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이 쓴 일기 #3

in #kr-newbie7 years ago

스물넷이 쓴 옛날 이야기1(역사이야기라고 저는 주장합니다)
https://steemit.com/kr/@yuoyster/wagdg

스물넷이 쓴 옛날 이야기2(역사이야기라고 저는 주장합니다)
https://steemit.com/kr/@yuoyster/2

2016년 9월 30일에 쓴 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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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9.24(토) 21:00

이번주는 힘든 근무가 많았다. 오늘도 05시에 출발해, 21시가 돼서야 부대에 도착했다. 힘든 근무를 마친 부대원들의 표정은 해맑았다. 기말고사를 끝내고 술 마시러 가는 대학생들의 표정처럼. 왜냐하면 내일은 '외출'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 동안 고생했다는 인사말이 오고간다. 그 순간, 행정반에서 방송이 나온다. 백남기씨의 건강이 악화됬다고. 비상사태라고. 그래서 '외출'이 취소 됐다고. 내일도 07시에 출발해 21시에 부대로 복귀하는 근무가 예정되어 있단다. 우리는 모두 얼음.

2016.9.25(일) 21:00

부대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오늘 오후, 백남기씨가 세상과 이별해서가 아니다. 이로 인해, 내일도 '외출'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행정반에서 방송이 나온다. 내일 06시부터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근무가 예정되어 있다고 말이다.

나도 예상치 못한, 연속된 근무에 당황했다. 일주일, 168시간 중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9시간. 도서관에서 읽을만한 책을 뒤적거리고, 노트에 적은 글을 컴퓨터로 정리하는 시간. 이 소중한 시간이 사라졌다. 안타까웠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이 짜증나진 않았다. 짜증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경찰이 물대포를 백남기씨에게 쐈고, 그로 인해 백남기씨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경찰이 잘못했으며, 백남기씨의 죽음을 경찰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의무경찰로 군복무 하기로 선택한 '나'. 21개월 동안 경찰인 '나'는 백남기씨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힘든 근무는 내 선택의 결과이자 책임이며, 이를 불평없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TV앞에서 부대원들이 신세 한탄을 하며 짜증을 낸다. 나는 슬금슬금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사과하지 않는 경찰을 비난했다. 백남기씨의 죽음이 안타깝다고 중얼거렸다. 그 순간, 부대원들이 연예인 보듯이 나를 쳐다봤다. 목덜미가 빨갛게 익었다. 나는 '빨갱이'가 됐다. 부대원들이 나와 백남기씨를 욕하기 시작했다.

"백남기가 사람이냐? 돼지지?"
"사람이 사람 말을 알아 들어야 사람이지 걔는 사람 말은 안듣자나"
"사람이 죽은게 아니니 슬퍼할 필요가 없어"
"빨리 죽지, 왜이리 늦게 죽어서 우리를 힘들게 하냐"
"경찰 말을 안 듣는 새끼들은 다 총으로 쏴버려야돼"

나는 졌다.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슬금슬금 그 자리를 떠났다.

2016.9.26(월) 04:20-08:00

새벽 04시 20분에 일어나서 06시까지 광화문으로 갔다. 하지만 운좋게도, 07시쯤에 갑자기 부대로 복귀하라는 연락이 왔다. 경찰이 요청한 백남기씨의 부검 영장을 범원이 기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부대는 '09:00-18:00 외출'을 부여 받았다. 부대원들은 소리를 지르고 서로 끌어안았다. 나는 부검 영장이 기각되었다는 말에 미소를 지었다.

2016.9.26(월) 09;00-18;00

외출 때, 나는 '나'를 빨갱이라고 부르는 부대원들과 축구를 했다. 같이 소리지르고 땀 흘렸다. 하이파이브도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이 했다. 축구가 끝나고 맥주도 마셨다. 눈을 마주치며 함께 웃었다. 정말 행복한 순간이였다. 내 머릿속에 백남기씨는 없었다.

2016.9.26(월) 18;00-21:00

외출을 복귀한 우리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22시부터 다음날 08시까지 서울대 병원에서 거점 근무가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순간, 나와 함께 웃었던 부대원들은 백남기씨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증오의 강도는 거칠었다. 내가 차마 글로 쓸 수 없을 정도로.

처음이다. 온 몸에서 전율을 느꼈다. 이 순간만큼은 의무 경찰에 입대한 것, 이런 사람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경찰 제복을 입고 있었다. 아니! 경찰 제복을 입어야 했다. 경찰 제복을 내던져 버릴 용기도, 백남기씨를 모욕하는 이들에게 "닥쳐"라고 소리칠 용기도 없었다. 거울을 쳐다봤다. 독수리 옷을 입은 못난 청년 한명이 보였다.

2016.9.26(월) 21:00- 9,27(화) 08:00

서울대학교 병원에 가는 길.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솔직히 슬프진 않았다. 다만, 내 자신이 미울 뿐이다.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만약, 내가 경찰이 아닌 일반 시민이라면, 백남기씨의 장례식장에 방문했을까? "아니". 경찰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고인의 죽음을 책임지라는 시위에 참여했을까? "아니". 나는 뭘 했을까. 아마 친구에게, 형에게, 부모님에게 세상이 이게 뭐냐고 분노했을 것이다. 그 이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딱 이정도의 사람이다.

서울대 병원 입구는 엄숙했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시민들이 무서웠다. 혹시 나에게 부끄럽지 않냐고 말을 걸까봐 말이다. 아마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을 것이다. 대답을 하면 나는 징계를 받을테니까. 나는 지금도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마음 속에 일어난 거친 폭풍. 자괴감. 부끄러움. 안도, 분노 등의 감정이 소용돌이 치는 순간. 도저히 한두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내 마음 상태를 잊지 못한다.

근무 시간을 제외하면 우리는 비좁은 경찰 버스에서 잠을 자야 한다. 그날 새벽은 에어컨 없이 잘 수 없을 정도로 더웠다. 그런데 시민들의 민원으로 우리는 에어컨을 킬 수 없었다. 나는 더위와 모기와의 전쟁을 치르며 잠을 설쳤다. 어느새 짜증이 솟구쳤다. 헉. 내 모습이 충격적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짜증은 안낼줄 알았는데. 이 상황을 불평없이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다. 나는 위인이 아니였다

2016.9,27(화) 20:00

나는 저녁을 굶었다. 의도적으로. 취지는 백남기씨의 죽음을 슬퍼하고 유가족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공감하기 위해서. 나도 고통을 느껴야만 했고, 느끼고 싶었다. 물론, 내 단식이 백남기씨와 유가족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질없는 행위다. 하지만 나는 '나'를 위해서 저녁을 굶어야 했다. 그냥 그래야 될꺼 같아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박관념에 갇힌채로 말이다.

내일, 경찰청이 나에게 서울대병원에 가라고 한다면 나는 불평 없이 갈 것이다. 명령을 거절할 용기가 없기 때문에. 다만 근무를 서면서 기도할 뿐이다. 시민이 내 방패를 향해 돌진하지 않기를 말이다. 돌진하는 시민을 위해 길을 비킨다면, 경찰의 대열이 흐트려지고 경찰 누군가는 다칠 것이고, 나는 징계를 받을 것이다. 돌진하는 시민을 막아선다면, 그 시민도 다치고, 나도 다치지만, 특별 휴가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괴리되는 고통을 느낄 것이다. 기도밖에 방법이 없다. 제발. 제발. 제발. 나에게 선택의 순간이 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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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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