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팀]-7 『게놈 익스프레스』 지적인 탐험, 일상의 서언이 되다.
조진호, 『게놈 익스프레스』(고양; 위즈덤하우스, 2016년), 21,000원, 4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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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서 '경이로움'이라는 감정을 일게 하는 사건은 많이 많습니다. 놀라운 자연을 바라볼 때, 아름다움을 경험할 때, 추함을 경험할 때, 잠잠한 묵상에 잠겨 깊어질 때 등. 저 같은 경우에는, '경이로움' 혹은 '어찌하지 못하는 놀라움'을 '깨달음'과 함께 느낍니다. 완전한 깨달음일 때도 있고, 일부만을 깨달은 경우도 있고, 하나도 모르겠는데 그냥 놀라운 때도 있죠. 이럴 때 묘한 쾌감, 즐거움, 행복, 당혹스러움을 느낍니다. 제가 좋아하는 감정입니다. 주로 철학 - 교육학 - 신학에서 자주 느끼곤 하는데, 제게 익숙한 분야이다 보니 더욱 빈도수가 높습니다. 우리나라 교육 범주상 '이과'라고 칭하여지는 경우에, 위와 같은 감정을 느끼기가 정말 힘듭니다. 와중에, '생명과학'이라는 범주에서만큼은 많은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진화'와 '유전'은 특히나 큰 감동을 주는 범주라고 하겠습니다. 한때는 생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제는 순수 유흥거리 재료로 그만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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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경우 그러하겠듯이, 제가 생물학과 처음 만난 계기는 '학교'입니다. 정확하게는 '정규 교육과정' 중 과학 과목에 포함된 목차에서 만났습니다. 다음은 방과 후 수업이었습니다. 해부 수업을 하면서 느끼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학교에서만 만나고 마는 존재가 생물 공부였습니다. 책을 읽다 보니 '진화'와 '창조'의 오묘함을 알아가는 여정에 들어섰습니다. 어쩌다 보니 '리처드 도킨스'가 쓴 책을 손에 들었습니다. 여러 번 시도를 했으나 다 실패하긴 했죠. 『확장된 표현형』, 『지상 최대의 쇼』, 『이기적 유전자』 순서로 시도했습니다. 정말 얼토당토않는 기가 막힐 순서요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텍스트는 포기했어도, 기사라든가 영상이라든가는 꾸준하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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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왜 생물학이요, 생물학에서도 진화와 유전에 그렇게 빠질까요. (제가 걸은 여정이 생물학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얕아서 다르게 표현하고 싶으나 할 어휘가 생각 안 나는 관계로 생물학이라고 하겠습니다.) 저 나름대로 '의미'를 창조해낼 가능성이 다분한 좋은 재료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생물이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지는 순간까지. 모든 순간이 신비했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라는 놀라움 가득한 질문에서, "내가 아는 지식과 새로운 정보가 어떻게 조화되지? 모순되지 않나?"라는 질문을 거쳐 "그럼 대체 나는 뭐지?"라는 질문까지. 착실한 기반 재료요 도구가 되기에 적합했습니다. 법률 스님을 당혹감에 빠뜨린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저 스스로가 답할 수 있도록 '기원'과 '과정'을 전해준 학문이었습니다. (물론, 생물학만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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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런 식으로 알고서 질문하고 안 데서 답을 찾으려 했다면, 이 책은 저와는 조금 다르게 질문하고 답을 찾으셨던 분을(못 찾은 분도 있으시죠) 소개하고 그 과정을 소개합니다. 많은 질문, 많은 사람, 많은 감정을 녹여냅니다. 정말로 순수한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때로는 경쟁심에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누군가를 정말로 존경하기도 하고, 스스로 발판을 만들기도 하고, 누군가가 만든 발판을 빌려서 더 멀리 바라보기도 하고, 길을 잃기도 하고, 새롭게 개척하기도 하고, 성취하기도 하고, 실마리만 던져놓고 답에 도달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거인의 어깨를 짚고서 더 높이 뛰어 넘"는(64) 여정의 연속입니다. '유전자의 실체를 벗기는 가장 지적인 탐험'이라고 하던데, 이 탐험을 가능케 한 원동력은 '질문'과 '집착'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남'도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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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부분도 많겠지만, 『게놈 익스프레스』에서 소개하는 '유전자 벗기기 여정'에서 주요한 열쇠이자 자물쇠는, 다양한 학자보다 선재한 학자가 잡던 엷은 줄 하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책의 결론은 후성유전학으로 이어집니다. 한 발자국만 더 내디디면 '진화'라는 개념이 있는 장소로 나아갑니다. 후성유전학으로 가는 길에서 마주한 장애물은 '유전자에 부과한 지나친 무게감'이었고, 이를 타파하고서야 '창발성'이라는 개념과 함께 나타났습니다(사실과 책이 말하는 내용이 제가 말한 내용과 얼마나 다를는지 모르겠으나 제가 이해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이 책의 내용에서는) 슈뢰딩거와 볼츠만이 나누는 내용에서 '유전자에 부과한 지나친 무게감'을 비판적으로 지적합니다. 학자가 집중할 내용은 다른 내용이 아니라 '질서 전달'이라고 바이스만이 먼저 지적합니다.
결론에서는 유전 자체가 엄청 오랜 기간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또한 다윈이 "생명체가 조직화하는 과정을 진절머리 나게 오래 걸리는 과정으로 보면 어떻겠소?"(40)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암시됐습니다. 앞에서 나온 지적 산물에서 유전학 발전 열쇠를 쥐여줬는데 넘겼던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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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거인의 어깨를 짚고서 더 높이 뛰어 넘"는다라고 언급했습니다. 작가가 "If I have seen further it is by standing on ye shoulders of Giants."라는 뉴턴의 말을 차용했다고 봅니다 영어가 이게 맞나 모르겠군요. 더 높이 그리고 더 멀리 넘으려면 지지대를 최대한 잘 이용해야 합니다. 앞선 거인 사용을 극대화할 필요성이 충분합니다. 『게놈 익스프레스』를 보면서 감탄한 점도 이 점입니다. 유전학 자체에 대한 놀라움도 있었지만, 앞서 공표된 가르침에서 빈틈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앞선 가르침에서 심화된 질문을 만들어내고, 앞선 발견을 새롭게 재해석하고, 선관先觀이 무너질 위험이 있더라도 새로운 사실을 계속해서 발견하고, 사실에서 진실을 찾고. 거인에 충분히 의지해서 어깨 위에 오를 때도 있지만, 거인을 무너뜨리고 나아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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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모노(Jacques Lucien Monod)와 프랑수아 자코브(Francosis Jacob)이라는 학자가 후반부에 등장합니다. 승승장구합니만 뒤에서는 '자신이 만든 세상'에 갇혀 괴로워하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가. 엉망진창이야. [...] 난 여길 벗어나고 싶어." 책 중 자코브가 모노에게 하는 말입니다. 허나 여정이 여기서 끝나지는 않습니다. 바버라 매클린톡(BarBara McClintock)이라는 학자가 등장하여 논증을 이어갑니다. DNA를 기반으로 하는 유전 프로그램을 '생물의 발생'에서 기능적인 한 측면으로 봅니다. 그러고서는 생명체의 특징은 "유전체가 세포, 세포의 조합, 그 외 유기체의 모든 요소와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420) 표상된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생명체의 모든 정보를 DNA나 수정란에 모두 욱여넣을 수 없"(344)라고 일단락 내립니다. 여기서는 이 논의를 담으려는 의도가 없으니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유전학 논의는 한 사람에서 끝나지 않고서, 이어지고 이어지고 또 이어집니다. 학문사만 아니라 인간사도, 문화사도, 모든 역사가 이렇게 계속 이어겠지요. 발전될 때도, 후퇴할 때도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언제나 끝은 오겠지요. 누군가가 끝까지 바통을 이어받겠지요. 앞선 사람을 주시해야, 내가 잘 준비해야 바통을 잘 이을 수 있습니다. 몇 미터도 못 가고 몇 밀리미터만 간다고 하더라도, 그 바통을 이어서 후세에 제대로 전해주고 싶군요. 가교 역할을 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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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마지막에서는 "유전체는 어떻게 보면 유전보다는 진화에 대해서 얘기"한다고 주장합니다(382). 그리고서는, "우리는 여기까지예요, 여기부터는 당신의 세계죠."(385)라며 서술자를 자기 세상으로 돌려보냅니다. 서술자가 먼저 돌아가겠다고 선을 긋지요. 가는 길에서, 이정표가 이상해져 모르게 됐으나, 어딘지는 알겠다고 말합니다. 생명체를 밝히는 일은 학자의 업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지식이 일상에서 갖는'의미'는 우리가 만들어내야 합니다. 거대한 담론인 실존적 질문이 가득한 세상에 우리는 다시 한번 던져집니다. 사실과 사실을 찾는 과정을 숙고함은 우리에게 얼마나 크고 많은 깨달음을 주는지요! 이를 잊지 않고서 "지적인 탐험"을 저 나름대로 해나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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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자는 자기 집으로 찾아갑니다. 중간에는, '돌리'라는 복제 양을 회오리바람에서 찾기도 하죠. 생물의 창발성이 있다면 복제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일까요. 아직 생물학에는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고, 밝혀야 하는 범주가 넓으며, 연구할 항목을 누군가가 다시 이어야 한다는 후언일까요. 아직까지 많은 논쟁이 있다는 의미일까요. 돌리는 지난한 상황에서 만들어졌다는 의미일까요. 돌리마저도 혼란스러운 창발성 가운데서 만들어졌다는 걸까요. 왜 돌리는 다시 회오리 속으로 사라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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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몇 개 있습니다. 책 내용에서 말입니다. 새롭게 알게 된 내용도 많습니다. 일일이 정리하고 싶으나 시간이 많이 부족합니다. 제가 할 일은 '의미 창출'입니다. '다시 잇기'입니다. 어떻게 이 지식이 쓰일는지 전 잘 모릅니다. 매 순간의 새로운 시작점 중 또 다른 시작점이 되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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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만화이나 내용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학술적인 내용도 많이 나오는 데다가 학자의 이론을 정리해놓은 결과물이니 당연한 귀결일까요. 개인적으로, 생물 수업을 할 때 이 책을 하루에 한 챕터씩 토론하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 읽어서는 이해가 안 된 부분이 너무나도 많군요.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정말 이런 책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한국 출판계가, 학술계가 부디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인문학계에서는 이런 과학적 사실에서 진리를 발견해내는 작업을 계속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 교육이 '질문'을 통해 '사실을 무너뜨리는 교육'을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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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책에는, 분자생물학은 물론이요 후성유전학까지 나오지만 이게 이거다 저게 저거다라는 설명이 없습니다. 이런 부분을 정리할 수 있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ISBN 978-89-6086-9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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