

딱히 둘의 대화를 듣진 못했지만 신일은 어떤 일이 벌어지려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꽤나 높으신 분이 조문이라도 온 걸 테지. 지금 저들을 저렇게 긴장시킬 일은 그것 밖에 없을 테니.

이미 그들에게 혜원과 신일은 안중에 없는 존재였다. 김 소령은 마뜩한 작별인사도 없이 허둥지둥 젊은 장교의 뒤를 따라 어딘가로 사라져갔다.

“참 나, 어디 무시무시한 장군님이라도 오셨나 보죠?”

못마땅한 독설을 먼저 날린 건, 혜원이었다. 그녀 눈에도 괜한 유세를 떠는 김 소령은 꼴불견으로 비췄던 걸까.
허를 찌르는 한 마디에 신일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상갓집의 침울한 분위기만 아니었다면, 분명 쏟아져 나오는 통쾌한 비웃음을 참지 못했을 거다.

“어쨌든 오늘, 수고하셨어요. 이제 저도 슬슬 복귀해야겠네요.”

“근데, 저기 수사관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번 사건에 대해서 하나만 더 여쭤 봐도 될까요?”

“예, 얼마든지요.”

“처음 수사관님께 설명 들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느낀 건데요. 아까 한 대령님이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발견됐다고 하셨죠?”

“예, 부대 근처 현장이었어요. 공사가 중단된 지 몇 개월이 지난….”

“…그럼 더욱 이해하기 힘든데요.”

“무슨 말씀이시죠?”

“그런 곳이었다면 인적이 제법 드문 장소였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시신을 찾은 거죠?”

어느새 신일은 오른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그건 이해할 수 없는 연결고리, 꼬리에 꼬리를 물며 증폭되는 의혹의 시퀀스를 도려내려는 손짓이었다.

“예리한 지적이에요.”

혜원은 애써 덤덤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대답 중간, 짧은 말 끊김에 섞여 들린 건 분명 그녀의 마른 한숨소리였다.

“그게 아직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은, 범인의 세 번째 메시지일 거라고, 전 생각해요.”

“세 번째? 뭐가 더 있는 겁니까?”

“저희가 한 대령님 시신을 바로 수습할 수 있었던 건, 어제 그 지역 주민들로부터 어떤 신고를 받았기 때문인데요.”

“신고? 그럼 주민들이 시신을 먼저 발견했다는 건가요?”

“아니요. 그건 아니고…”

“그럼요?”

“범인은 정해진 시간에 사건 현장이 사람들에게 발견될 수 있도록 장치를 해 놨어요. 한 대령을 밀어 떨어뜨린 현장 건물에 알람을 설정한 구식 일체형 오디오를 설치해놓은 거죠. 볼륨을 증폭시킨 개조 오디오에서 일정 시간에, 일정한 노래가 나오도록 말이에요.”

“그럼…”

“어제 오후 12시 정각, 갑작스런 소음에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접수됐어요. 그리고 그렇게 출동한 경찰이 한 대령의 시신을 수습한 것이고요.”

신일은 쥐었던 주먹을 풀어 땀에 젖은 손바닥을 바지춤에 닦았다.

“그 역시 의도적인 거겠죠. 문제는 그 노래가 좀…”

“노래가 왜요?”

“헬터 스켈터(Helter Skelter).”

“예?”

“범인이 선곡한 노래 말이에요. 비틀즈(The Beatles)의 헬터 스켈터였어요.”

“그 노래라면 틀림없이…”

“그 노래가 뭘 뜻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군요. 그럼 분명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겠군요?”

국화 향 섞인 향불 냄새가 아찔하다. 지끈거리는 통증에 신일은 다시 무겁게 짓눌린 관자놀이를 짚었다.
천장이 빙글빙글 어지러이 춤추고 있다. 숨 막히는 적막의 바다, 검은 액자 속 노장(老將)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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