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kr-pen4 years ago (edited)



  1. 연남동에 위치한 봄식당을 다녀왔다. 가게 이름처럼, 코스요리 하나하나가 몸 안에 봄을 집어넣는 듯한 - 아주 오랜만에 먹는 맛있는 양식의 식사를 했다. 아, 교정 교열을 공부하면서 '~에 위치한' 같은 영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표현은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쓴다. '가졌다(have), 요구된다 (require), 하는 중이다 (be-ing), 위치하고 있다 (be located in), 가장 - 중의 하나이다(one of the most) 는 전부 영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표현이다.

  2. 여하튼 봄식당엔 브레이크 타임이 없다. 셰프님 혼자 모든 코스요리와 서빙을 도맡아 운영하시는데, 그래서인지 가게 어디든 그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어보였다. 봄식당에서 그의 음식은 3코스로 준비된다. 당근스프, 리코타 치즈 샐러드, 계절 파스타, 그리고 메인디쉬인 닭가슴살/이베리코/돼지 안심/채끝 스테이크. 평소 따듯하고 영양가 높은 류의 스프를 좋아하는 내게 당근스프와 봄의 싱그러움이 가득 담긴 계절파스타는 최고였다. 내게 좋은 식당을 꼽는 기준이 하나 있다면, 부모님을 모시고 오고 싶은가 하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라면 최애 식당으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으니까. 봄이 완전히 지나가기 전에 가족을 봄식당에 데리고 가고 싶다.

  3. 며칠간 의미부여와 타이밍의 연계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 일련의 상황들이 발생했었다. 사실 나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내가 하는 일에 부합하는 의미성과 타당성을 찾아낼 사람축에 속한다. 그렇기에 성찰의 끈을 부던히도 놓지 않으려 애를 쓴다. 문제제기식 교육, 즉 무언가에 대해 사유하고 비판하는 식의 교육을 받고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부족한 어른이 된 지금, 자기성철을 그 무엇보다 갈망한다. 내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아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늘 내가 하는 행위에 어떻게든 의미를 찾아내는 의지를 건강하고 선한 에너지로 쓸 방법을 궁리한다. 자칫하면 아집으로 잘못 변형될 수도 있지 않은가.

  4. 공부하면서 영어, 일본어 영향을 받은 표현들을 나도 모르게 남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다시 한번 '글쓰기'에 힘을 주고 있다. 보통 쓰면서 알게되는 나의 습관들 중 하나는 의존명사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띄어쓰기가 참... 거시기하게 어렵다. 그런데 이 띄어쓰기는 전 국립국어원 원장님도 어렵다고 하신 부분이라고 하니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하고..

  5. 바르게 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진심을 담아, 명료하게 써야 한다. '글다듬기의 기술' 김혜원 작가가 읽는 사람이 문장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게 하는 것이 글을 쓰는 것이 작가의 책임이자 배려라고 한 말을 듣고 나서 심장이 벌렁댔다. 읽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멋대로 글을 쓰고 위안을 삼아온 철없는 나의 지난 글들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읽는 사람을 떠올리며 가장 긴 시간 집중해서 쓴 마지막 글은 '어젯밤, 파리에서' 이후 파리의 고서적 기획 글이었다. 2020년 겨울이다.


    2021.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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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미완성적 어른이 되지만 그 과정에 따라 전혀 다른 어른이 되는 것 같아요.
글에서 느껴지는 레일라님은 사유하고 비판하는 교육 보다 더 중요한 교육을 받고 자란 것 같네요. (˘⌣˘*)
제가 본 누구보다 배울게 많고 멋지게 성장한 어른 같아요.
(๑•̀ㅂ•́)و✧

아직 어른이 되긴 한참 모자른데, 그 자체도 좋다고 생각해요.^^ 교육에 대해서는 제가 원하는게 너무 많아서 계속 같은말 되풀이 하는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마음에 담긴 식당은 마음에 남는 글과 같을 때가 있네요!
라라님 글처럼요~!^^

추천합니다.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조리하는 식당은 공유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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