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금]공원에서

in #kr-story7 years ago (edited)

나무 그늘이 짙은 공원 입구 벤치에 노인 세 분이 앉아 있다. 그 앞으로 멋지게 차려입은 아가씨가 걸아간다. 다리가 참 미끈하고 예쁘다.

노인 1 : 뭘 그리, 뚫어져라 쳐다봐?

노인 2: 이뻐서 그랴~

노인 3: 주책 빠진 늙은 이...

노인 2: 보는 게 나쁜가? 그 아도 이쁜 거 자랑하려고 내놓고 다니는 거야!

노인 1: 늙은이 보라고 내놓고 다니는 줄 아남? 제 서방이나 애인 될 남자에게 잘 보이려고 그러지....

노인 2: 꽃밭에 꽃도 젊은이 늙은이 가려서 보라고 피는 줄알아? 이쁜 거 즐길 줄 아는 사람 다 보라고 피는 거야.

노인 3: 자네 눈은 그런 거나 밝히는 눈이니까~

공원 안 으슥한 곳, 한 청년이 바위 턱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노인들의 입방아에 올랐던 그 아가씨가 다가간다.

아가씨: 오빠~ 일찍 왔어?

청년: 아니... 방금

아가씨: 근데 왜? 이런 곳에서 보자 그래?

청년: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아가씨: 무슨 말?

청년: 이리 와,

아가씨: 어머나!

청년은 아가씨를 덥석 끌어 앉는다. 이어지는 포옹과 긴 키스...

청년: 이것이 너와 나의 마지막 키스야.

아가씨: 무슨 소리야? 그게?

아가씨는 눈을 크게 뜨고 청년을 본다.

청년: 너와 나는 끝이라고, 나... 다음 주에 결혼해!

아가씨: 무슨 소리야? 지금 헤어지자는 소리야?

청년: 그동안 즐거웠다. 너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아가씨: 나 사랑한다 했잖아, 그래 놓고 결혼은 다른 여자와 한다고? 난 그럴 수 없어 절대로 못 헤어져, 절대로~

청년: 사랑과 결혼은 별개야, 사랑은 너와 나만의 감정이고,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문제야. 너는 그것도 모르고 살았니?

아가씨의 얼굴 위로 눈물의 소낙비가 쏟아진다.

아가씨: 어떻게 그래? 그동안 쌓은 정을 그렇게 단 칼에...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청년: 나도 괴롭다. 조용히 끝내자.

아가씨: 단물 다 빨아먹고 나니 이제 싫증 났다. 이거지~? 이 잘난 새꺄!

청년: 이 계집애가 그냥! 야~ 너한테 단물 이란 게 있었냐? 숱하게 차버린 아 새끼들한테는 단물 안 빨리고 나한테만 빨렸어?

아가씨: 두고 봐 나, 당하고만 있지 않아. 혼인 빙자 간음으로 고소할 거야, 그 결혼식장 발칵 뒤집을 거야 두고 봐 개새끼야...!

청년: 너 까불면 내 손에 죽는다. 지금 죽여 버릴 수도 있지만, 오늘은 살려 보낸다. 그 고운 낯바닥에 주름살 패일 때까지 살고 싶으면 얌전히 굴어 알았냐?

청년이 떠난 후, 혼자 남은 아가씨 폭포 같은 눈물을 쏟는다. 다시 공원 입구. 세분 노인들 앞으로 걸어 나가는 아가씨, 아가씨 뒷모습을 바라보는 노인들.

노인 2: 저 아가씨한테 나쁜 일이 생겼나 봐,

노인 1: 어찌 알아?

노인 2: 기가 빠졌어, 싱싱함이 없어, 발랄함이 사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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