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언슬조30화. 퇴사 후 프리랜서 워킹맘이 된 그녀
*잘 나가던 광고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29세에 최연소 차장 타이틀을 달았던 그녀. 출산과 동시에 퇴사! 육아와 살림에 전념하며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데... 화려한 커리어를 모두 접고 워킹맘 프리랜서로 새출발을 한 황작가. [은밀하고 대담한 인터뷰 2탄]그녀의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본다.
-현재 아이는 몇살인가요? 전업하신지는 몇년 되었나요?
결혼을 한 지 십여년이 되었고, 지금 5살, 7살 이렇게 아이가 둘이에요. 지금 광고, 영화 스토리보드 작가(콘티작가) 로 일한 지 4년 정도 되었고, 전업을 결심하고 준비한 기간까지 합치면 8년 정도 됩니다.
-광고계에서 굉장히 커리어를 잘 쌓아오셨는데, 현재는 전업을 하셨잖아요. 커리어를 포기하기가 아깝지 않으셨나요?
당연히 처음부터 전업을 할 생각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것은 아니었어요. 저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선을 보고 빨리 결혼을 했고, 자연스럽게 아이를 갖게 되면서 주어진 상황이 제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어요.
-그러면 결국 출산과 아이가 전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인가요.
네 아이 때문이었어요. 왜냐하면 회사가 집에서 굉장히 멀었는데, 임신했을 때 다니기가 매우 힘들었어요. 밤도 많이 샜고, 바빴고, 일도 너무 힘들었구요. 그런데 가까운 곳으로 이직을 고려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배 부른 몸으로 면접을 보러 다닐 수는 없으니까요. 어느날 하혈을 했고, 먼 거리에서 택시 잡아서 앰뷸런스 등 달고 삐용 삐용 하면서 병원으로 간 적도 있었어요. 아, 뱃속의 아이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더라구요.
결혼 전후가 변하지 않게 내 일을 잘 끌고 가고 싶은데, 아이 낳아서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이 이렇게 힘든데. 당시엔 아이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물론 복직을 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어요. 아이 학원 돌리고, 도우미 아주머니 쓰면서 이 일을 계속할 수도 있었을 거에요. 그러면 지금까지 일을 했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아닌거에요. 제 스스로 일에 치여서 지쳤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럼 지금 프리랜서 콘티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한 건,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이여서 선택하신 건가요?
네, 그런 이유가 컸어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을 때, 광고 피디인 동생이 이 일을 소개해줬어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고, 프리랜서니까 내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구요.
당시엔 무모하게도 이 일과 아이 키우는 일을 둘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사실 쉽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무모했으니까 덤볐던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웃음)
-프리랜서 일도 결국 육아와 병행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던 거네요.
네, 프리랜서는 스케줄도 불규칙하고, 하나도 정해진 게 없고 따라 갈 수 있는 길도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닌 거에요. 클라이언트를 내가 직접 찾아야 하고 보수를 받지 않더라도 포트폴리오를 쌓아 둬야 했죠. 그런 상황에서 당당하게 내가 이 일 한다고 말하지도 못하구요.
-그럼 도우미 아주머니를 쓰셨나요?
아니요, 전 도우미 아주머니를 쓰지 않았습니다. 시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었는데 아주머니를 쓸 명분이 없는 거에요. 회사를 다니고 있는 상태가 아니니 나 그림 공부한다고 시부모님한테 매일 아이를 맡길 수도 없구요. 그러다보니 콘티 작가 일이 자리잡기 전에는, 아이를 재우고 짬짬이 도서관에 나가서 그림 연습을 하는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둘째를 가졌을 때, 정말 이 일을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앞이 깜깜했고, 여전히 작가로써 자리잡지는 못했구요.
회사 다니는 엄마들도 그렇지만, 프리랜서 엄마도 절대적으로 도움이 필요해요. 주변의 도움이 없으면 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콘티 작가로써 처음으로 일을 따서 하기까지 4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작가로써 자리를 잡고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친정부모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리고 저는 엄마들의 네트워크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같은 또래 엄마, 또 아이 친구 엄마들. 같이 키우다 보면 서로 아이를 봐주고요. 이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럼 포기하고 싶었을 때 그 끈을 놓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너무 아까웠어요.
사실 주부로써의 일도 매우 훌륭한 거에요. 아이 키우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고 하잖아요.
저는 주부로 남기가 싫었던 게 아니라, 그것도 놓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선택한 거에요.
아이도 내가 키우고, 살림도 하고, 그러면서 내가 조금만, 조금만 더 노력하고 시간을 좀 더 주면, 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제가 공부한 거고, 전문성을 갖고 있는 것이잖아요.
제 자신에 대한 미련이 너무 많았어요.
결혼한 후에 일을 그만둘까라는 생각도 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왜 일을 그만둬야 할까?
아이를 키우는 게 내 목적이었을까?
전업주부로써 이 가정을 화목하게 만드는 게 정말 내 꿈일까.
하고 생각을 해 봤는데, 아니었던 거에요.
이것은 상황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지 제 선택이 아니었던 거에요.
-워킹맘으로 열심히 육아와 일을 병행하고 계신 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저희 어머니가 해준 말씀이 기억나요.
"괜찮아, 안해도 돼. 애들 좀 굶기면 어때. 일 좀 못하면 어때. 천천히 하면 어때. 하기 싫으면 하지 마.
하고 싶으면 해. 그리고 하고 싶어서 할 때는, 잘 생각을 해."
사실 일을 포기하고 결혼을 하고 적응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너무 다른 환경이었고 제가 몰랐던 제 자신을 많이 뒤돌아보게 되었어요. 늘 앞서가야 하고 성공해야 하고, 아이도 잘 키워야 하고, 그런 강박에 시달렸던 것 같아요. 이젠 내려 놓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천천히 가자,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간다고 안 아는 건 아니잖아요.
어떻게든 조금씩이라도 가면 되는 거잖아요.
아이 키우는 9년 동안 제 스스로를 다스리는 방법은, 천천히 조금씩 가자, 였어요.
전 우울증이나 공황도 있었고, 거기서 아직 완전히 회복을 못했지만, 이만하면 잘 살지 않았나,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에 대견한 거에요. 처음에는 보수도 못받고 일했지만, 지금은 작가로써 보수도 받고, 내 재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나를 써주고. 이렇게 조금씩.
내려놓는 게, 롱런할 수 있는 길이구나 하는 걸 많이 배웠어요. 천천히, 조금씩 가다 보면, 지금 힘들어하시는 많은 분들도, 분명히 더 좋은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