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재즈재즈 뉴올리언스 여행기 1

in #kr-travel7 years ago

*2년 전 여행의 기록입니다.

3월말이 되도록 춥기만 한 뉴욕. 누군가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을 때 따뜻한 곳이라면 무조건 오케이라고 했다. 로스앤젤레스가 첫 후보에 올랐으나 날씨를 제외하곤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는 샌프란시스코가 떠올랐으나 물가가 비싸므로 제외.3년 전 출장으로 잠깐 들렀다가 '나중에 다시 와서 놀아줄께'라고 (나혼자) 약속했던 동네가 있었으니, 바로 뉴올리언스. 따뜻하고, 밥값 싸고, 재즈 음악까지 갖춘 삼위일체(?)의 도시가 아닌가!

여행 계획? 없음. 가야할 곳? 발길 닿는 대로. 목적지 찍고 기념촬영하는 여행강박증 버리고 최대한 여유롭게 보내자는 게 목표라면 목표였다. 그렇다고 너무 조사를 안 하는 바람에 공항에 내려서 숙소를 어떻게 가야하나 잠시 혼란. 어디에서나 공평한 구글신은 우리에게 세 가지 옵션을 알려줬다. 프렌치 쿼터까지 택시타고 2인 기본요금 33달러, 3인일 때는 $14*3으로 계산해서 42달러. 굉장히 불편해보이는 셔틀버스는 한사람당 25달러, 그리고 E-2 버스를 타면 2달러. 차비 아껴 밥먹고 술먹자인 우리는 당연히 버스 옵션을 선택. 문제는 이 버스가 주말엔 프렌치 쿼터까지 안 가고 중간에서 멈춤. 다시 프렌치 쿼터행 버스를 타면 1.25달러 추가.

잠깐. 버스가 $1.25라고? 이보다 더럽고, 지폐도 안 받고, 안내방송도 안 나오는 뉴욕 버스가 $2.75인데? 싸서 좋긴한데 단점은 많이 안 다님. 세 번 버스를 기다려 봤는데 보통 한 시간에 두세대 밖에 안 다는 듯. 아무튼 버스를 1시간 넘게 타고 뉴올리언스 유흥의 중심 프렌치 쿼터에 도착했다.


canal st를 가로지르는 스트리트카. 트렘이라고도 부른다.

숙소는 프렌치 쿼터의 시작인 Canal st에서 약 5~10분 거리. 은행과 관공서 건물들이 우뚝 서있는 센트럴 비지니스 디스트릭트에 있는 The Whitney란 호텔이었다. 휘트니 뱅크의 예전 건물을 개조해 만든 호텔. 프렌치쿼터 재즈 페스티벌이 시작되기 직전 비성수기 기간이라 세일 가격으로 예약. 호텔 예약 컨테스트가 있으면 상위권에 입상하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 들만큼 가격대비 훌륭한 방이었다.
이제 뉴욕에서 입고 온 겨울옷을 벗고 여름옷으로 체인지! 샌들을 신고 프렌치 쿼터로 고고!


발길 닿는 곳마다 백인 관광객들이 대다수.


마디 그라 축제 때 던져준다는 반짝반짝 목걸이들이 거리 곳곳 발코니와 나무, 심지어 자전거에도 걸려 있다.


재즈 공연 중인 루이 암스트롱 파크에서 신이 난 아줌마들


프렌치 쿼터 호텔이나 건물의 특징은 발코니. 프랑스식인가 했는데 스페인 식민지 건축 양식이라 한다.


미국에서 아마 유일하게 거리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도시. 맥주가 단돈 3달러.

뉴올리언스의 많은 호텔들이 프렌치 쿼터 지역에 몰려 있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곳은 버번 스트리트. 재즈 클럽이 흥했던 거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각종 티셔츠 & 기념품 샾과 관광객용 라이브 술집들이 몰려 있는 유흥가. 뉴욕만 해도 이렇게 밤새 사람들 오가는 유흥가가 흔치 않아 두리번두리번.

그러나 프렌치 쿼터고 음악이고 뭐고 일단 배가 고팠기 때문에 포보이를 시도. 근처에서 옐프 별점이 높은 곳을 골랐는데 하필이면 정통이 아닌 모던 변형 포보이. 생선이나 새우 튀김을 프렌치 브래드에 끼워먹는 뉴올리언스식 샌드위치를 포보이라 하는데 찾아간 Killer Poboys는 베트남의 라이스 바케트 샌드위치인 '반미'를 접목한 포보이를 시도한 곳. 튀김이 아닌 포크벨리나 비프 미트로프를 끼워주는 샌드위치였다. 이곳에선 신기하겠지만 다국적 실험 샌드위치는 뉴욕에서 아주 흔한 메뉴라서 정작 우리는 좀 실망. 샌드위치 자체는 맛이 없진 않았지만 자랑스럽게 포보이에 반미를 접목했다 운운하기에는 부족한 맛이었다.


Erin rose라는 펍 안쪽에 위치한 포보이 전문점 킬러 포보이스


이것저것을 붙여놓은 벽이 인상적. NOLA는 '뉴올리언스,루이지애나'의 준말,


버번 스트리트의 건물들


버번스트리트 한복판 고급 호텔. 마디 그라 때 예약 1순위 호텔.


뉴 올리언스의 이국적 매력을 더해주는 우아하고 섬세한 발코니 장식.


프렌치쿼터 길거리 재즈 밴드.


노닥거리기 좋은 골목들. 파리 골목이 생각나기도.

프렌치 쿼터에서 미시시피 강변쪽으로 올라오다 보면 각종 아트 행상들이 모여 있는 Jackson Square가 나오고 조금 더 걸어가면 뉴올리언스를 대표하는 카페 Cafe de Monde가 보인다.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베네(Beignet)'라는 도넛을 먹기 위해 약 20분간 줄을 섦. 이미지만 보면 엄청 느끼하고 엄청 단 초유의 불량식품같아 보이지만, 한입 무는 순간 꽈배기 내지 찹쌀 도넛의 노스탤지어가 펼쳐짐. 어디서나 사업 구상을 하는 코리언 관광객답게 "옆에서 찹쌀 도넛을 팔아야 하지 않겠는가"란 대화가 오감.

그러나 꽈배기식 '쫄깃'보다는 '바삭'한 식감. 기름기를 최소화하고 설탕과 뭉쳐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고온에서 목화씨유로만 튀긴다고 한다. 평범한 설탕 파우더가 신의 한 수. 먹다보면 파우더를 점점 더 많이 묻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됨. 괜히 파우더를 아낌없이 뿌려주는 게 아니다. 한조각 먹기엔 아쉬우니 기본 두 조각을 먹어줄 것을 권함. 커피와 굉장히 잘 어울리니 꼭 곁들일 것. 24시간 운영.뉴올리언즈 드럭스토어나 상점 곳곳에서 기념품처럼 카페 드 몽드 베네 믹스를 팔고 있다.(집에서 튀겨먹을 생각은 없기 때문에 사지 않았다 -_-)


아마 24시간 내내 이런 모습일 것같은 카페 드 몽드 내부


카페오레와 궁합이 잘 맞는다 하여 백만년 만에 먹은 카페오레


오션스 그릴 입구에서 손님 맞이하는 안내 청년

검보와 포보이를 먹으러 가기 위해 들른 Oceana grille. 물론 옐프 별점을 참조함. '여기는 씨푸드 식당임'을 지극히 강조하는 다소 촌스러운 인테리어였으나 음식이 나오는 순간 촌스럽고 뭐고 '맛있다'며 흡입. 애피타이저인 검보를 비롯해 남부 세트와 케이준 프라이 플래터를 주문했는데 주문받는 사람이 이걸 당연히 한사람 분으로 생각하고 나를 쳐다보며 "너는 뭘 시킬겨?" 이렇게 물어 황당한 표정을 지음.뉴올리언즈 식당에서 탭비어가 보통 3~5달러. 지역 맥주인 아비타 생맥주를 3달러 대에 먹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비타와 더불어 NOLA 21이란 브랜드도 있었다. 씨푸드 검보와 잠발라야 모두 맛있었고 오이스터, 캣피쉬, 슈림프로 구성된 프라이 플래터도 훌륭했다. 얼마 전 일본 라멘집에서 딱딱하게 굳은 악몽의 고로케와 가라아게를 경험했던 우리는 "남부가 튀김을 잘 튀기는구나"라며 감탄, 또 감탄. 폭신한 캣피쉬 튀김의 질감을 잊을 수가 없다.ㅜㅜ 역시나 드럭스토어와 상점에서 모두 케이준 프라이 믹스를 팔고 있었다. 튀김옷도 옷이지만 테크닉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돌아서면 생각나는 맛, 씨푸드 검보. 해장에도 좋은 그 맛!


프라이드 오이스터, 캣피쉬, 슈림프 플래터.


비오는 저녁, 프리저베이션 홀 공연 기다리는 줄

어디서 재즈 공연을 볼까 아주 잠시 고민하다 지나가다가 궁금해했던 Preservation Hall로 향함. 밤마다 공연이 세 번 정도 진행되는데 이 날 공연은 15달러였고 아슬아슬하게 앞공연 줄이 잘리는 바람에 1시간을 기다렸다. 20달러면 안 볼까 했는데 만약 그랬다면 큰 실수를 하는 셈이었을 것이다.
공연장은 일부러 허름하게 남겨놓은 옛술집같은 분위기였다. 곳곳에서 재즈 뮤지션을 담은 그림 혹은 사진 작품들이 걸려 있고, 회색 벽은 페이트칠하기 직전 상태로 마치 폐쇄된 공간의 느낌을 안겨줬다. 밖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든 간에 이 비밀스런 공간에서 음악을 즐기겠다는, 그런 낭만적 마법을 주는 듯한 공간. 벤치가 4줄로 놓여있어 일찍 입장한 사람들은 벤치에 앉을 수 있지만 자리가 없으면 알아서 어딘가에 서거나 바로 연주자 코앞 바닥에 앉을 수도 있다. 음료는 팔지 않고 공연 중 사진 촬영은 안 된다. 우리가 본 공연은 '웬델 브루니어스가 리드하는 프리저베이션 홀 마스터스' 밴드였다. 트럼펫, 트럼본, 테너 색소폰, 베이스, 피아노, 드럼 셋으로 '마스터'란 말이 어울리는 나이 지극한 할아버지들이 하나둘 착석. 비교적 귀에 익숙한 클래식 재즈곡들을 연주하는 올드스쿨 재즈 밴드였다. 거기에 웬델 브루니어스 할아버지가 각 연주자들을 데리고 만담하는 시간까지 더해져 더 정겨운 시간이었다."쟤가 트럼본도 잘 부는데, 사실은 세계에서 제일 노래를 잘 부른다는 숨은 가수라고." 그렇게 일어난 트럼본 할아버지의 노래는 음, 세계 최고는 아니었고...뭐 이런 분위기.

능숙하게 악기를 다루면서 흥까지 돋우는 모습들에 연륜이 묻어나왔고 그야말로 1시간이 바람같이 지나갔다. 재즈 공연이라기보다는 어쩌다 이상한 재즈 나라 구멍에 빠져 혼을 빼앗긴 듯한 그런 마법의 시간이었다. 첫날부터 제대로 올드스쿨을 맛본 바람에 다음날 젊은 재즈를 들을 때 어느 정도 기준이 생겼다는 장점이 있었다.


뮤지션과 바로 친근해질 듯한 소박한 분위기의 프리저베이션 홀. 공연 중엔 촬영 금지.

버번 스트리트로 나오니 사방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프렌치 쿼터하고도 버번 스트리트가 재즈 공연의 중심이었던 시절이 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닌 게 분명하다. 반짝이는 목걸이를 두르고 한 손에 맥주를 든 백인 관광객들이 신나하며 돌아다니는 거리였고 술집에선 그들을 유혹하는 본조비 커버나 지루한 컨트리 뮤직 라이브가 들려온다. 대개는 못 들어줄 정도의 라이브였고 오로지 싱어롱을 원하는 만취객들을 끌기 위한 전략인 듯했다. 미국 대다수 주에선 길거리에서 술마시는 게 불법이지만 뉴올리언즈는 아니다. 모두 커다란 캔맥주나 생맥주 컵을 들고 거리를 오간다. 그러고 보니, 이런 술먹는 거리는 한국에서 낯선 풍경이 아닌데?ㅎㅎ 거리 술문화 청정구역 뉴욕에서 왔더니 이젠 이런 모습이 신기하다. 취객들이 휘청거리는 거리가 얼마만이던가. 유흥가에 다름없는 버번 스트리트 구경은 오늘까지.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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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ixty-nine.tistory.com/307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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