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행불일치남자입니다

in #kr-newbie7 years ago

나는 정년을 앞둔 60대 할아버지들과 근무를 한다. 하루 이틀도 아닌 두 달 동안 할아버지들과 생활하는 것은 낯설고 불편한 일이다. 대략 40년의 터울. 내가 40년의 차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대답은 뻔하다. 같은 또래들 사이의 '차이'도 존중해주기 어려운데 내가 어떻게 할아버지의 삶을 존중해줄 수 있을까.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존중해주지 못하는 미성숙한 친구들에게 '차이'는 곧 갈등이고 짜증이다. 미성숙한 친구들은 본인의 세계만이 '진짜 세계'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미성숙한 '자신'를 반성하면서 이 글을 써본다.

(1) 첫번째 할아버지 A

A는 귀찮은 심부름을 내게 끊임없이 시킨다. "메일 좀 확인해봐라." "지하실에서 서류 좀 찾아봐라." "커피 좀 타다 줘라." 나는 A의 반복된 심부름에 혈압이 올라간다. 책상에 바른 자세로 앉아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탐독하는데 "메일 좀 확인해봐라"가 들려온다. 내 세계는 와장창 무너져내린다. 나는 중얼거린다. "메일도 혼자 확인할 줄 모르시나. A가 스스로 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A의 목소리는 내 짜증이다. 조건반사다.

사실, A는 내게 귀찮은 심부름을 시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5년 전, A는 다리의 신경이 마비되서 1년동안 침대에 누워있었다. 다리의 신경이 회복된 이후에도, A는 평생을 절뚝절뚝 걸어다니셔야 한다. 30분을 걸어다닐 수 없는 고장난 다리다. 나는 A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알고 짜증을 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친구들에게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고 소리치지 않았던가. 말과 행동이 같아야 멋있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나는 기쁜 마음으로 A의 심부름을 하기로 다짐한다. 이쁜 미소와 함께. 하지만 삼일 후, 나는 미소가 아닌 썩소를 짓고 있다. "또.. 또... 또야.. 진짜... 제발. 그만 좀...." 나는 A의 목소리를 듣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본다.

(2) 두번째 할아버지 B

B는 목소리가 천둥처럼 크다. B가 내게 말을 거는 순간, 나는 번개를 본 것처럼 몸을 찌그러트린다. 십만 개의 세포가 순식간에 폭팔한 거 같다. B와 같이 생활하다가는 '심장마비'로 죽을 거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천둥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 누가 천둥번개 앞에서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천둥번개를 맞노라면 나도 B에게 천둥번개 같은 대답을 쏴주고 싶다. "귀 떨어지겠어요!! 목소리 좀 낮춰주세요. 제발!!"
(태어나서 처음으로 귀가 처음으로 이상해졌다. 23년 만에 안과에 다녀와서 귀진찰을 받고 왔다. 다행히 귀에 이상이 없었다.)

사실, B도 목소리를 천둥처럼 낼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B는 노화로 인해 청각이 둔감해졌기 때문이다. 청각이 둔감해서, B는 자신이 타인이 불편할 정도로 큰 목소리를 내는지 모르신다. B의 천둥 같은 목소리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다. 나는 B의 천둥 목소리를 졸음 방지용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천둥소리를 듣고 몸을 찌그러트릴 때면, 세포의 생성과 죽음의 과정을 음미해보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삼일 후, 내 다짐은 잊힌다.

"누구한데 전화온거야?"
"(깜짝) "경무과에서 전화왔습니다."
"뭐라고?"
"경무과에서 전화왔습니다!"
"뭐라고?"
"경무과에서 전화왔습니다!!!"

표정이 찌그러진다. 귀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심장도 아프다.

(3) 세번째 할아버지 C

C는 방귀쟁이다. 당신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쉴 새 없이 방귀를 뀌신다. 2달 동안 마셨던 방귀 양이 23년 동안 마셨던 방귀 양보다 많은 거 같다. 질식사로 죽는다면 C가 책임져야 한다. 가끔 글을 쓰다가 공기에 가해진 C의 방귀 때문에 연필심이 부러진다. "방귀 좀 적당히 뀌시지. 정말 사람 배려 안 하시네." 나는 C의 솔직뻔뻔한 방귀에 분노한다. 심지어 상황실에서 창문과 문을 함부로 열 수가 없다. 환기시킬 수 없는 구조다. 그렇게 나는 밀폐된 공간에서 질식되어간다. 그나마 방귀 냄새가 지독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냄새가 지독했으면... 진짜로... 상상이 안된다.

사실, C도 방귀를 솔직뻔뻔하게 뀔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C는 장 수술했을 정도로 장이 고장났다. C는 솔직뻔뻔한 무한 방귀를 통제할 능력을 잃었다. 방귀를 통제할 능력을 잃은 C의 마음이 어떠셨을까. 나는 상상해본다. 나도 언젠가 할아버지가 될 텐데. 젊은이들이 '노화'로 신체를 감당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경멸한다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삶의 의미를 잃을꺼 같다. 나는 C의 방귀를 미래 여자친구의 방귀로 생각하기로 했다. 방귀 소리가 귀엽고 애교스러웠다. 하지만 삼일 후, 내 연필심이 부러지고 만다. "제발요... 사람 살려요."

(4)

만약 나와 같은 상황을 겪었던 친구가 할아버지들이 밉고 짜증 난다고 내게 말했다면 나는 그에게 화를 냈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인 노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언젠가 너도 노인이 되고 약자가 될 거라고. 네가 노인이 됐을 때, 젊은이들이 네 고장난 신체를 경멸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상상을 해보라고. 나는 친구에게 정의로운 사회, 아름다운 사회 운운하며 지적질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 나는 친구들에게 아름다운 말, 멋잇는 말을 설파하면서, 정작 본인은 그 말을 지키지 못하는 찌질이. 언행불일치 남자다. '000'라는 언행불일치 남자를 마음껏 비웃어도 좋다. 다만 나를 비웃으면서 당신은 약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000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 좋겠다. 나도 언행일치 남자가 될 때까지 끊임없이 반성하고 노력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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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면 이제 저희 아버지 뻘인데 yuoyster 님 입장에서는 세대차이가 많이 나시겠어요
마냥 나이 드신 분들은 아니랍니다.. 누군가의 아버지라고 생각하시면 ㅎㅎ
근데 그게 잘 안돼죠 ^^ 저도 아빠가 답답할 때가 많은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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