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마, 엄마의 아들
엄마는 평생 모든 역할을 해낸다. 맞벌이로 일을 하면서도 아빠의 아침 저녁을 책임졌고 나와 동생이 좋아하거나 필요로 하는 음식을 항상 해주며 15년 넘게 친정 엄마의 반찬까지 해서 나른다. 교사로 30년을 재직하면서도 했던 일, 퇴직 후에도 여전하다. 착하지만 무딘 아빠는 이제서야 주변 친구들 중에 따뜻한 밥과 정성 어린 반찬들을 대접받는 남편이 본인 뿐인 걸 알아챘다. 시부모에게까지 아빠가 원한 것보다 더 효를 행했고 친할머니는 자신의 딸보다 며느리를 더 이뻐하셨다. 엄마는 언제나 "왜 그렇게까지"라고 생각이 드는 일에 뛰어들고 결국 해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외할머니 모시느라 매일 친정에 가서 자면서도 식구들 밥까지 챙긴다. 나에겐 외할머니도 소중하지만 엄마의 희생을 더이상 바라보기 힘들다.
나는 할 수 있을까, 내가 남자인 걸 떠나서 하루에도 수십 번 갈아야 하는 기저귀 수발까지 하면서 엄마를 또는 아빠를 그 상황에서 엄마처럼 모실 수 있을까. 엄마가 해내고 있으니 그 일을 도와야 하는 이모들과 삼촌은 조금 힘겨워한다. 할머니를 요양시설로 보낼 수는 없다고 다들 생각하는 듯 하지만, 엄마가 없었다면 내가 볼 때는 요양 시설로 가기가 쉬우셨다. 외할머니도 교사, 외할아버지도 교사, 엄마 아빠도 전부 교사 생활을 하셨다. 네 분 중에 세 분은 교사라는 역할에 충실하시고 나머지 역할은 엄마처럼 크지는 않았다. 엄마는 교사였고 엄마이고 며느리이자 집안의 큰 딸이다. 그냥 도울 뿐이다. 이제 더이상 엄마가 무거운 건 들지 않아도 되도록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할머니가 가장 사랑하는 큰손자에게 의지하실 수 있도록 나는 힘들지 않은 걸 돕고 엄마는 계속 헌신한다. 엄마가 닳을까봐 하루하루가 애달프다. 하지만 내가 애달프듯이 엄마도 자신의 엄마를 보며 애가 달다.
사랑이 뭐냐고 묻는다면 늘 나를 설레고 기쁘게 하는 쪽보다 늘 나를 미안하게 만드는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어찌 다른 종류의 사랑과 비견될 수 있겠냐만은 이제껏 나에게 희생한 가족들마저 잊을 정도로 뜨겁고 맹목적인 애정은 타인에게 못 가질 것 같다. 미래에 나를 사랑하게 되고 내가 사랑할 사람과 이런 부분까지 서로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부모님도 나도 노인이 되어간다.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처음부터 노인은 아니었다. 우리 개개인의 인생은 소중하고 찬란하지만 그 하나하나의 삶은 혼자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다. 나는 결국 이렇게 배웠고 이런 사람이 되었다. 왜 젊을을 즐기지 않냐고 친구들이 하나같이 묻지만 나도 즐기고 있다. 부모님이 편해야 나도 즐거운데 착한 척이 아니라 평생 이런 마음가짐을 보고 배워서 이렇게 되었는데 이제는 바뀌고 싶지 않다. 이런 내 정서에 많은 부작용도 있다는 걸 알기에 앞으로 삶의 밸런스를 어떻게 조정해 가야 할지도 요즘은 생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